마지막 초음파 날. 임신 주수로는 7주 4일 차. 이 주수면 아기가 커서 심장 박동을 들어야 되는 주차였다.
오늘도 여전히 빈집이면 유산 확정. 이미 지난주에 급히 찾은 산부인과에서 자연도태 중이라고 했으니 난 이미 유산 판정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만에 하나 진짜 아주 만약에 아기가 생겨서 심장이 뛰고 있지 않을까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남편은 제발 꿈 깨라고, 희망고문 그만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그러다 진짜 유산 확정받으면 더 마음 아파서 어쩔 거냐고 매일매일 나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내 귀에 남편의 말이 들릴 리가 없지.
여전히 입덧 증상은 미미하게 진행 중이어서 희망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유산이 진행 중인 경우에도 임신 증상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냥 나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현실 부정 중이었던 것.
초음파실에서 본 아기집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난황도 없었다. 크기는 1.7cm로 지난주 1.49cm에서 거의 자라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다음번에는 아기가 잘 버틸 거라는 초음파 샘의 위로를 뒤로하고 초음파실을 나섰다.
진료실은 오늘도 여전히 대기자가 많았고, 내 맞은편에 앉은 부부는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정말 너무너무 꼴 보기 싫었다. 심장 박동을 들었나 본데 (그들은 심장박동이 나와있는 초음파 사진을 들고 있었다. 그게 내 눈에 보일 정도면 저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다 보라고 펼쳐 논거다) 다른 데 가서 보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애를 유모차에 태워서 데려온 사람들도 많은지. 그리고 임산부 배지를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나는 아기를 구경도 못하고 빈 집만 2주 동안 본 채로 유산 상담을 하려고 대기 중인데 저 배려 없는 인간들은 대체 뭘까. 신경질이 났다.
난임 병원은 일반 산부인과가 아니기 때문에 방문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초음파 사진은 진료 대기실 앞에서 펼치지 말 것. 임산부 배지 착용하지 말 것. 가급적 아이 데리고 병원에 방문하지 말 것.
난임 병원에는 고차수 시술자들도 많기 때문에 저 세 가지는 일종의 배려다.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사람들도 많다. 착상이 계속 안되어서 초음파 사진을 받아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초음파 사진을 들고나가서 밖에서 보거나 차에서 보거나 한다. 나도 주머니에 넣고 나와서 병원 밖에서 봤으니까.
특히나 분홍색 임산부 배지는 굉장히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그걸 달고 난임 병원 내부를 활보하다가는 사람들에게 눈초리 받기 딱 좋다. 나도 지난주에 보건소 앞에서 울면서 받아온 그 배지, 버스 탈 때 빼곤 가방 안에 고이 넣어뒀다. 배지가 너무 눈에 띄어서 사실 밖에서 달고 다니기엔 너무 튄다.
그리고 일부 난임 병원은 아이 동반 입장이 불가하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그렇지 않아서 항상 인터넷 카페에 병원에 애 좀 데려오지 말라는 글이 수시로 올라와 문제지만. 물론 애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둘째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병원에 데려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굳이 왜 남편이랑 같이 유모차를 끌고 병원에 오는 건지. 여기가 나들이 오는 곳도 아니고. 가뜩이나 병원에 사람도 많아 죽겠는데 복도에 유모차 세워놓고 아이랑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 그 아이 하나가 안 생겨서 절박하게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이해해주기가 싫으니까. 아내만 병원에 보내고 집이나 밖에서 남편이 따로 애를 보면 안 되는 건가? 이건 내가 애가 없어서 이해를 못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렇게 내 기준상의 미운 사람들과 함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유산이 처음이고 아기집이 작으니 일단 약물로 배출을 시도해보자고 했다. 수술할까 봐 좀 쫄아서 수술비니 후유증이니 한참 검색을 했었는데 약으로 한다니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면 혹시 아기가 생기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딱 잘라서 아니라고 했다. 혹시라도 만약 생긴다 한들 이렇게 늦게 아기가 생기면 그 아기가 정상이 아닐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처방 나온 약은 자궁수축제로 유산을 유도하는 약이었다. 아, 이제 진짜 확정이구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았는데 약값이 2,500원이었다. 매번 몇만 원, 몇십만 원 단위의 비싼 주사비랑 약제비를 내다가 2,500원이라는 비용이 너무 황당했다. 이 비용으로 유산이 완료된다고? 복통과 출혈이 있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이 작은 몇 알로 유산이 마무리된다니
집에 와서 약 이름을 검색해보니 후기가 정말 후덜덜이었다. 복통과 출혈이 너무 심해서 유산한 슬픔을 잊을 정도라고 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피로 다 적셨다는 후기도 있었다. 하혈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에 간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아기집이 빠져나오고 나면 유산이 완료되고 그 난리를 겪고도 유산이 완료되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보내는 것 까지 쉽지가 않구나.
병원 지시대로 약을 먹었다. 배탈 난 듯이 조금 배가 아프더니 아무 증상이 없었다. 음? 다들 서너 시간 안에 복통으로 데굴데굴 굴렀다던데 왜 나는 아무 반응이 없지? 8시간 뒤 두 번째 약을 먹었다. 배가 조금 욱신 하더니 또 아무 증상이 없었다. 내가 약을 다 소화시키고 있는 건가? 다시 8시간 뒤 세 번째 약을 먹었다. 배가 또 조금 욱신 하더니 아무 증상이 없었다. 피가 나와야 된다는데 피는커녕 하루 종일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렇게 긴장 속 하루를 보내고 나니 약간의 피가 보였다. 이 정도로는 안될 텐데. 펑펑 쏟아져서 안에 있는 부속물이 다 나와야 된다고 했단 말이다. 병원에 연락을 했다. 반응이 느릴 수 있단다. 이건 느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효과가 없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냥 내일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안되면 약을 늘리든 수술을 하든 하겠지.
튼튼이는 열심히 집만 짓다가 떠났는데 이젠 방 빼기가 너무 싫은가 보다. 집을 얼마나 탄탄하게 지어놨는지 피 한 방울이 제대로 안 비치다니. 네가 방을 빼야 엄마가 몸이 덜 상하는데 가기 전까지 이러면 어쩌니. 나 마음도 너무 아픈데 이제 몸도 아프게 생겼잖아.
병원에서는 냉동이 한 개밖에 없기 때문에 이걸 이식하는 건 개수가 부족하니 신선을 다시 진행하자고 했다. 음, 이건 예상 밖의 일이다. 남은 냉동 하나 이식해보고 시술은 이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저 지긋지긋한 과배란부터 다시 하라니? 남편은 대번에 싫다고 했다. 그 짓을 또 하느니 그냥 둘이 살자고. 근데 너 은근 내가 다시 시술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계류유산은 염색체 이상이기 때문에 배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이식을 하면 출산까지 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저렇게 하면 천만 원 찍는 거 우스울 텐데. 이미 나는 3백을 썼고, 신선을 다시 하면 2백 정도 나올 거고 염색체 검사까지 하면 수정란 개수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150에서 250 정도가 든다고 했다. 돈을 무슨 물쓰듯해야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니. 게다가 난 지금 시술 때문에 일도 못하고 있는데. 그리고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백 프로 출산 보장이 아니잖아. 저렇게 돈을 퍼붓고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수정란이 한 개도 pgs를 통과하지 못해서 몇백만 원을 그냥 날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컷 돈 계산을 해보다가 갑자기 이효리가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효리도 난임 병원에 다니겠지? 그 사람은 돈이 많으니깐 애초에 아예 모든 검사에 다 돈을 때려 부어서 시술 한 번에 성공하겠지? 근데 이효리도 나처럼 이렇게 진료실 앞에서 두세 시간씩 기다릴까?"
남편은 "병원에서 전임교수 붙여서 따로 진료 보겠지. 그리고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며 돈 많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심각한 상황인데 갑자기 이효리 돈 얘기가 여기서 왜 냐오냐고 구박만 당했다. -_-
유산을 한번 겪고 보니 이렇게 원인도 불분명하고 성공률도 낮고 한 난임을 내가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암 초기의 완치율이 90프로가 넘어선다는데 나는 말기 암 완치율과 유사한 30프로 남짓의 성공률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라니. 다행이라면 난임은 치료 안 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것. 아, 심리적으로 말라죽을 수는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남들이 말하는 약물 배출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임신 초기에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배출이 빠르다고 해서 스쿼트도 하고 복부운동도 하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튼튼이는 여전히 집을 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러다 수술해야 하면... 어쩔 수 없지 뭐.
남편은 그 비싼 소고기랑 전복 잔뜩 사 먹여 놨더니 집만 엄청 튼튼하게 짓다가 사라져 놓고는 방 빼라니깐 안 뺀다며 튼튼이를 원망했다.
아무리 유산이 흔한 일이라고 해도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막상 당하고 보니 너무 힘들어서 마음도 많이 아프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
약물 배출이 성공을 하든 수술을 하든 3개월 뒤에나 다시 시술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연말까지는 자유네. 몸이 좀 회복되면 좋은 와인 한잔 마시며 툭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괴롭고 지긋지긋하지만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좀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