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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Nov 27. 2020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는 남의 일인 줄 알았지

지난주 결방한 구미호뎐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신나게 보고 있던 중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모르는 번호는 백퍼 잘못걸린 전화 아닌가??


받아보니 지난 주말 방문한 스터디카페였다. 일요일에 확진자가 다녀갔고 나는 동선이 겹쳐서 내일쯤 보건소에서 연락이 갈거니 검사를 받으시라고. 확진자의 책상 위치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내가 있던 책상과는 대각선 위치로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코로나 + 난임시술로 쭉~ 쉬고있는 중이라 난 집순이로 산지 6개월 가까이 된 사람이었다. 그나마도 타고난 게으른 천성 덕분에 집순이는 체질에 아주 잘 맞았고 가까운 마트에 가는 것도 귀찮아서 배송을 시켰으니 정말 말그대로 집이랑 합체된 채로 산지가 반년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난임 시술하느라 친구도 안만났다. 결국 유산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몸조리를 해야해서 집에 쭉 있었고.


이런 내가, 바깥 바람은 집 베란다에서 쐬고 있는 내가! 왜 코로나 확진자랑 마주친 것이란 말인가.


이번 주말에 있을 자격증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말에 잠깐 스터디카페라는 곳에 가본 것이 화근이었다. (장소유형이 카페로 분류되다보니 엄마는 거기서 친구랑 마스크 벗고 수다떨었냐고 물었다. 거기 독서실이에요..... 음료수도 안팔고 아무도 그 안에서 이야기 안하는 ㅠ)집에서 공부하면 아무래도 집중도 잘 안되기도 하고, 분위기 전환 겸 반년만에 나들이 삼아 잠깐 공부하러 나간 것이었는데 거기서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확진자랑 같이 머무른 것이다. 여태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정말이지 재수 오지게도 좋다. 진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다가 갑자기 너무 억울해졌다.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싸돌아다니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몇 달간 집에 가만히 있던 나야? 코로나는 재수없으면 걸리는 거라던데 그게 나인거 아니야? 내가 얼마나 조심히 살고 유난을 떨면서 소독을 하고 그랬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정말 어쩌다 나갔다 온건데 어떻게 그 한 번 외출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얼마전만 해도 남편이랑 주위에서 확진자 본적 있어? 없지? 같은 말같잖은 소리를 실컷 했던 터였다. 입이 방정이다.  


최근 확진자는 3백을 넘었고 오늘은 무려 5백명이 넘어섰다. 3차 위기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 위기 속에 나에게도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연락을 받고보니 괜히 열도 나는것 같고 목구멍도 아픈것 같았다.




일단 남편은 내일 회사를 가면 안될 것 같았다. 오밤중에 터진 난리라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 다산 120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친절하게 서대문 보건소 코로나 통합센터 전화번호를 안내해주며 일단 출근자들은 가급적 연차를 사용하고 아침 9시에 바로 보건소로 연락해서 지시를 따르라고 했다.


어렵게 청한 잠 속에서 밤새도록 나와 남편이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격리병원에 끌려가는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9시가 되기를 기다려서 보건소에 연락을 했으나 전화가 연결될 리 만무했다. 확진자는 폭증하는 중이니. 간신히 연결된 전화 속 담당자는 내가 검사 대상자인지 확인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고, 조금  나는 검사 대상자가 맞고 지금 바로 보건소에 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어떡하냐고 했더니 일단 가족분이랑은 분리를 하고 보건소에 따로 오라고 했다.


확진자랑 마주친 건 일요일인데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3일간 나는 남편과 밥도 같이 먹고 손도 잡고 다니고 잠도 같이 잤다. 우린 결혼한지 7년이 넘었지만 가족끼리는 하는게 아니라는 뽀뽀도 한다. 그러니 이제와서 분리가 무슨 소용이람. 남편은 이미 우린 틀렸다고 차 빼고 있을테니 얼른 나오라고 했다.


도착한 선별진료소는 말그대로 난리통이었다. ㅂ초등학교에서는 한 반 학생들이 다 검사를 받으러 와 있었고 학생들이며 학부형들이며 뒤섞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앞뒤전후로는 기침을 무지하게 해대는 의심증상자들이 대기중이었고 여기 있다가는 멀쩡한 사람도 아프겠다 싶었다.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있으면 어떡하나?


주차하고 온 남편이 진료소로 다가오려 하기에 손사레를 치며 절대 근처에 오지도 말고 당장 안전한 차에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험악하게 말했는지 남편은 내가 화난 줄 알았단다.


해맑은 꼬맹이들 사이에 껴서 명단을 작성하고 체온을 재고 기다렸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무한정 대기였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검사 키트를 준다.


아, 이거 엄청 아프다던데. 검체채취실 앞은 공간이 좁아서 애와 어른들이 다 뒤섞여서 대기중이었다. 후. 좀 떨어져서 서있고 싶은데 그럴만한 공간도 없고 내 뒤로는 의료폐기물이 쌓여있었다. 통에는 11/23, 11/24 확진자 라고 써있었다...


검체실 안에서 꼬맹이들은 엉엉 울면서 나오고 결국 내 차례가 왔다. 내부에는 에탄올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바닥에 소독약이 흥건했고 소독약에 절여져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해서 잠시 고민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길다란 면봉이 콧구멍 깊은 곳과 목구멍을 훑었고 꽤 아팠다.


후다닥 선별진료소를 빠져나와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결과는 내일 오전에 알려준다고 했다. 음성은 문자만 가고 양성이면 전화가 간다고 했다. 오 신이시여. 제발 문자!!!


선별진료소 안에는 검사한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어디 들르지 말고 곧바로 귀가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내 뒤에 서계시던 아주머니는 그 안내판을 보더니 '아니 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래? 집에 어떻게 가라고?' 라고 하셨다. 그러네...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보건소가 가깝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이 검사가 끝나고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집에 가셨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입고 간 옷을 모조리 세탁기에 넣고 집나간 정신을 챙기고 있으니 그제서야 보건소에서 검사 대상자라는 문자가 왔다. 곳곳에서 확진자가 터져대서 역학조사 하느라 보건소 직원들도 진짜 고생이겠다 싶었다.

 



스터디카페 주인의 연락 속 한 단어는 나를 멘탈 붕괴에 빠뜨렸다. 바로 밀접접촉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선별진료소 검사 + 자가격리 14일이다. 때문에 나는 저 전화를 받자마자 멘탈이 바스러진 것.


나는 밀접접촉자가 아니었다. 단순 접촉으로 검사 대상자였다. (보건소 문자를 받은 사람만 검사비가 무료다)

밀접접촉자와 검사대상자는 보건소에서 발송하는 문자 내용 자체가 달랐다.

밀접은 검사+자가격리를 안내하고 검사대상자는 그냥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바로 일상복귀가 가능하다 라고 온다. 이건 정말이지 당하고 보니 엄청 큰 차이였다.


밀접접촉자 기준은 여러가지인 것 같은데 확진자와 마스크를 끼지 않고 대화하거나 밥먹거나 차마시거나 하면 밀접으로 분류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중요한건 마스크 착용 여부. 때문에 확진자랑 같이 뭘 먹으면 거의 자가격리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같은 공간 속 가까운 거리에서 3시간 가까이 같이 있었기에 검사대상자였다. 마스크는 물론 내내 착용하고 있었지만 물 마시느라 잠깐 마스크를 내린 적이 있었고 코 푼다고 잠깐 마스크 내린 적이 있었다.


막상 일이 터지고 보니 그 찰나가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고 그렇게 걱정이 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거기서 물을 마셨을까. 그날따라 왜 갑자기 콧물이 났을까 등등 말도 안되는 후회를 혼자서 하고 있는데 천진난만한 남편은 별일 없을거라며 갑자기 하루 회사 안가고 노니깐 개꿀이라면서 신나서 대낮 맥주를 하고 있었다. 어휴. 인간아. 남의 속도 모르고!


확진이면 어쩌나 싶어서 자격증 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자가격리나 확진이면 응시료를 환불해 준다고 했다. 관련 서류는 이후에 보내라면서. 시험은 이틀 남았는데 집중 안되고 미칠노릇이었다. 시험을 볼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니 책도 눈에 잘 안들어왔다.

그렇게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책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데 저녁 8시 40분쯤 보건소에서 음성이라는 문자가 왔다. 와우!!! 내일 연락준다더니 사람들 마음 졸일까봐 이렇게 늦게라도 알려주네! 오늘밤 꿈엔 방호복 입은 사람들한테 안끌려다녀도 되겠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막막한 코로나 사태를 9개월 가까이 헤쳐나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싸움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다들 대단한 것 같다. 특히 의료진들. 선별진료소 앞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을 보니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깐 선별진료소에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엄청나게 불안했는데 저분들은 매일매일을 누가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들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지금같이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이면 얼마나 무섭고 힘들고 지칠까. 하물며 병원에서 쏟아지는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기나긴 싸움속에서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것이다.


내 일 아니라고 정부 지침 안따르는 사람들,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모이지 말라면 모이지 않아야 하는데 난 확진자 못봤어~하며 회식을 잡거나 식사 모임을 잡는건 정말 하지말아야 한다. 코로나 걸리는건 운이라면서 나는 아니겠지, 우리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시라. 나처럼 집에만 있던 사람도 확진자가 늘어나면 이렇게 잠깐 나갔다가도 확진자랑 만날 확률이 높아지고 그 말로만 듣던 확진자가 내가 될 수도 있는거다.


한편으로는 단계를 빨리 올렸더라면 좋았을 걸 싶었다. 아마 그랬다면  주말에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에게는 큰일날 소리로 들리겠지만 일정기간 강하게 틀어막는 것이 확산을 막는데 크게 일조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확진자가 빨리 줄어야 이후에 장사도 더 잘 되는 것이 아닐까. 애매하게 계속 이렇게 있다 보면 장사는 장사대로 안되고 확진자는 확진자대로 늘고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오랜시간 유지되는 것.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일 터트리는 종교 단체는 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그 피해자가 되었으니. 나와 마주친 확진자는 마포 홍대새교회 확진자들에게서 파생된 확진자였다.


최고의 예방은 마스크라는 말을 정말이지 크게 실감했다. 확진자와 꽤 가까운 위치에서 몇시간씩 같이 있었지만 내가 음성이 나온 것은 백프로 마스크 덕분이다. 제대로 쓰면 막을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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