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Nov 05. 2020

난시도 교정이 됩니다

시력은 떨어지면 답도 없는 줄 알았어요

나는 고3 이후로 시력이 좌 1.0/우0.3~4 에 고정된 채로 약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엄청난 짝눈이자 난시였던 것.


그런데 이번 건강검진에서 내 시력은 좌 1.2 / 우 0.8이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타고난 시력 하나는 자신있었던 나는 고3때 인서울을 하겠다며 급 독서실에 매달려서 열공을 했다. 덕분에 양쪽 1.2였던 시력은 좌 1.0 우 0.3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오른쪽 눈과 대학교를 맞바꿨다.


고3 여름방학이 지나던 때 갑자기 칠판 글씨가 잘 안보이기 시작했고 엄마 손을 잡고 안경점에 가니 이런 말도안되는 시력이 측정되었다. 엄마는 무슨 유난을 떨면서 공부를 해서 시력이 이지경이 됐냐면서 안경을 맞춰주셨고 안경을 쓴 내가 학교에 등장하자 친구들은 "너 완전 B사감 같아!!!!" 라며 놀려댔다.


B사감이 멋진 주인공이었으면 몰라도 현진건 소설에는 좀 찌질한 여자였기에 이런 놀림 때문인지 안경 쓰기가 참 꺼려졌고 안경을 써도 그닥 미모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데다가(예쁜 애들은 안경을 써도 참 예쁘던데) 안경을 쓰지 않아도 일상 생활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기에 수업시간에만 안경을 꺼내서 썼다.


부모님은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 시력이 떨어진다고 걱정하셨지만 내 시력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로부터 20년간 고정되었다.


시력은 한 번 떨어지면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눈에 좋은 음식을 먹고 루테인을 먹고 눈 운동을 하면 더러 좋아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지는 건 흔치 않은 케이스기도 하고 된다 한들 아주 오래걸린다.




나를 B사감으로 만들었던 안경은 룩옵티컬의 등장으로 그 판도가 바뀌었다. 안경은 얼굴이라며 예쁘고 저렴한 안경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던 것. 덕분에 내 맘에 드는 테를 골라서 안경을 옷 사듯이 쇼핑하기 시작했다. 시력은 늘 좌 1.0 우 0.3 짝눈 / 난시 있음에 고정되었었다. 내 안경은 늘 왼쪽은 도수가 없었고 오른쪽만 왼쪽 시력에 맞춰서 도수가 들어가있는 안경이었다.


시력검사는 숟가락을 들고 시력검사판을 읽는 측정법에서 발전해서 모든 안경점에 측정 기계가 보급되었고 나는 턱과 이마를 기계에 맞추고 구멍 속 벌룬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시력이 측정되어서 나왔다. 숟가락으로 한쪽 눈을 세게 누르면 다른 쪽 눈 시력 측정이 어려웠던 터라 기계로 시력을 측정하는 건 참 편리하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경점에 안경을 바꾸러 가서 시력을 측정하는데 직원이 내 오른쪽 눈 시력이 측정이 되지 않는다면서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이게 무슨말이람??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오른쪽으로 보면 뿌옇지만 보이는데 시력이 측정이 안된다니??


병원에 찾아가니 무슨 약을 눈에 넣고 정밀검사를 진행하자고 했다. 약을 넣고 30분을 기다려서 검사를 했는데 눈에는 이상이 없고 타고나기를 오른쪽 눈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이란다. 그래서 오른쪽만 시력이 떨어지고 난시가 오고 하는거라고. 아니 그게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밝혀진건가요????


마흔이 넘으면 노안이 올 나이라고 했는데 이제서야 내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아이고 엄마.. 왜 나를 오른쪽 눈을 약하게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셨나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았잖아요.


약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안경처방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좀 오른쪽 눈이 시력이 나쁜 줄로만 알았는데 내 눈은 그럼 이제 어째야 되는 걸까.


눈이 이렇게 되니 눈에 대한 광고만 보였다. 그러다 핀홀 안경을 봤다. 이 안경을 사용하면 시력이 올라간다고. 냉큼 구매했지만 그 안경을 쓰고 있으면 좁은 구멍 사이로 뭐가 잘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눈이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그걸 쓰고 있으면 남편이 무슨 매트릭스 찍냐면서 놀려대니 쓰고 싶은 마음이 더이상은 들지 않았다.




처방전을 들고 안경점에 가니 그제사 안경을 만들어줬다. 새로 나온 안경은 여태 쓰던 안경이랑 다른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제 앞으로 안경점에서는 내 시력이 측정이 안되어서 병원가서 처방전을 받아오라 할 확률이 높아진거다. 내가 무슨 할머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람. 그동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서 벌받은건가 ㅠㅠ


사실 처음 안경을 썼을땐 칠판이 보이지 않아서 썼던 것이었고 친구들이 놀리니 평상시에는 쓰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안경은 매일 착용하는 것이 아닌 수업 있는 날의 소지품이 되었다. 평소에 안경을 쓰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보려는 것이 잘 보이지 않으면(특히 버스 번호판) 인상을 찌푸리며 보는 버릇이 생겼다.


대학교 1,2 학년때는 학기 초마다 선배를 보고도 인사 안한다고, 또는 인상 썼다고 많이 혼났다. 3, 4학년땐 후배가 인사하는데 제대로 못보고 지나쳐서 저 선배는 인사를 해도 씹더라며 욕을 먹는 일이 생겼다. 2학기쯤 되면 쟤는 눈이 나쁜데 안경 안쓰고 다녀서 저런다더라 이해해주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안경의 기능을 사용했다기 보다는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블루스크린 차단 목적으로 착용한 경우가 더 많았다. 블루스크린 차단용 안경은 1년에 한번씩 교체해줘야 해서(필름이 벗겨진다고 한다) 안경을 1년마다 바꿨다.


그렇게 오른쪽 눈 약함. 시력측정 안됨 수준이 된 내 눈은 갈 곳을 잃었다. 전처럼 아무 안경점에 덥석덥석 들어가서 안경 맞춘다고 시력검사를 할 수 있는 눈이 아니었으니까. 이후에도 안경점에서 오른쪽 시력측정이 안된다고 안경 구매를 몇 번 거절 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지하철 역 앞에 새 안경점이 생겼다. 최신 검사장비를 들여놨다고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남편은 시력 측정이 되면 여기서 안경 사는거고 아니면 말라면서 어차피 새 기계라는데 검사는 무료니깐 들어가보자고 했다.


나는 미리 오른쪽 눈 시력이 안나온다고 언질을 줬고 직원은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그러더니 나보고 오른쪽 눈 시력이 나쁜게 아니고 난시가 심해서 기계가 시력을 측정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런 경우는 병원가도 딱히 처방내줄 것이 없을거라고. 그럼 난 어떡해??


안경점에서는 난시교정안경을 쓰면 된다고 했다.

처음 들어봤다. 난시교정안경. 난시도 교정이 되는지 몰랐네...? 이 안경을 쓰면 눈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바뀌어서 난시를 개선한다고 했다.


비용도 별로 높지 않았기에 그 난시교정안경이라는 것을 새로 했다. 직원은 안경을 일주일간 썼다말다 하지말고 계속 착용하고 잘 때만 빼라고 했다. 이 안경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면서. 일주일 뒤에 많이 불편하면 다시 내방하라고 했다.


그렇게 바꾼 안경을 쓴 첫 날.

앞이 잘 안보였다. 내 도수에 전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 처럼 어지럽고 두통이 생겼다.

둘째날, 셋째날 역시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안경을 쓰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눈 초점이 맞았다 안맞았다 했다. 가만있는데 갑자기 눈이 멍~해졌다. 그러면 눈을 부릅떠야 했다. 일을 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집중이 안될 지경이었다. 내 인생에 이런 안경은 첨이었다.


일주일을 견뎠는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안경점에 다시 찾아갔다. 나 이 안경 쓰니깐 머리아파 죽겠다고.

그날 내 안경을 제작한 안경사는 없었다. 다른 안경사는 렌즈를 살펴보더니 이 안경에 도수는 거의 없고 난시 교정만 하는 안경인데 그렇게 힘드냐면서 일주일 정도 더 견뎌보란다. 썼다 벗었다 하지말고.


정 못견디겠으면 그냥 전처럼 오른쪽만 도수를 넣어서 안경을 새로 해주긴 할건데 그럼 난시는 계속 계속 나빠질거라고 했다. 고생하는 김에 이 참에 난시 교정하는데 시간을 좀 투자해보라고.


20년 넘게 내 안경은 오른쪽 알에 0.5정도 도수가 들어있었는데 안경에 도수가 거의 없다니... 너무 황당했다. 안경 잘못 만든거 아냐?? 그런데 불편한 증상을 제외하고는 이 안경은 매우 잘 보이는 상태였다.


저렇게까지 직원이 확신을 갖고 권유하는데 그래, 일주일만 더 참아보자. (처음엔 안경 새로 해주기 싫어서 저러는줄 알았다)


여전히 머리는 띵했고 초점은 맞았다 말았다 했지만 그래도 지난주 보다는 나아진 것 같았다. 사실 초점이 잘 안맞아서 운전할 때는 사고날까봐 전에 쓰던 안경을 썼다.  


그렇게 안경에 적응을 좀 하고 난 뒤에는 안경에 대해서 잊고 살았다.


그리고 일년 뒤. 건강검진날. 별 생각없이 검진센터를 찾았고 시력검사를 했다.

병원에 시력측정 기계는 없었다. 시력검사판을 보고 왼쪽 눈이야 뭐 원래 잘 보이는거. 그런데 1.2.

오른쪽은 원래 뿌옇게 보여서 0.3 위로 올라가면 숫자가 식별이 안되었는데 0.6까지는 숫자가 보이고 그 위로 뿌옇긴 한데 숫자가 식별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0.8까지 숫자가 뿌옇지만 보였다.


간호사는 나에게 '시력이 좋으시네요' 라고 했다.




심한 난시인 경우에는 교정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술을 한다 해도 다 고쳐지는 것도 아니라고 했고. 또한 고도근시나 원시가 있으면 난시교정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내 경우는 적당히 눈이 나빴던 터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안경 제작 기술이 올라간 덕분에 혜택을 본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다.


그 안경점에 가지 않았으면 나는 계속 내 시력이 1.0/0.4 오른쪽 난시인줄알고 약한 오른쪽 눈은 노화되니깐 계속 나빠지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거다. 그리고 그렇게 눈이 회복불가의 상태가 되면 수술이든, 어떤 인위적인 방법을 택해야만 했겠지. 새삼 새 기계 들여놨다고 광고하던 그 안경점이 참 고맙다. 안경 산지 1년 지났으니 새 안경 하러 그 안경점에 가볼까나.








매거진의 이전글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