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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n 19. 2020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우리家한식] 돔배기와 홍어

동갑내기 내 남편은 서울 출생. 나도 서울 출생.


요즘 '네 고향이 어디냐?'라는 질문은 거의 사라진 지 오래여서 출신지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는데,

'결혼'이라는 문 앞에서 부모님의 고향이 우리 생애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경상북도 출신 우리 부모님.

전라북도 출신 시부모님.


우리의 결혼은 말 그대로 경상도와 전라도 집안의 결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여태 뿌리 뽑지 못한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 감정의 골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고,

지역감정 조장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건 꼭 경상도와 전라도다.

카카오맵 출처. 포항과 전주는 약 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에


나와 남편은 둘 다 큰집의 첫째들이다.

우리의 결혼은 두 집안의 개혼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두에게 우리의 결혼은 문제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있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 금지, 지역 이야기 금지'가 암묵적인 룰이었고,

덕분에 우리의 만남은 화개장터가 열리듯이 흥겨웠다.


영호남의 대통합이라고 서로 즐거워하면서.




순조로울 것 같았던 우리의 결혼은 미묘한 부분에서 다른 점들이 발견되면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가기로 한 날.


시댁을 방문한 내 앞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짓수 많은 반찬과 맵고 짜고 강렬한 음식들..

하다못해 김치까지도 시뻘겋고 너무 매웠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공들인 화장이 다 뭉개질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식사를 해야 했고, 돌아와서는 1.5리터 생수를 원샷했다. 며칠간 시달린 복통은 옵션.


어머님은 전주 출신이었다.

나는 전주 여행을 가보고 나서야 어머님이 왜 그렇게 손이 크신지 뒤늦게 알게되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곡창지대에 살다 보니 음식 부족할 일이 없어서 늘 손님을 배 터지게 해서 돌려보내야 맘이 편안한 사람들이었나보다.

전라도 식당의 기본 반찬. 센터의 고기는 메인 메뉴니 뺀다 치더라도 반찬 가짓수는 최소 10가지 이상이다.


반면 우리 집에 인사 온 남편은 밥그릇이 작아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밥을 세 그릇이나 먹는 바람에, 멸치같이 작고 마른 놈이랑 결혼한다고 불만이었던 아빠의 걱정을 싹 날려버렸다.


남편은 우리 집 음식이 죄다 싱거웠다고 한다.

우리 집은 아빠가 혈압이 있으셔서 늘 심심하게 식사를 해왔다.

아마 시댁 음식 스타일로 식사했으면 우리 아빠는 벌써 병원에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아빠의 고향은 바닷가 옆 포항이다 보니, 푸짐한 산지 해산물 메인인데, 슬프게도 우리 식구들은 체질 때문인지 날음식을 먹으면 자주 배탈이 났다. 때문에 해산물이 식탁에 오르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그렇게 우리 집 식사는 늘 심심하고 단조로웠다.



니 돔배기라고 들어는 봤나?


큰집인 우리 집은 년 중 몇 번의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린다.


결혼하고 첫 설에 남편은 차례상에 올라와 있는 돔배기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했다.


저 네모난 물체는 무엇인가 싶어 먹어보니 맛있어서 놀람. 상어 고기라고 해서 더 놀람.

남편은 저게 진짜 상어 고기냐고 나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그럼. 진짜 상어지. 가짜 상어겠니.


대식가 + 몬도가네 식단의 선구자인 남편이 대한민국에서 처음 보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난 더 놀라웠다.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이 익숙한 음식을 남편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다니.

내가 시골에 놀러 가면 늘 광에 돔배기가 주렁주렁 널려 있었는데.

나무위키 출처

제사나 차례가 끝나면 토막토막 꼬치에 끼워져 있는 돔배기를 쏙쏙 뽑아낸 뒤, 기름 두른 팬에 자글자글 구워서 생선 결대로 찢어 하얀 쌀밥에 올려 먹는 짭조름한 그 맛.


먹어본 사람들은 다 알 테다. 얼마나 맛있는지!

돔배기 한토막이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돔배기는 간을 친 상어의 토막 고기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나는 이걸 어릴 적 부터 먹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아는 음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돔배기는 경상도 전 지역도 아니고 주로 경북 내륙지방 -영천, 안동, 경주, 포항 등의 지역- 에서만 제사상에 올리는 특산 음식이라고 한다.

 

때문에 남편은 여태껏 이 음식을 들어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었나 보다.

남편 뿐 아니라 경기도가 고향인 제부 역시 돔배기를 처음 봤다고 했다.

하긴, 경상도 사람들 중에서도 돔배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으니 이 얼마나 특별한 귀한 음식인가.


돔배기에 문외한이었던 이 두 사위들은 이제는 명절 때 밥그릇 들고 돔배기부터 찾는다.


게다가 영롱한 자태의 문어까지 올라 앉은 푸짐한 제사상을 본 남편은 우리집에 제사 참석하러 가자고 하면 한달음에 날아간다.

문어 역시 돔배기와 함께 경상도 제사상에 올라가는 필수품이다.
 

연말마다 열리는 포항 특산물 과메기 파티는 옵션.

남편은 나와 결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산지 직송 과메기를 제 때 먹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매년 연말 열리는 남편과 엄마의 과메기 껍질 손질 대소동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홍어의 강렬한 냄새


나에게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를 알려준 시댁의 음식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홍어.


전라도에서는 홍어가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아무리 산해진미를 다 깔아놔도 '차린 게 없다'라고 타박할 정도라고.


삼합. 얼마나 유명한 음식인가.

홍탁집에서 먹는 탁주와 삼합의 맛을 통해 난 홍어를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태 난 홍어는 이정도의 알싸함도 꽤 강하다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동네 홍어와 탁주 가게의 삼합


귀한 손님일수록 홍어의 삭힘의 강도가 센 것으로 대접한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할머니 댁을 찾았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강렬한 냄새에 뒷걸음친 나는 입구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대체 왜 시댁엔 내가 차려입고 올 때마다 난관에 부딪히는 것인가!


순간 할머니 댁 화장실 변기가 터진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냄새는 강렬했다.


손자며느리를 귀하게 맞이해 주시려고 시할머니께서 준비하신 홍어는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삼합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삭힌 홍어였다.


코를 쥐어싸고 입으로 호흡하면서 간신히 들어간 시할머니 댁에서 남편은 '와 이거 역대급이다!! 나 입천장이 다 까졌어!!' 라며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으니.. 저 칠푼이를 쥐어박을 수도 없고...


시할머니는 내가 서울 아가씨라서 그런다고 이해해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강렬하고 엄청난 홍어 삭힌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차려주신 음식들을 죄다 입에도 못 대고 있으니... 마음이 진짜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각각 태어나서 처음 맛본 돔배기와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홍어 냄새를 시작으로 좌충우돌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홍어는 가오리를 삭힌 음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혼인 신고에 도장을 찍고 나니,

아빠는 분홍당을 외치셨고, 시아버지는 파란당을 외치셨다.


즐거운 화개장터 같았던 상견례 자리에서 약속한 '정치 이야기 금지의 원칙'은 어느새 저 멀리로 사라지고, 선거철마다 양쪽 집에서는 1번 찍어라, 2번 찍어라 난리통이었다.


양대 산맥 사이에 낀 우리는,

그때마다 제발 '비밀선거의 원칙'을 지켜 달라고 외쳐야만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늘 각 지역의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해서 서로에게 통역을 해줘야만 했고,

사투리 속의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매번 오해를 푸느라 진땀을 뺐다.


이렇게 결혼 생활은 어렵구나 알아 갈 때쯤,

눈물 콧물 흘리면서 먹어야 했던 시댁 음식은 내가 방문할 땐 간을 약하게 해 주기 시작하셨고,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을 땐 남편용으로 간장이랑 소금 종지가 따로 준비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벌써 결혼한 지 7년차.


푸짐한 한 상차림이 아니면 제대로 밥 먹은 것 같지 않다고 투덜대던 남편도 이젠 간단히 차려줘도 밥을 잘 먹게 되었고, 나는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내놓으려고 음식을 조금 더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엔 내 음식이 싱겁다고 본인 국에는 소금이나 간장을 넣던 남편은

이제는 시댁에 가서 밥을 먹으면 간이 세서 물이 당긴다고 어머님께 투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서 타협안을 찾아내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가끔.

강렬하게 내 콧속을 강타하던 그 홍어의 엄청난 향이 생각난다.
그 때 나도 눈 딱 감고 한 점 도전해볼 걸 그랬나.


그랬으면 지금은 돌아가신 시할머니도 '아이고, 우리 손주 며느리 홍어도 잘 먹네. 참 예쁘다' 하셨을까?

 


*돔배기와 홍어 캐리커쳐 그리느라 재능기부 해준 여보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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