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여행업을 꿈꾸는 이유 중 하나가 여행사 직원은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여행업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 생각을 접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꽤나 많은 여행사 직원들이 저 이유로 입사해서 저 이유로 퇴사합니다. (사실 저도 그런 줄 알고 여행업에 발을 디뎠네요 ㅋ)
오죽하면 여행사 직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여행은 내 돈 내고 가는 것이 제 맛' 일까요.
여행업은 기본적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일이라기 보다는 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파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간혹 보면 가보지도 않은 지역을 인터넷 지식으로 풀 장착하고 상품 세일을 하는 여행사 OP들을 종종 보면서, 그리고 예상 외로 그들이 파는 상품이 팔리는 것을 보면 그 지역을 안가봐도 팔 수 있는게 여행 상품인가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여행사 직원들은 남들이 여행가는 시기에는 성수기라 바빠서 여행을 더 못갑니다. 그 지역에 사람이 몰리는 때에는 여행사가 정신없이 바쁜 시기니까요. 성수기가 지나고 시간이 나면 휴가내고 여행을 갈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본인이 담당하는 지역으로의 여행은 재직 중엔 힘들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네요. 그래서 꽤 많은 여행사 직원들은 이직하는 텀이나 비수기에 여행을 많이 다닙니다.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 땡처리 뜨면 휴가내고 잠시 나갔다 오기도 하죠. 면세품 사려고 땡처리 주워서 나가는 경우도 꽤 많고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면 그냥 돈을 많이 벌어서 본인 원하는 대로 마음껏 여행을 다니면 됩니다. 여행사에서도 채용할 때 여행하는 것이 좋아 여행사로 온다고 하는 사람은 잘 안뽑습니다. (현자 타임이 오면 못견디고 그만두니까)
여행사 직원이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가 여행사 직원이 담당 지역 팀의 TC(tour conductor / 여행 안내자, 또는 인솔자) 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인솔자는 자격증이 별도로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인솔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전문인솔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여행 팀 인솔이 직업인 사람들인데요. 가까운 거리는 손님들이 개별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현지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서 여행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거리, 장기간의 패키지인 경우에는 인천 공항부터 인솔자가 동행하는 상품들이 더 많습니다.
인솔자는 공항에서 손님들과 만나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기 까지 전 일정을 책임지는 투어 리더 입니다. 손님들의 공항 수속, 이동 시 기내의 불편사항이나 환승 과정(외항사 탑승시 언어가 안통하는 경우 등)을 케어하고 현지에서는 투어 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현지 가이드와 기사와 협업해서 일정을 진행합니다. 인솔자의 역할은 인천공항 출발 미팅부터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 것 까지 전일정 진행입니다.
인솔자와 가이드를 많이 혼동하시는데 두 사람의 역할이 좀 다릅니다. 가이드는 그 지역 전문가로 투어 일정 중에 관광지 안내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고 인솔자는 일정 진행자입니다. 손님들은 뭐... 모조리 가이드님이라고 부르시긴 하지만요. 그래서 보통은 인솔자들이 직급으로 본인을 안내합니다. 손님들한테는 인솔자라는 단어가 좀 생소해서 그냥 실장님, 팀장님, 과장님 등등으로 불러달라 하는게 더 편할때도 있어요.
손님들에 따라서 인솔자 동행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인솔자가 포함인 상품은 상품가가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현지에서 가이드를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솔자 포함 상품의 시초는 예전에 항공티켓이 15+1FOC (free of charge) 그러니까 공짜 티켓이 나왔을 때부터입니다. 지금은 FOC 티켓이 거의 사라졌는데 예전에는 15장 또는 20장당 1석이 무료였고 이 좌석을 인솔자가 사용했습니다. 이 좌석은 마일적립, 좌석 업그레이드 같은 것들이 안됩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관광지입장료, 식당, 호텔 같은 것들은 투어팀이 들어올 때 인솔자, 가이드, 드라이버 것은 대부분 FOC가 나옵니다. 그러니 인솔자가 포함되었다고 해서 상품가가 엄청 높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인솔자 없는 팀 상품가가 더 저렴하긴 합니다만 지역별로 인솔자가 꼭 필요한 곳들이 있습니다) 현지 랜드나 여행사나 손님이나 인솔자가 팀 데리고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좋기 때문에 인솔자가 있는 상품들이 계속 판매되는 것입니다.
전에 어떤 손님이 박팀장은 공짜로 여행다녀서 좋겠네 그러셨는데 이런 말 들으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인솔자는 놀러 다니는게 아니고 일하는 거라서 일정 내내 여행지 즐길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매번 다음 일정 진행 체크하고 이동 때마다 멘트 할 것들 정리하고 손님들 체크하고 하느라고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저녁엔 방에서 기절해서 자는 날이 더 많은데... 한번 인솔나갔다 오면 2~3키로 정도는 빠져옵니다.
성수기에 호텔 풀부킹나면 인솔자는 쪽방 다락방 나오기도 하고 손님들 특식 드실때 인솔자는 젤 싼 밥 나오고... 다니다 보면 내가 시중 들러온 하인인지 짐꾼인지 사진 찍사인지 아이 보모인지 사고 처리반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여행사 직원들이 인솔나갈 바에는 그냥 내 돈 내고 여행간다라고 하는 거겠죠?
여행사 직원이 TC로 나가는 경우는 몇가지로 추려집니다.
1. 출발 팀이 수익이 거의 안남는 경우
상품이 인솔자 동행 조건인데 최소 출발인원을 간신히 맞춘 상품. 혜초같은 회사들은 직원이 전문 인솔자를 겸하고 있어서 아예 본인이 나갈 것을 전제로 깔고 상품을 만들고 자기가 팀도 모객하고 그렇게 만든 팀을 데리고 본인이 출장을 나가는데 이런 경우 외에 대부분은 모객하다가 최소출발인원을 간당간당하게 넘겨서 수익 빵꾸안나게 직원이 인솔자 땜빵을 하는 경우입니다. 전문인솔자가 동행하면 출장비가 별도로 발생하는데 여행사 직원이 인솔을 나가면 정말 말 그대로 과자값을 받고 출장을 나가게 되기 때문에(과자값도 안주는 경우도 있음) 출장비가 줄어들어서 팀 이익에 영향을 주게 되거든요.
돈도 받고 여행도 가고 얼마나 좋냐 하시는데 계속 말씀 드리지만 그냥 제 돈 내고 여행갈래요..... 인솔자는 일하러 갑니다.
2. 직원 현지 답사 겸 해서 인솔자로 내보내는 경우
신규로 런칭하는 지역을 직원이 팔아야 할 때 겸사겸사 그 지역 상품에 직원을 인솔자로 내보내서 생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미리 인스펙션(사전답사)를 다녀오고 인솔을 나가야 되는데 인펙은 돈이 드니까 그냥 맨땅에 헤딩시키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간김에 인솔 하면서 지역도 보고 와서 상품 팔아라 하면서. 별 사고 안생기길 바라면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전문인솔자들은 새로운 지역을 나가게 되는 경우에 자비로 답사를 다니거나 하기도 합니다. 이게 직업인 사람들은 일정 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거든요. 베테랑 인솔자들은 세계사 책 한권을 통째로 외워서 버스이동 시간 내내 강의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투어를 기승전결로 짜서 적재적소에 음악을 깔거나 각각의 장소에서 촬영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것들을 다 넣어서 일정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구성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 인솔자님들 개개인의 능력이에요.
전문인솔자들은 거의 한국에 안붙어있다고 보면 됩니다. 상품들 중에 중남미 같은 경우 장기 팀 인솔 나가면 3~40일 짜리도 있어서 시즌에 이런 팀 5개 받으면 반년은 한국에 없다고 보면 됩니다. 유럽도 장기상품은 두주정도 다니니까요.
인솔자는 대부분 프리랜서입니다. 이중 여행사에 소속된 프리랜서들도 있습니다. 완전한 프리 인솔자들은 여러 여행사들 것 다 받아서 인솔을 나가는데 여행사 소속 프리랜서들은 그 회사 물량만 받아서 나갑니다. 그래서 여행사 소속 프리 인솔자들은 서열같은 것도 있더라고요. 안정적으로 팀을 받고 싶으면 한 여행사랑 계약해서 인솔자로 일하는데 그냥 자유로운게 좋은 분들은 본인 인맥으로 한 해 인솔 스케줄을 다 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솔자 분들 중에 경력 많고 잘버는 분들은 억대 연봉자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근데 워낙 수입 업다운이 심하고 집보다는 타국에서 더 오래 사는 직업이니 이 직업은 정말로 본인 적성에 맞아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자격증은 있지만 직업이 인솔자인 사람은 아니어서 가끔 인솔 나가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ㅎㅎ 일단 나가면 최선을 다하긴 하는데 워낙 여행이라는 건 변수가 많아서 걱정스러울 때도 있어요. 나만 다니는 여행이면 나 혼자 알아서 하면 되는데 2~30명씩 손님들과 함께 나가면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고 다리가 후덜덜 해지거든요. 일정 내내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면서 다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