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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an 05. 2021

외국인과 한국인의 여행 스타일

프라하에서 일할 때 사무실 직원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하려는거야, 아니면 관광지를 들르는 것에 의미를 두기 위해서 여기에 오는거야?" 라면서.


그 직원이 보기에 우리나라의 여행 상품이 참 희한해 보였나봅니다.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 상품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곳을 다 들르는 일정이니까요.


그 직원은 한국에서 견적 의뢰가 올 때마다 이런 일정이 가능하냐며 놀라고, 하루에 이렇게 많이 보면 다 기억이 나냐면서 놀라고(자긴 관광지를 여러군데 가면 그 감흥이 뒤섞여서 기억이 잘 안날 것 같다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이 일정을 따라다니려면 체력이 정말 좋은건가 라면서 놀라고 이 일정으로 다니면 버스 기사 길에서 죽는다며 오버를 떨고 결국은 이건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며 한탄하고...


그냥 그 직원 눈에 한국의 패키지 여행 상품의 일정표는 어메이징 + 호러블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유럽은 모든 버스나 화물차에 타코메타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2시간 운행하면 20분 의무 휴식. 4시간 이상의 구간에서 두번째 휴게소에서는 30분 이상 휴식해야 합니다. 12시간 운행하면 의무적으로 11시간을 휴식해야 되는 것도 법으로 정해져 있고요.


물론 이 타코메타 기계는 속도를 위반하면 고스란히 기록되고 운행 시간 역시 기록되기 때문에 경찰이 불시에 체크해서 범칙금을 때립니다. 그래서 무조건 운행시간이 끝나면 시동을 꺼야해요. 벌점 누적되면 면허 취소됩니다.


한번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필 그날 주차장에 서있는 모든 버스에 대해서 경찰들이 타코메타를 털었더라고요. 불시에 벌어진 단속이라 모두들 경황이 없었습니다. 단속에 걸린 버스나 기사들은 운행을 할 수 없어서 공항에서 갑자기 기사가 바뀌고 버스가 바뀌고 도착한 투어팀은 공항에서 바뀐 버스나 기사 올 때 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는...


이건 버스 기사의 피로를 법으로 관리해서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필요한 제도라는 생각을 그 때도 했었습니다. 이게 졸음운전 방지법이거든요.


그래서 투어하다가 시간 되면 기사는 그냥 차 세웁니다. 기사는 시동 끄고 내려요. 이 사람들도 면허 취소되면 생계가 끊기는지라 타코메타 칼같이 지키기 때문에 한국 투어팀이랑 유럽 버스기사랑 정말 많이 싸움이 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도리'라는 문화가 있어서 '얼마 안남았는데 조금만 더 가면 안돼?' 라고 하지만 저사람들은 얄짤없이 '시간 다됐어' 거든요.


때문에 이 타코메타 운행 시간에 맞춰서 일정을 짜야 합니다. 하루에 300키로씩 이동하면서 투어하는 우리나라 상품이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요?




우리나라 여행 상품은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나라와 최대한 많은 관광지 또는 도시를 도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한 도시 샅샅이 보기 이런 상품은  안팔리고 10일 안에 4개국 찍기 이런 상품이 진짜 잘팔립니다. 그래서 여행사에서는 한 나라라도 더 있는 것 처럼 하기 위해서 국경에 붙어있는 도시를 한 번 찍고 들어옵니다. 그럼 3개국이 4개국으로 늘어나게 돼요. 유럽같은 곳은 여권 없이 다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품들 진짜 많습니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반면 외국사람들은 느긋하게 한군데에 있는 여행을 선호합니다. 한 개나 두 개 도시에 오래 머무르면서 그 도시 사람처럼 최대한 있어보는 거죠. 외국에서 외국 여행객을 만나면 호스텔에서 하염없이 책 읽고 있거나 카페나 관광지에서 그냥 멍때리고 있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투어하고 밤늦게 호텔에 들어오는 우리나라 여행일정을 주면 이게 무슨 여행이냐고 화를 내겠죠?ㅎㅎ


현지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앞에 설명한 타코메타도 있지만 호텔 조식시간입니다. 외국 호텔들은 조식당을 그렇게 빨리 열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국 투어팀은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우리팀 들어가는 날엔 조식당 문 빨리 열으라고 무던히 호텔이랑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여행 스타일이 확연하게 다른 이유는 바로 '휴가 문화'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들이 부장라인을 차고 있기 때문에 회사 일을 뒤로하고 노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죽더라도 회사에서 일하다가 죽어라!)


제가 회사생활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월요일, 금요일은 연차사용 불가. 여름휴가는 연차가 아무리 남아돌아도 월화수목금 다 쓰는거 안됨, 주말을 붙일거면 여름휴가에 한해서 주말 붙여서 평일 3일만 사용가능 이라는 어마어마한 휴가 날짜 강제가 있었으니까요.


지금이야 워라밸이니 욜로니 90년대생이 왔니 어쩌니 하면서 일과 여가의 밸런스를 따지는 시기지만 당시 그런게 어딨습니까. 위에서 저리 하라면 해야죠. 그 부장님 세대들은 토요일도 출근한 사람들인데 놀긴 어딜 가서 놀아!


해외여행을 가려면 보통 일본 도깨비여행이 아닌 이상 최소 4~5일이 필요합니다. 그나마도 주말낀건 주중상품보다 배 이상 비싸죠. 하지만 어쩝니까? 주말 껴서 아니면 못나가는걸? 그리고 중국 3박 4일, 동남아 3박 5일 또는 4박 5일, 유럽, 미국 등등은 아주 최소 5박 7일이 기본입니다. 하물며 먼 나라로 가면 갈수록 비행기는 최소 10시간 이상 타야 하잖아요? 오며가며 하루 이상을 써야 하니 실제로 현지에서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연차사용을 강제하는데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어떻게 갑니까... 그래서 어쩌다 정말 힘들게 한 번 나가게 되는 여행에서 아예 뽕을 뽑고 오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잠을 줄여서라도, 이동거리가 기함을 할 지경이라도 한 번 나갔을 때 모조리 다 보고 오리라. 내가 생전에 여길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나  라는 의지를 불태우며 외국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라는 일정으로 패키지 여행 일정으로 온몸을 불살라서 다니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 한국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가 가세하면서 빨리, 많이, 한방에 다보기 식의 한국식 패키지 여행 문화가 정립이  됐습니다.


하지만 외국은 보통 2주정도의 휴가가 나오니 여행다니며 찐 리프레시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휴가내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어떻게든 최대한 놀아보기 위하 퇴근후 (또는 오후 반차 써서)공항으로 날라갔다가 입국과 동시에 출근하니(또는 오전 반차 써서)  휴가를 다녀오면 더 피곤한데 외국은 최소 두주가 휴가니 진정한 휴가가 가능한거죠.




지금은 외국 에이전트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한국 패키지 스타일들에 대해서 다 꿰고 있어서 이야기 하기가 참 편합니다. 너희 '많이, 왕창, 엄청, 열심히, 다 보는거 좋아하잖아~! 우리 그런거 견적 내 줄 수 있어!!' 라고 하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외국인들처럼 해먹에 누워서 하루종일 책보다가 맥주  잔 하다가 슬렁슬렁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하는 이런 여행 좋아라 합니다. 동네 카페에 죽때리고  앉아서 외국사람 구경하고... 그렇다고 제가 그 마을 태생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어느 나라의 한 도시에 녹아들어가고 있다라는 느낌. 뭔가 다른 문화랑 완전 동화됐다 싶고 새롭고 그렇거든요.

https://m.blog.naver.com/enable74/221238400315

이건 우리나라 패키지 상품으로 다니면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입니다. 하물며 이런상품 내놔봐야 팔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패키지 투어는 일정부분 여행의 아이덴티티를 버리면 매우 경제적입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관광을 뽑아내거든요. 전세계에 이런 가성비 쩌는 투어가 없습니다. ㅎㅎ


이 비용으로 이렇게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패키지 상품밖에 없습니다라고 감히 장담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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