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 세상에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는 홈쇼핑에서 여행상품도 팔았습니다. 아마 각 홈쇼핑 채널에서 별별 나라들의 여행 상품을 파는 것들을 많이들 보셨을거에요. 여기서 판매한 여행상품은 전에 설명드린 여행사 패키지 상품입니다.
여행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상품을 많이 팔고 싶고 홈쇼핑은 모객력이 보장됩니다. 그래서 그 둘이 손을 잡은겁니다.
여행사에서는 홈쇼핑 채널과 계약을 맺고 방송 시간을 하나 구매합니다. 업계말로는 슬롯을 하나 산다고 합니다. 이 슬롯이라는게 방송 시간대를 사는 것인데 패키지 여행상품을 파는 홈쇼핑은 보통 토요일 00시~2시 / 20시에 방송을 합니다.
아마 금요일 퇴근 후에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술 한잔 하다가 또는 놀다 들어와서 씻고 자정에 티비나 좀 보다 잘까 해서 채널 돌리다가 새벽에 홈쇼핑에서 여행상품 파는 것 보고 뽐뿌받아서 예약하신 분들 정말 많을거에요. 이 시간대에 여행 상품을 방송하는 이유가 주중 내내 격무에 시달린 사람들이 가장 편안히 풀어지는 시간이 금요일 밤 ~ 토요일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8시는 밥 다 먹고 티비보던 여행업계의 큰 손 5~60대들이 여행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굉장히 높은 시간입니다.
저도 다른 지역 여행 상품 구경한다고 일부러 저 시간대에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었던 적도 있고 저희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체크하느라 보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홈쇼핑은 구매를 최대한 자극하기 위해서 여행지의 화려한 영상이 가득해서 보는 재미가 있고, 쇼호스트들이 곧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처럼 호들갑을 떠니 마치 내가 이미 저기 가 있는 것 같은 즐거운 기분이 들거든요.
홈쇼핑 회사들이 여행상품에 눈독을 들인 것은 생방송 중에 완판을 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 상품같은 것은 정해진 방송 시간 내에 완판을 시켜야 하는데 여행 상품의 경우는 그냥 예약만 받으면 되거든요.
모든 홈쇼핑 여행 방송에서는 "오늘은 결제하실 필요 없습니다. 항공 좌석이 모자랄 지도 모르니까 같이 가실 인원수 대로 예약을 먼저 하세요. 취소는 언제든지 가능하고 결제는 여행사 해피콜이 오면 그 때 하시면 됩니다."라고 멘트를 합니다. 오늘은 예약만 하라니, 부담도 없죠?
홈쇼핑사에서는 방송이 나가는 중에 들어온 예약자들 정보를 받아서 여행사에 줍니다. 이후 여행사 담당자가 그 예약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진짜 갈건지, 언제 갈건지, 몇 명이서 갈건지 등등을 확인하고 상품 결제는 홈쇼핑 회사가 아닌 해당 여행사에서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럼 홈쇼핑 회사에서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 여행상품에 대해서 홈쇼핑사는 어떻게 이윤을 낼까요? 물건이야 팔고 수수료 떼고 지불해주면 되는데 여행 상품은 그냥 예약만 받아 준거잖아요?
바로 방송시간대를 팔아서 내는 것입니다. 각 홈쇼핑사들은 입점비를 받고 여행사들에게 채널의 시간(슬롯)을 판매 합니다. 여행상품을 방송하는 시간대는 고정이니까 한시간당 얼마 이렇게 해서 파는거죠. 비용은 시간당 오천에서 1억정도 합니다.
방송이 결정되면 여행상품에 대해서 쇼호스트들에게 피티를 합니다. 이들도 상품에 대해 알아야 한시간 동안 여행상품은 여기꺼로 사서 가라고 호객을 할테니까요. 먼 나라는 사진이나 영상을 전해주고 가까운 나라들은 방송사에서 나가서 영상을 찍어옵니다. 쇼호스트가 리조트에서 슬라이드 타는거 보고 와, 저 사람은 무료로 여행갔네... 하며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직접 나가서 찍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홈쇼핑으로 파는 여행 패키지 상품은 그냥 여행사에서 파는 상품 가격보다 좀 더 쌉니다. 그리고 방송중에 예약하면 특전이라고 해서 막 서비스를 넣어줍니다. 옵션으로 하는 투어를 넣어주기도 하고 방을 업그레이드 해준다거나 하는 것으로 구매를 부추깁니다. 방송 중 쇼호스트는 예약 고객에게 약 $100 상당의 특전을 드린다며 막 빨리 예약하라고 자극을 합니다.
일전에 패키지 상품이 그나라 왕복 항공권 비용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을 해 드렸는데 홈쇼핑은 그거보다도 싸다니. 게다가 옵션할 것들을 넣어주고 이런저런 혜택을 주는데 왜 더 싸지? 라는 의문을 가질 법 합니다. 게다가 슬롯비용까지 홈쇼핑사에 주면서 어떻게 판매가를 더 낮출 수가 있는지.
일단 슬롯 비용은 많은 부분을 현지 랜드가 부담합니다. 여행사는 슬롯비 많이 안내더라고요. 거의 여행사에서 랜드에다가 '홈쇼핑지원금'이라고 해서 얼마 이상 내라고 합니다. 보통은 현지 쇼핑센터에서 홈쇼지원금을 거의 부담합니다. 사람이 많이 오면 구매도 늘 것이라 기대하고 내는거죠. 쇼핑센터 얼마 현지랜드 얼마 서울사무소 얼마 여행사 얼마 이렇게 나눠서 냅니다.
그리고 홈쇼핑 상품은 가이드/기사 팁이 좀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불포함이고요. 패키지 상품들도 대부분 가기팁이 불포함이라 뭐 이건 크게 가격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긴 하지만...
홈쇼핑 여행상품이 저렴한건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게 주 목적이라기 보다는 마케팅이 주 목적이라서 그렇습니다. 홈쇼핑은 많은 사람들이 보니 광고 효과가 좋죠. 그리고 한번에 왕창 많이 팔아서 현찰을 대량으로 융통시키는 목적도 있습니다. 또 신규고객 DB도 생기고요.
패키지 상품을 많이 팔면 팔수록 여행사도 좋지만 랜드도 좋습니다. 물량이 계속 많이 공급이 돼야 호텔이나 식당같은 곳들에게 입지도 굳히고 에이전트 비용을 더 낮게 하도록 딜을 할 여지가 생기거든요.
하지만 상품가를 낮춰놨으니 인원을 늘려서 단가를 맞춰야겠죠? 때문에 홈쇼핑으로 출발하는 상품은 한 날짜에 출발하는 인원이 엄청 많습니다. 15명이 적정인원인 상품인데 막 30명, 40명 이렇게 출발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가게 되면 현지에서는 그냥 알아서 잘 따라다니는 수 밖에 없습니다. 홈쇼팀은 인원이 많으니 인솔자가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해요.
그리고 홈쇼핑 상품은 내가 원하는 날짜에 출발하는 상품은 없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일단 홈쇼한다고 항공블럭을 싼 날짜로 받으려 했을테니 황금시간대 출발하는 티켓은 못씁니다. 게다가 좋은 시간대나 날짜는 그냥 놔둬도 잘 팔리는데 뭐하러 홈쇼핑으로 팔겠어요?
홈쇼핑 한번 하면 몇천콜씩 들어옵니다. 평소에 여행사로 문의전화 오는 것에 비하면 한시간 방송에 엄청난 유입입니다. 그리고 이 손님들은 이미 방송 보면서 특전에 뭐에 마음이 그 여행지에 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실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뭐... 가끔 완전 판매를 죽쑤는 홈쇼핑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상품이었나... 예약이 너무 부진해서 본전도 못건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홈쇼핑에서 입점비 돌려주진 않아요. 그냥 손해는 홈쇼지원금 많이 낸 랜드사가 떠안을 뿐...
종종 사람들이 저한테 어디 가는 상품 뭐가 싸고 좋냐고 물어보면 (싸고 좋은 건 세상에 없지만) 홈쇼핑에서 파는 여행상품으로 가라고 합니다. 홈쇼에서 파는 상품은 제일 많이 팔리는 상품 중에서 선정해서 파는 것이라 그 지역의 대표상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많이 팔려고 가격도 저렴하게 해놨으니 손님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죠.
지금은 국내 여행상품들만 홈쇼핑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여행상품이나 스키장 상품, 아니면 호텔들 숙박권을 팔더라고요. 심각한 코로나 시국에 국내긴 해도 여행상품을 판다고 엄청들 욕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홈쇼핑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채널을 편성한 것일거라 이해는 갑니다. 근데 국내상품한테는 슬롯비 얼마나 받고 있으려나요. 아마 해외상품처럼 그렇게 엄청나게 받진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