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아홉수 앓이를 했는지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인지, 돌아보면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코로나로 여행업은 박살이 났고, 몸은 집에 처박혀 있고, 시험관에 유산에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가고....그렇게 마흔이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던 12월 31일 밤. 참으로 처참한 기분이었습니다.
시험관 신선 1차에 발생한 유산으로 인해서 내 마음대로 정한 난임 방학기인 12월을 보내면서도 몸과 마음이 참으로 불편했습니다.
이제 나 인생의 불혹이라는 마흔인데 모든 것이 다 무너져있는 기분이랄까.
마흔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더니 저는 온 세상에게 시달리며 흔들리는 중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시험관을 하면서 너덜너덜해진 육체와 정신, 종료기간이 다가오는 실업급여... 앞이 막막했습니다. 설령 여행업이 정상화 된다 한들 저 많은 여행업 실업자들 중에서 마흔인 나를 다시 뽑을까? 젊은 직원들 우선으로 찾지 않을까? 싶더군요.
최저임금 계약직에 단기알바같은 일들이 왜그리 많은지. 직장생활 10년이 넘는 내 경력에 이따위 자리들 밖에 없는건가? 싶은 자괴감이 들 정도의 일자리들 이었습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전달되는 최저임금, 최저시급들의 일자리를 보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세상사람 모두가 마흔이 된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겠죠. 여태 내가 인생을 매우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은 늘 괜찮다고 해줬지만 제가 괜찮지 않았어요.
다들 저에게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결혼한 여자가 나이 마흔이나 먹고 이제와서 다른 일을 어떻게 할거냐며 그렇게 경력단절여성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창업을 하자니 겁이나고(돈도 부족하고)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하나 미칠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생겼으면 아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면 되는데 시험관이 두번째 실패하고 보니 패닉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시험관을 해? 아니면 이제 난 일을 할 수 없는걸까...
남편은 글을 계속 쓰라고 했는데 글이 내 일이 될지...두려웠습니다.(물론 브런치북은 두개나 냈습니다만 ... 브런치 북으로는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ㅎㅎ)
우리나라 학교에는 교과교사와 비교과 교사가 있습니다. 교과교사는 과목교사, 비교과교사는 보건/영양/상담/사서 교사를 말합니다. 갑자기 왠 선생 이야기인가 하시겠지만 뒤에 설명을 드릴게요.
제가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으로 교직이수를 하고 졸업했던 그 시기에 비교과 과목은 교원자격증이 있어도 교원이 아닌 행정직 신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임용에서는 비교과 티오가 전국에 한자릿수 였거든요.
학교 입장에서는 교과교사도 모자라는데 비교과 티오가 교사 티오를 잡아먹으니 반기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영양, 상담, 보건 선생님들이 단합해서 학교에 자리를 만들어가는 동안 학교도서관 사서는 계속 최저임금의 행정직원으로 뽑아댔고 그 결과 교원이 아닌 일반 사서 자격만 갖고 있는 분들로 학교가채워졌습니다. 그분들이 결국 무기직으로 전환되면서 사서교사는 설 자리가 사라졌고요. 학교인데 담당자가 교원이 아닌 일반 직원이 운영하는 도서관이었으니 학교도서관은 교육의 개념이 아닌 그냥 '운영'에 치중하게 됩니다. 학교입장에선 교과교사 자리를 사서교사로 채울 생각은 1도 없었던거죠.
그리고 여태 본 바로는 문정과 내에서는 사서교사를 별로 안좋아합니다 ㅎㅎ 그리고 교수님들도 크게 힘을 안씁니다. 제가 입학하던 때만 해도 저희 교수님이 학교도서관 운동을 주도하셔서 시행은 됐는데 그분들 정년퇴임 하시니 또 제자리더군요. 그리고 교수님들 입장에선 자기 제자들의 대부분이 일반 사서인데(교직 이수는 티오가 정해져 있으니) 사서교사가 의무배치 되어봐야 자기 제자들이 갈 곳 줄어드는 것이라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겠죠. 아마 학도관운동도 그냥 제자들 일자리 만들기 사업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학교도서관에 있다가 길이 보이지 않는 그 상황에 결국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직 창창한 20대에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 막막했거든요. 기간제 교원 자리라도 있으면 모를까 당시 사서직은 기간제 교원 자리 티오는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옮겨간 사기업에서 제대로 급여를 받아보니 기분이 참 다르더라고요.
이 직군의 특성 or 폐단인지 모르겠지만 준사서/정사서/사서교사가 막 뒤엉켜서 일선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사서자격증은전문대학 졸업시 준사서/4년제 대학 졸업시 2급 정사서/ 4년제 대학에서 교직이수를 하거나교육대학원 졸업 시2급 정사서와 함께 사서교사자격이 발급되는데 공무원과 정교사(또는 기간제)가 아닌 이상 이 모든 사서의 처우는 거의 아르바이트 급입니다.
그리고 도서관이 책빌려주는 곳 + 사서는 앉아서 우아하게 책이나 보는 직업이라는 인식만 강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은 무자격자가 일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서직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가장 억울해 하는 멘트가 저 '우아하게 책보는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우아하게 책 볼 시간 없고 책 표지랑 책 등을 많이 보고 서류작업에 굉장히 많이 치입니다. 도서관을 제대로 돌리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가거든요. 고생을 사서해서 사서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여기서 '학교'도서관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학교도서관에서는 독서수업이 진행이 되고, 도서관 협력수업이 진행이 됩니다. 예전에는 애들 도서관에 풀어놓고 책봐라~ 하는게 도서관 수업이라고 생각하셨는데 도서관 협력수업은 그게 아닙니다. 교과교사와 사서교사가 해당 커리큘럼에 대해 상의하고 함께 수업모델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효과적인 수업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학교가 배움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핵심적인 힘은 도서관에서 나옵니다. 모든 지식의 보고니까요.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볼 때 결국은 평생학습체제로 가야하는데 그것 역시 도서관이 베이스가 됩니다.
현장에 와서 보니 십여년 전 큰 돈 들여 만들어놓은 도서관이 중간에 여러 사람 손을 타서 관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정부에서 지원금이 안나오면 교과교사가 겸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얼마나 많은 학교도서관이 이렇게 운영되어 왔을까 답답하더라고요.
애초에 학교도서관 운동을 시작하면서 사서교사들을 같이 의무배치했으면 엄청난 교육적 효과가 났을겁니다. 학교마다 대대적으로 도서관을 지어놓고는대충 운영해온 것을 보면 그 많은 예산소비들이 참 아쉬운 현실입니다. 1, 2년씩 기한 채우다 나간 분들이 과연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학교 도서관을 운영했는지는 저 조차도 의문입니다.
학교는 기간제로라도 사서교사를 배치하고 사서교사가 아이들 평생학습에 대한 자세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과는 특정 과목의 지식을 전달하지만 아이들에게 확산적 사고방식과 평생학습의 태도를 길러주는 것은 사서교사거든요. 왜 아직도 사서교사를 편한 보직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씩 인식이 개선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그런데 정권 바뀌면 또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대체 왜 학교도서관이 정치에 휘둘릴 일인지 의아스럽습니다.
2018년 독서진흥법 변경으로 몇몇 도에서 사서교사 의무배치가 시행이 되니 사서교사가 모자랐나 봅니다.(홍보도 제대로 안했으니)
당연하겠죠. 그 교원자격증 소지자들 다 저처럼 박봉과 놀라운 처우에 질려서 다른 분야로 떠났을테니까요. 그랬더니 지금 학생수가 줄어 사범대도 줄이고 일반대학 교직 축소를 하는 이 와중에 사서교사를 양성하려 교직 티오를 늘리겠다는 말도 안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현실입니다. 헛웃음이 나옵니다. 여태 사서교사들 처우를 도서관 알바처럼 해놓고는 이제와서 신규인력 양성이라니.... 돈들여 시간들여 급하게 왕창 사서교사 양성해서 또 모조리 백수 만드시려고요?차라리 사서교사 자격증 갖고 있는 사람들을 재교육하는게 훨씬 빠르고 생산적일텐데왜 또 고학력 백수를 양산할 준비를 하는걸까요.
정책 바뀌었다 하면 거기서 뭐라도 빼먹으려고 저런 앞뒤없는 대책 내놓는 사람들 참 문제입니다.
다시 고된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해 어렵게학교도서관에 돌아오고 보니 여러 생각들이 들어서 글이 이리저리 튀었습니다만 다시 돌아온 학교는 여전히 활기차고 아이들은 희망찼습니다. 봄이면 예쁜 꽃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푸르름이 진해지는 운동장도 여전하더라고요. 가을이 되면 예쁜 단풍이 들겠죠?
'쌤~ 안녕하세요!'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물론 '너는 선생이냐? 나는 학생이거든?' 하는 녀석들도 아주 가끔 보이긴 합니다만...
제가 임용을 다시 준비하고 싶다 하니 중학교 선생인 막내가 그러더군요. 임고는 가정파탄의 지름길이니 잘 생각하라고. 누나 지금 경력으로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선생님이라고. 제가 20대 중반이었을 때도 임고는 인생파탄의 지름길이었는데 마흔이 되어서 다시 봐도 여전히 임고는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인생 파멸을 안겨주는 시험인가 봅니다.사실 엄두가 안납니다.1년을 통으로 털어넣어도 될까말까한 시험이 임용고사니까요.
동생에게 '내가 만약 20대 중반에 최저임금 계약직으로 도서관에서 존버했으면 결국은 정교사가 됐을까?' 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대신 그 기간에 누나는 사회경험이 쌓였지 않냐며.
비록 지금은 한 해 짜리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남에 당분간은 좀 더 즐거워보려 합니다. 비록 마스크 속에 갇혀서 서로 눈만 바라보고 있지만 생기있는 아이들 눈빛은 여전합니다.사서쌤 새로 오셨다고 구경오는 아이들 보면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ㅎㅎ
이제는 좀 더 깊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해서 학생들과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상태로 우왕좌왕했던 젊은날의 나와 달리 지금은 아이들의 곤란함이나 아이들의 생각이 조금 더느껴지고 그에 대한 제 처세도 훨씬 좋아졌더라고요.
이 좋은 날씨에 중간고사를 목전에 둔 학생들이라 문제지를 들고 동동거리는 학생들에게도서관에서라도 조금 덜 지치도록 으쌰으쌰 푸시를 좀 해줘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