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살기 힘든 요즘. 그 전에도 살기 팍팍했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거의 일상이 폭파되었죠.
삶이 힘든 젊은이들(?)사이에 4B(非)라는 신조어가 나타났습니다.
비연애, 비혼, 비출산, 비섹스.
이렇게 성관계도 연애도 결혼도 안 한다는 사람들이 출산이야 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가기도 하죠.
앞 글에도 말했지만 결혼까지 가는데 진짜 별별 우여곡절이 다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 힘든 것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결혼을 하고 나니 굉장히 불편한 질문과 마주치게 됩니다.
'아기는?'
- 딩크 부부에게 쏟아지는 무례한 말들
저희는 딩크 부부였습니다.
과거형으로 말한 이유는 6년 가까이 딩크 부부로 살다가 마흔이 다가오니 아이를 하나 낳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남편과 신중한 의논 + 오랜 기간 고민 끝에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안 생기면 다시 딩크의 삶을 살 예정입니다. 이건 오롯이 '저희끼리' 결정한 부분이에요.
이렇듯 아이에 관한 문제는 저와 남편이 결혼하기 전부터 결정한 부분이었고, 아이에 관한 의견까지 서로 일치했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을 한 것인데, 너무나 당연하게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아이에 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라고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시댁에서부터 시작된 아이 이야기는 회사에서도 좋은 소식 없냐, 지인들에게서도 좋은 소식 없냐. 그놈의 좋은 소식... 말만 들어도 둘 다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저희 딩크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쏟아지는 잔소리 폭탄이었습니다.
왜 아이를 안 낳냐, 아이는 하나 있어야 되지 않냐부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낳아라, 애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줄 아니, 아기 싫어해도 본인 애는 이쁘다 등등. 하다못해 저흰 저출산을 일으킨 죄인 취급까지 당해봤습니다. 둘이 만나 하나도 안 낳으면 니들이 바로 인구감소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나 뭐라나.
오죽하면 딩크라고 하지 말고 슬픈 표정으로 아기가 안 생긴다고 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입을 막으라는 솔루션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근데 어떤 대답을 해도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결론이 없습니다.
1. 결혼은 했냐 - 아이는? - 없다 - 왜 없냐 - 안 낳을 거다 - 니들 미쳤냐, 애가 얼마나 예쁜데...
2. 결혼은 했냐 - 아이는? - 안 생긴다 - 병원 가라. 어디가 좋다더라...
3. 결혼은 했냐 - 아이는? - 하나 있다 - 둘째는? - 안 낳을 거다 - 외동은 외롭다 둘은 있어야지...
제일 충격받은 것은 시부모님 말씀이었습니다. 남들 다 있는 손주가 저 때문에 없다고, 얼른 애 하나 낳아서 시댁에 두고 일하라고... 부모님께 손주를 못 안겨드리는 천하의 불효자 취급을 당하는 것은 모든 딩크 부부의 숙명인가 봅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생겨서 낳게 되면 전 제가 키우려고 했습니다. 남편역시 아이를 이집, 저집으로 돌리지말고 우리가 키웠으면 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아이를 시댁에 두고 저는 일을 나가야 되는걸까요?
그리고 딩크 부부에게 하는 또 다른 심각한 말은 '애가 없으면 이혼이 쉽다'입니다.
애가 있든 없든 이혼은 쉬운 문제가 아닌데 유독 딩크 부부에게 이혼이 쉬울 것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애 있다고 이혼 안 하지 않고, 애 없다고 쉽게 이혼하지 않습니다.
애 없이 살 거면 동거나 하지 왜 결혼하냐고 하는데 그럼 결혼을 애 낳으려고 하나요? 사랑하는 반려자와 평생의 인연을 맺고 싶어서 결혼하는 거지 결혼의 목적이 출산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지금은 편해도 노년에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요즘은 자식들도 다 서른전후로 독립해서 나가는 추세인 한국에서 저희 부부의 노년에 자식들이 우릴 외롭지 않게 해줄까요? 차라리 돈 많이 모아서 남편과 함께 살 실버타운 알아보는게 훨씬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는 아니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결혼 생활의 선택지 중 하나인 아이를 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비수가 되어서 우리를 난도질했습니다.
- 딩크의 이유
우리가 딩크를 결정한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었고, 조금씩 돈을 불려 가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맘 맞으면 훌쩍 떠나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것은 꿀잼이었죠.
주변에 아이 키우는 집들 보면 본인들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데 눈은 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 개인의 행복 수치를 우리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힘든 날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 굉장한 무리가 가는 일이라는 것도 딩크를 결정하는 큰 이유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굉장히 빠르게 노화가 오고 몸이 망가지고 회복이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왔고, 지인들의 대부분이 겪는 산후우울증 사례들을 보면서 굳이 내가 저렇게 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나 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다들 너무나 힘들어 보였거든요. 친한 언니는 산후우울증이 심각하게 와서 아이를 씻기다가 얘를 물에 담그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도 하더라고요. 산후우울증은 정말 무서운 것인가봅니다.
저렇게 힘들게 낳아서 키워봤자 지금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걸 보면... '자식 키워봐야 1도 소용 없다'라는 말에 동의하게 되죠.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에게 풍족하게 다 해줄 수 없다면 안 낳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저희 둘이 살기엔 지금 소득이 딱 좋은데, 물가는 계속 뛰는데 소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아이를 넉넉하게 키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내 아이가 나이키 운동화 안 사준다고 울고 최신형 휴대폰 안 사준다고 떼쓰고 비싼 해외 유학 안 보내준다고 드러누우면 어쩌나요... 나도 나이키 운동화랑 최신형 휴대폰 고르고 골라서 돈 모아서 사고 비싼 해외 유학 못 다녀왔는데...
- 모든 딩크 부부들이여, 당당해 집시다
딩크를 죄인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딩크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딩크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맞닥뜨린 불편한 상황이 너무나 많았기에 우리가 딩크 부부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거든요. 그래도 딩크로 살아온 연차가 꽤 많이 쌓였네요. 별별 상황을 다 겪다 보니 다투기 싫어서 나만의 처세법들이 백가지 쯤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대체 왜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반발심이 있었습니다. 내가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데 왜 다들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건지. 모두들 아이에 대해서 한두 마디 못 보태서 안달 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애 키울 돈과 시간을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우리에게 생채기를 내는 걸까.
오히려 '요즘은 애 없이 사는게 대세라더라. 니들끼리 좋아하고 잘 살면 됐지'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칠순이 훌쩍 넘으신 저희 큰 이모가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ㅎㅎ)
그래도 이제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딩크 부부의 삶을 점점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추세이니 조금 더 지나면 비혼만큼 딩크의 삶도 당연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딩크들이여. 당당해집시다!
애초에 결혼한 사람들에게 '아이는?' 이라는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남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아무리 할 말이 없다 한들 남의 신변잡기를 캐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굉장히 나쁜 대화법이라고 생각해요. 만에 하나 진짜로 아이를 정말 원하는데 난임인 경우 저런 무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획일적인 삶을 사는 시대는 아닙니다. 딩크도 삶의 한 방식이고요. 부부가 고심해서 결정한 부분이니 부부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