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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pr 20. 2021

마흔인데, 왜 비웃으세요?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업계 취업에 나이를 보냐는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작년 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실직자가 됐던 그 때는 한창 일할 나이 39살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업계가 초토화가 된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39살 기혼 여자. 업계가 이정도로 망가지지 않았더라도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라도 있었다면 더 어려웠을테고. 그랬다면 아예 전업 육아맘으로 포지션 전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서른 일곱 때 일하던 회사의 여자 팀장이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도 낼모레면 마흔인데 별로 맘에 안들어도 그냥 이 회사에 나 죽었소 하고 다녀. 전문직도 아니고 여자나이 마흔이면 어디가서 뽑아주지도 않아. 게다가 기혼이잖아"


고만고만한 서울의 대학을 나온 고만고만한 경력의 기혼여성이면 고만고만 닥치고 조용히 다니라는 소리로 들렸다.


화가 났다. '그래서 팀장님은 마흔이 넘어서 여기 고분고분 다니시는 건가요?' 라고 따져묻고 싶었다. (그분은 별로 고분고분하게 다니지도 않았고 하물며 나보다 먼저 퇴사했다)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무직자가 되고 보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덕에 눈치는 좀 보이지만 먹고 살 수 있었고, 오랜기간 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실업급여가 그래도 좀 길게 나올 상황이었던 . 그리고 행인 것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가는 기로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망가진 업계는 코로나 탓이라며 하루하루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잉여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실업급여는 기간이 정해져있고 그 돈을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해야한다. 원서 낼 곳이 마땅치 않아서 꾸역꾸역 취업사이트를 뒤져가면서 이력서를 냈다. 취업사이트를 뒤지다보니 절로 '문송합니다' 소리가 나왔다.


포털에는 '이 자격증으로 월 5백! 주부가 1억 벌이에 성공한 팁! 주식과 코인이 대박나서 조기 은퇴한 능력자!' 같은 기사들이 잔뜩 깔렸다. 나에겐 남의 세상 얘기였다.


그렇게 회신없는 이력서 제출을 해를 바꿔가며 반년 넘게 하고 난 뒤 실업급여 마지막 달이 찾아왔다. 이제 다음달이면 그나마 찔끔 나오던 돈도 이젠 없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전산회계를 배워야 하나,  요즘 직업상담사 많이 뽑는다는데 직업상담사를 따야하나? 그래도 어느 회사에서나 필요하다는 전산회계/세무 자격증이 있으면 기존의 회사 경력이랑 묶어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일배움카드를 써보고자 국비지원 학원에 전화를 했다.


처음엔 친절하던 직원이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길래 "마흔이요" 라고 했더니 작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저희 학원은 대부분 20대가 강의를 들어요" 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저 멘트의 의미는 자기네 학원에 오지 말란 것이었다. 저런 상황에서 철판을 깔고 학원에 찾아갈 정도로 나는 멘탈이 강하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면서 바짝 배우고 싶었는데 나이가 많다고 까였으니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박쌤이라는 훌륭한 분이 무료로 강의를 진행하고 계셔서 집에서 그분 강의를 듣고 전산회계 자격증을 땄다. 막상 따고 보니 전산회계 자격증을 내 경력과 묶을수도 없었고 그 분야 신규로 들어가려면 20대여야 했다. 그쪽 경력이 1도 없는 마흔의 나는 취업이 될 리 만무했다.


이게 아니라면.. 먹고 살려면 기술이 있어야 할텐데 그동안 필요했던 포토샵을 배울까? 일러스트도? 아, 나는 인디자인을 좀 할 줄 아니깐 이참에 책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워서 출판사에서 일을 하거나 프리로 일을 해볼까? 등등의 생각으로 HRD NET을 뒤져봤다.


직업훈련과정 중에 출판사 취업 과정이 있었다. 특고업종 퇴사자로 분류된 나는 내일배움카드 과정 전체 무료 혜택 대상자였고 학원을 다니고 나면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도 생겼다. 업무에 필요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전부터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 배울 수 있으니 참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국비지원 출판사 취업과정에 한군데는 신청도 못해보고 거절당하고(자기네 원장이 면접을 볼건데 붙으실 수 있겠냐며 빈정거렸다) 다른 한 곳은 면접을 보고 떨어졌다. 두번째 학원에선 최초 접수때 1인 창업도 고려중이라하니 그런얘긴 면접땐 하지말란 말을 들었다.


나보다도 최소 열살은 어려보이는 직업훈련학원의 직원은 나에게 말했다.

"회사에서 팀장하던 분이 출판사 신입으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출판사 진짜 박봉이에요, 최저임금부터 시작해요"

"이 과정 신청한 사람들은 다 20대에요"


면접이랍시고 앉아있는 그 자리가 가시방석이고 내 나이가 마흔인 것이 낯뜨거웠다. 그래도 나 하나 뽑으면 나랏돈 200만원짜린데 설마 떨어뜨리겠나 싶었는데 진짜 떨어졌다. 이럴거면 애초에 오지말라 할 것이지 차비랑 시간 아깝게 부르긴  부른건가.


불합격 문자를 받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저들이 나를 떨어뜨린 이유를.


1. 국비지원학원들은 취업률이 중요할텐데 내 스펙과 경력은 출판사에 취업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2. 나이 많은, 컴퓨터도 잘 모르는 것 같은 저 사람을 학원에 들여보내면 진도 끌고가기가 힘들 것 같고 저 사람 뒤치닥거리하는 걸로 진빼고 싶지 않다.

3. 20대 애들 데리고 수업하는게 낫지 강사보다 훨씬 나이많은 사람 앉혀놓고 강의하기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직업훈련 학원은 마흔인 나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직업훈련이라는 것은 20대의 젊은 애들을 신입으로 굴려먹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과정인데 거기에 떡하니 나이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그 누구도 달가워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일배움카드로는 마흔인 내가 전직을 위해 필요한 실업자 과정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3백만원 한도라는데 만원도 쓰지 못했다.


내처지가 한심스러워져서 내가 살아온 40년 인생을 하나하나 곱씹어봤다. 그래도 서울 4년제 대학 출신에, 이름대면 아는 기업도 오래 다녔고 코로나 사태로 백수가 된 사람. 그런데 마흔의 기혼여성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재취업을 위해 직업교육을 받고자 했지만 내일배움카드과정을 진행하는 학원들에게서 다들 "마흔이요?" 라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마흔은 실업자면 안되고 마흔은 직업학원에 가면 안되는 나이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우울해 하자 남편은 믿고 거르는 HRD 라면서 함께 욕을 해줬다. 근데 그 믿고 거른다는 데에서 나를 거르더라?




청년취업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취업장려금도 주고 지원혜택도 빵빵하게 주고 기업들이 청년층을 고용하면 혜택도 많이 준다. 그런데 내가 40대 기혼여성으로 실직자가 되었을 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최저시급, 최저임금의 일자리들 밖에 없었다.


내 경우는 그래도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실직이라 약간의 정부지원도 있었고 비자발적 퇴사자라는 인식이라도 있었지만 임신, 출산, 육아 또는 질병으로 인해 아니면 그냥 잠시 쉬고 싶어서 쉬다가 다시 일을 하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특고업종에서 쏟아져나온 실업자들이 모두 2,30대는 아닐텐데...)


내가 본 내일배움카드 제휴 학원 직원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불가능하다에 백만 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왜 일을 쉬다 왔냐고 손가락질 할 것인가? 커리어 관리를 그리 했으면 그런 대접 받아도 싸다고 나무랄 것인가?


사람 인생은 살면서 수많은 상황이 발생하고 20대에 시작한 일을 정년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이 세상에서 여러 상황들로 인해 커리어가 끊겼다 해서 이렇게 처절히 기회를 박탈당해도 되나 싶었다.


나같은 경력단절의 사람들이 취업학원의 문을 두드렸다가 어떻게 좌절했을 지 안봐도 비디오였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상담전화를 했다가 상처받은 사람이 비단 나뿐이었을까.


그들은 아마 전화 끊고 자기들끼리 상담자를 비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 마흔이래. 여태 뭐하다가 이제 와서 왠 직업훈련? ㅋ"


고용노동부에 따지고 싶었다. HRD NET의 실업자 계좌제 강좌들은 20대 취준생만을 위한 것이냐고. 그럼 그 이후에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최저임금, 최저시급의 일자리들만 추천해 주지 말고 어느 나이든간에 그 사람이 다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설계하는데 도움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40대에 일을 새로 시작해도 정년까지는 앞으로 20년 이상이 남아있다. 그런데 직업훈련계에서는 40대는 뒷방 늙은이였다. 백세인생이라며, 내 나이가 그렇게 심각하게 늙은 나이였던가? 마흔도 이렇게 취급하는데 그 이후 나이의 사람들은 어떤 취급을 할 지 안봐도 알 것 같다.


지금은 어찌어찌 다시 일터로 돌아왔는데 참 험난하고 비참한 일년을 보내고 온 곳이다보니 지금의 일자리가 굉장히 소중하다 못해 눈물나게 고맙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와 처지에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을지, 얼마나 처참한 기분일지... 직접 당해보고 나니 너무나 서글펐다.


적어도 다시 무언가를 배워서 새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마흔이요?(피식)'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언제부터 마흔이 그런 나이였다고. 학원들이 취업 실적에만 연연해서 2~30대 초가 아니면 내일배움카드 실업자 과정은 들어가지도 못하게하는 것부터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되는 것 아닐까.


그나마 지금은 다시 일하면서 그때 당한 수모에 대해 분노라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 학원들 덕분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가서 화도 낼  수 없었다. 화를 내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비루해 보였으니까.


내일배움카드를 들고 그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학원은 상담자에게 그딴 반응은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배우겠다는데 나이는 왜 묻는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날 비웃던 당신들의 마흔은 어떨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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