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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n 08. 2021

잘 먹고 산 다는 것은

살면서 많이 고민하고, 시간을 쓰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기본 생존 조건이 의, 식, 주 라고 할 정도로 먹는 문제는 우리 삶의 큰 문제라고 봐도 무방할테죠. 항상 '오늘 뭐 먹지?'는 모든 사람들이 평생동안 매일 하는 질문일겁니다. 직장인이라면 점심메뉴를, 주부라면 가족들의 식사를 고민하고 특별한 날이면 그 날에 무슨 음식을 먹을지, 어느 식당에 갈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일단 배가 고프면 뭐라도 먹어야죠.


전 요똥인데다가 입맛도 초딩이라 밀가루와 인스턴트를 주로 먹고 재료 준비와 손질에 벌써 지치는 요리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리의 과정을 재밌어하고 즐기는 분들이 있더군요! 여튼 저는 그래서인지 눈대중으로 대충 넣고도 간을 맞추고 레시피 검색도 안하고 툭툭 요리를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전에 친한 언니 집에 놀러갔을 때 언니가 요리를 뚝딱뚝딱 하는 것을 보고 "와! 대단하다!" 그랬더니 언니가 "결혼하면 다 할 수 있어" 라고 해서 결혼하면 다 요리를 잘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  왜 결혼 8년차인데 아직도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요리 하수인 것일까요?


레시피대로 미세조정까지 양념을 조절해도 늘 제가 만든 음식은 뭔가가 빠진 것같은 느낌이 나서 다시다나 치킨스톡이나 라면스프를 몰래 넣었습니다. 그럼 남편은 말하죠. "여기 또! 마법의 가루가 들어갔군."




일전에 미국 여행중에 깨달은 미국의 비만 원인이 있었습니다. 정크푸드와 밀가루 덩어리들은 굉장히 싼데 신선푸드들은 가격이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식사를 제대로 하려면 식당에 팁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 팁이라는 것이 음식 값의 10~15%이다보니 좋은 음식을 좋은 곳에서 먹으면 그만큼 팁이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식당에 팁이라는 것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30여년을 산 저에게 미국의 팁이라는 문화가 꽁돈 뜯기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젊었지만 가진 돈이 빠듯한 배낭 여행객이었기에 팁이 발생하지 않는 맥도널드나 대형 수퍼마켓의 빵코너를 기웃거려서 팔뚝만한 샌드위치를 사서 배를 채우며 여행을 다녔습니다. 지금 나이에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가는 영양 부족으로 바로 쓰러질걸요.


미국에서는 만인 사람은 저소득층으로 봅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에서는 큰 덩치에 속하는 제가 미국에서는 귀여운 체형이 되었으니 그런 취급은 받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돈 없이 미국에 살면 저렇게 싸고 팁 없는 정크푸드만 먹다가 몸무게가 2배로 느는 것은 시간 문제겠구나 싶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신선푸드가 가격이 비쌌고 이 나라에서 몸매유지는 커녕 건강하려면 돈이 많이 들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기농 음식, 제철 음식들은 대부분 비쌉니다. 그리고 조미료를 넣지 않은 천연조리비법으로 요리한 음식들도 비싸고요. 좋은 재료들은 신선하고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았기에 유통기한도 짧습니다. 빨리 구해서 빨리 소진해야 하는 것이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 부지런하고 돈이 많지 않으면 그 간단해 보이는 '먹는' 문제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나무뿌리 캐먹어야 할 수준으로 지내는 경우는 별로 없을겁니다. 그렇게 살도록 정부가 가만 놔두지는 않으니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라는 말도 과거 포도청이 있던 조선시대 에나 있었던 말 아니겠습니까. 삶이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이 먹는 문제는 단순히 허기를 달랜다는 차원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잘, 좋은 음식을 먹느냐로 바뀝니다.


20대 때 돈이 부족해서 편의점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삼각김밥은 보통 500원, 비싼건 7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꽤 오래전 일입니다. 프라하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하던 때도 돈이 부족해서 마트에서 싸구려 빵을 사먹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빵과 면 같은 기본식품은 굉장히 쌉니다. 밀가루덩어리 빵 같은 것들은 몇백원이면 사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퍽퍽하기 짝이 없지만... 유럽 역시 미국처럼 좋은 식재료들이 비싸거든요.


그리 살다 결혼하고 나서는 식재료 준비부터 만들고 정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습니다. 신혼때는 식비 아껴보겠다고 조미료를 사고 재료를 사서 집밥을 먹겠다는 과욕을 부렸지만 그 욕심이 피코크로 대체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생활의 안정을 찾고 나니 모 배우가 말했듯 '먹어봐야 니가 아는 그 맛'(물론 다이어트 얘기였지만)인 것을 알고부터는 같은 짜장면이라도 맛집, 좋은 재료 쓰는 집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몸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좋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먹고나면 꼭 뒤탈이 따르더라고요.


 먹고사는 문제는 학교에 돌아온 뒤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점심/저녁을 해결하다 보니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머리카락과 손발톱이 자라는 속도였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자란다고?'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변하는 속도가 보이더라고요. 이게 균형잡힌 식단 때문인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영양사 선생님이 매일 영양소 밸런스를 맞춰서 준비한 균형잡힌 식단을 주 5일 제시간에 섭취하니 그동안 결핍된 영양소가 많았는지 엄청난 속도로 몸이 영양균형을 찾았던 것입니다. 특히 저는 단백질부족군으로 병원에서 경고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식단에는 단백질이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꼬박꼬박 단백질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저만 늘 균형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해서 남편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매일 급식메뉴 나오듯이 영양소 밸런스를 맞춰서 집에서 남편의 식사를 챙길 수는 없는 상황이고, 때문에 남편이 알아서 식사를 잘 해줬으면 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도 유교걸에서 못벗어났나? 왜 나만 남편의 밥 때문에 일말의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제가 집에서 잠시 놀고 있을 때도 저렇게 골고루 영양소를 챙겨가면서 밥을 차려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일은 저녁 한 끼 같이하게 되다보니 그냥 단품 하나를 헤비하게 차려먹고 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리고 워낙 반주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보니 밥을 차렸는데 결국 술안주로 전락하기 일쑤였고요. 그리고 급식처럼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만든다? 집에서는 거의 불가능입니다.


가끔 남편에게 점심에 뭐 먹었냐 물어보면 단품 메뉴를 댑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오피스 타운마다 의무적으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급식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왠 사회주의 국가같은 소리냐 하시겠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 보다 제 시간에 영양밸런스에 맞게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영양밸런스 찾다간 아마 제 때 밥 못 먹을겁니다. 그런 식당도 별로 없죠. 그리고 저녁을 제시간에 챙겨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도 회사생활 할 땐 저녁을 거의 8시넘어 먹은일이 허다했거든요.


일전에는 밥을 잘 먹었다는 것은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넉넉히 잘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물론 행복했으면 됐습니다ㅎㅎ) 밥을 잘 먹었다는 것은 '필수영양소가 고루 배치된 식단을 먹었다는 것'이 맞는 것이죠.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제시간에 먹는다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급식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닫다니. 랍스타니 캐비어니 최고급 꽃등심이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겁니다.


어쩌면 이제는 먹은게 티가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새삼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네요 ^^; 


건강이 좀 나빠졌다 싶은 생각이 들면 영양제나 약을 찾기 전에 내가 먹는 음식의 영양소와 먹는 시간을 한 번 고려해보세요. 두어주 정도만 신경써도  금방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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