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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n 10. 2021

어느 핸드폰 노예의 삶

작년, 갤럭시 노트 신형을 사기 위해서(노트가 단종된다는 말도 있었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던 때가 있었습니다. 노트의 오랜 유저였던 저는 노트 8에서 넘어갈 시기를 엿보다가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실은 게을러서) 핸드폰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노트 20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죠.


기계값은 여전히 백만원이 훌쩍 넘고, 고민하다 결국 발품을 팔아 조금이나마 싸게 핸드폰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곳에 가면 비싼 요금제를 6개월 정도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계값을 깎아주더군요? (불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전 늘 4~5만원짜리 요금제를 쓰다가 갑자기

두 배 가까이 되는 9만원에 육박하는 요금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노트20은 5G요금만 가능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약정으로 비싼요금 6개월 의무사용. (차액을 계산해봐도 자급제 기계값 다 내는것 보다 이게 더 이득이었습니다) 항상 무료용량 6기가에 간당간당해서 집에서는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생활하던 제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와이파이는 티비랑 연결할 때 빼고는 켜지도 않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비싼 요금제 6개월만 쓸 건데 쓰는 동안에 뽕을 뽑아야지~ 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가장 편리한 점은 데이터 소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데이터를 6기가씩 막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엔 월말이 되면 데이터가 간당간당해서 남편에게 1기가씩 얻어 쓰기도 하면서 '데이터 그지' 소리를 들었던 제가 남편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선물한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데이터가 무제한 열린 세상이 왔더니 제 인생이 망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데이터가 아까워서 폰은 필요할 때 빼고는 잘 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포털 뉴스를 봅니다. 커피를 내리면서도 손에서 폰을 떼지 않습니다. 내가 자는 동안 세상은 크게 바뀔 일이 없는데 그래도 봅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버스에 타서 이리저리 영상을 둘러봅니다. 가끔 밀리에 들어가서 이북을 보기도 하고요. 음악도 듣습니다. 주식창도 열어봅니다. 업무중에도 짬짬이 괜히 볼 것도 없는데 핸드폰을 봅니다. 카카오톡은 신나게 오가고요. 쉬는 시간엔 뭐 살 게 없나 쿠팡이나 쇼핑몰들을 돌아봅니다. 퇴근길에 또 버스에서 영상을 뒤적, 포털을 뒤적. 이러다 네이버랑 다음이랑 베프먹게 생겼습니다. 집에 와서는 쿠팡플레이나 웨이브 같은 것을 티비랑 연동해놓고 방송이나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자기전엔 12시쯤 새로 업로드 된 웹툰을 보다 잡니다. 쌓아둔 책은 저멀리 밀쳐둔지 오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잘 때랑 일할 때랑 화장실 갈 때 빼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매 주 울리는 핸드폰 사용시간 리포트에는 지난주보다 사용시간이 늘었다는 경고만 늘고... 어떻게 매주 핸드폰 사용시간을 갱신할 수 있는거죠??


게다가 유튜브를 신나게 보다보니 광고가 귀찮아져서 프리미엄을 결제했, 데이터 걱정이 없으니 대중교통에서도 넷플릭스랑 웨이브로 영상을 보고 이제는 쿠팡플레이가 나타나서 또 영상을 봅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잠잘 때 빼고는 거의 핸드폰이랑 손이 합체였습니다. 그렇다고 영상을 보는게 딱히 즐겁지도 않았어요. 멍하니 시간은 잘만 가는데 영상은 볼 땐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고 점차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종일 뭔가 멍~ 한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게다가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눈은 침침해져가기 시작했고요. 그러다 얼굴에 폰을 떨어뜨려서 코뼈가 부러지진 않았으니 다행이랄까. 그렇게 원래도 좀 게으르던 저는 완벽하게 게을러졌습니다.


이렇게 저는 통신사의 마케팅과 수많은 어플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그들의 플랫폼 안에서 사람 바보 만들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진짜 목적이라면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저에 한해서는.




매번 '나는 핸드폰을 이제 적게 사용할테다'를 백만번 외쳐봐야 작심삼일형 인간도 못되어서 작심 삼십분형 인간인 내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턱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늘 제 손에는 휴대폰이 있었죠. 그전에 고물 노트 8을 쓸 땐 배터리가 광탈이라 그 이유 때문에라도 폰을 자주 쓰지 않았는데 이 신삥 핸드폰은 배터리도 아주 짱짱하니 무한정 자기를 즐겨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기기대금 할인의 노예 시간이었던 6개월이 흘러 요금제 변경 가능 날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다시 나름 저렴이 요금으로 갈아탈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5G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요금으로 변경을 했고 그 요금제는 데이터 10기가가 무료였습니다.

요금제를 바꾸고 나자 그 전에는 6.5G에도 데이터 때문에 그렇게까진 쫄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미칠듯이 데이터가 부족한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괜히 데이터 사라지는 속도가 눈에 팍팍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집 인터넷이 고장이 나서 브로드밴드에 연락을 했더니 수리기사랑 날짜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에 소모되는 데이터조차 아까웠습니다.


그렇게 브로드밴드도 고장나서 티비도 안되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쌩으로 데이터를 써서 폰으로 티비 영상을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요금제를 줄인 바로 이 시점에 말이죠. 영상은 더더욱 데이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IPTV와 셋탑박스의 고장과 함께 다시 빈곤한 데이터 인생에 빡세게 신고식을 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늘어난 요금만큼 늘어난 데이터 사용량에 금방 적응해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저는 빠르게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책을 볼라 치면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고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 도통 들어오지를 않더라고요. 이제는 상대방이랑 얘기하고 있는데도 내용에 집중을 못할 정도로 정말이지 현저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보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는 제 자신을 보고 한숨을 쉰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숨을 쉬고 다시 또 손에 폰을 쥐고 있죠. '그만 봐야 하는데' 라면서.


시력은 그나마도 좋지 않았는데 단시간에 더, 더, 더 떨어졌습니다. 전에는 굳이 운전할 때 안경을 쓰지 않아도 큰 무리는 없는데 이제는 표지판이 잘 보이지를 않더라고요. 무제한 데이터를 얻고(사실 돈 더 내고) 시력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시간낭비의 노예로 살다가 강제적으로 데이터를 줄이고 나서야 서서히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제한 데이터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더라고요. 여전히 핸드폰을 뒤적이는 제 습관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집나간 집중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디가서 휴대폰 디톡스라도 하고 와야 할 판입니다. 이렇게 계속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편하고 쓸데없는 습관은 단기간에 쉽게 들지만 좋은 습관을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얼마나 데이터무제한이 편했는지 데이터의 압박이 느껴질 때마다 그냥 다음달엔 데이터 더 있는걸로 요금제를 바꿀까? 싶은 생각도 불쑥불쑥 듭니다.  그런데 왜 요금제의 구성이 10기가에서 다음 단계가 250기가일까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만한 의지 없이는 스마트폰 세상에서 스마트폰을 멀리 하면서 사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이 손바닥 만한 세상 속이 뭐가 그리 매력적이라 빠져나오기가 힘이 드는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컴퓨터나 게임 사용시간을 제한하듯이 어른들도 핸드폰 사용시간을 강제로 제한해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더 이상은 디지털 바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지금도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이 글도 폰으로 읽으며 수정중이니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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