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당근쥬스 Jun 24. 2021

시민 모니터링을 그만두다

내가 그들에게 하는 것은 고나리질(?)인가

얼마 전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있는데 버스 회사에서 모집하는 시민 모니터링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요즘의 나에게는 출퇴근 버스가 이 버스 하나이기도 하고 일전에 이 버스가 버스어플/정류장 전광판이랑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GPS 장치 오류인 것 같았다) 안 온다던 버스가 갑자기 떡하니 나타나질 않나 온다던 버스가 갑자기 어플에서 사라지질 않나 하는 오류가 있었던 적이 있었기에 이 모니터링 요원이 되면 그런 일이 발생할 때 빨리 알려줄 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을 했다.

메일을 보내고도 한동안 연락이 없기에 모니터 요원은 안시켜주나 싶었다. 내가 탑승하는 시간대도 애매하고 탑승시간도 30분이 안되니까 안됐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메일이 왔다. 파일 확인하고 모니터 요원 할 생각 있으면 회신하라고. 오예~


첨부파일에는 한달 최소 20건에서 최대 40건을 메일로 보내라고 되어있었다. 페이는 건당 1500원. 이걸 작성해서 보낸 날은 버스 공짜로 탄 날이었다. 열심히 써서 보내면 한달에 6만원이라는 돈도 생기니 꽤 괜찮은데? 싶었다. 보통 한달 출근일은 22일 정도이고 왕복이니깐 40건이 가능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나의 BRT 버스 7**번 버스 시민 모니터링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에는 기사님 이름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시민 모니터링을 하려면 차량번호/운전기사명/ 승하차 시각과 정류장을 기입하도록 되어있다. 버스 번호야 어플에 나오니 상관이 없었는데 운전기사명에서 문제가 생겼다.


저상버스의 경우 저렇게 두번째 오른쪽 좌석 위에 운전자격증명이 있는데 눈이 꽤 좋아야 버스기사 이름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상이 아닌 경우에는 뒷문에 붙어있다.

너무 안보여서 하다못해 이런 편법도 썼다 (핸폰 카메라로 줌 당겨서 찍기. 이조차 탑승객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모니터요원은 첨부되어 있던 파일의 항목에 맞춰서 점수를 매기고 적발사항과 탑승 소감을 작성한다. 나는 길지 않은 탑승구간이라 운전기사님이 나에게 인사를 했는지, 정류장을 지나친 것은 아닌지, 급정차를 하는지 등등을 빠르게 체크해야 했다. 특이상황이 있으면 핸드폰 메모장에 기입하고 파일에 정리해서 첫번째 일주일 치 모니터링 파일을 제출하고 담당자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며칠간 시민 모니터링을 하면서 급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모니터링 항목이 대부분 버스기사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마이너스 점수를 기록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플러스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사다. 기사님이 나에게 먼저 인사하면 1점. 인사도 하고 버스 출발하니 앉으라니 하는 안내를 하면 2점이고 나머지는 다 마이너스 부과 사항들이다.


마스크 미착용, 교통 법규위반, 무정차통과, 급정차,  급출발, 휴대폰사용, 불친절, 안내방송 불일치 등등에 대해서 적으면 -2점부터 많으면 -6점까지 부여할 수 있게 되어있다. 모니터 요원은 적발사항과 탑승 소감을 쓴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운전기사님과 얘기를 하는지 담당자 교육내용 칸과 함께 운전자 사인 란도 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인사 하셨으니 1점. 급정차 하셨으니 -2점 이런식으로 입력을 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이 모니터링 파일에서 기사님은 인사와 안내멘트를 정류장마다 해야 고작 +2점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다 마이너스가 나는 항목들이니 최고점은 2점이고 0점이나 마이너스 점수가 대부분인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 모니터를 했는데 처음에는 쓸 것이 없어서 뭘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탑승하는 이 번호의 버스는 다른 타 노선에 비해서 굉장히 우수한 노선이다. 타 버스에 비해선 장거리 노선도 아니고, 저상버스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고 새 차량도 많으며 여자 기사님들도 많다.

나는 중앙차로 버세권에 사는지라  이전엔 이 버스 말고 다른 번호 버스도 자주 탔었는데 어떤 버스를 타면 실제로 곡예운전을 하는 분도 있고 기사님이 욕을 하는 버스도 있고 불친절 끝판왕도 있고 하도 급정거를 해서 내리면 멀미가 나는 등 별별 버스들이 다 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 모니터링하는 버스는 참으로 '참'하다.


두번째 현타는 무정차 통과에 대한 것이었다. 무정차 통과는 벌점이 6점이다. 그런데 실제 내가 탑승하는 구간 중 많은 구간이 은평뉴타운 구간인데 여기 안쪽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정~말 없다. 거의 6정거장 이상을 사람이 없이 그냥 버스 머리만 넣었다가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정류장을 논스탑으로 통과하면 안되겠지만 그렇게 길에도 사람이 없고, 정류장에도 사람이 없는데 꼬박꼬박 완전하게 정류장에 정차를 했다가 다시 가야하는 것일까.


물론 이걸 안지키면 과태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울 시민 100명에게 물으면 98명은 빈 정류장은 그냥 빨리 빠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버스는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타는것이니 목적지에 빨리 가고싶은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테고 가뜩이나 나에겐 그 구간이 출근길인데 한 기사님이 정말 말 그대로 꼬박 꼬박 정류장에 정차를 제대로 하시는데 한번은 약간 출근 시간이 빠듯했던 날엔 마음이 엄청 급해졌다. '그냥 빈 정류장은 잠깐 들르기만 하시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모니터링 문항에 따르면 이 분만 벌점을 안받을 수 있다. 다른분들은 버스 머리만 넣었다가 나갔으니 다 -6점. (사실 이 건은 단 한번도 모니터링 파일에 벌점 부과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모든 차들이 빈 정류장마다 꼬박꼬박 완전 정지할테고 그만큼 나의 탑승시간도 길어질테니. 전혀 원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무정차 통과? 경기도 버스들은 서울에 진입하면 서울 정류장에는 하차인원이 있지 않는 이상 승차인원 때문에는 거의 안선다. 서울버스 많은데 굳이 왜 서겠는가? 라는 생각이겠지. 실제로 파란버스를 추월해서 달려나가는 경기도 버스 엄청 많이 본다. 


그리고 버스의 긴긴 운행노선을 따라 운전하고 특히 출퇴근시간에 엄청난 사람을 실어 나르면서 막히는 도심구간을 장시간 운전하는 버스기사님에게 정류장마다 안내멘트를 하고 탑승 승객들에게 매번 인사를 하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기사님도 계시지만 사람들 다 이어폰 꽂고 있어서 안듣기도 하고. 


나야 그 기사님을 한 번 보는 것이지만 내가 탑승하는 그 버스는 한번 운행 때 70개에 가까운 정류장에 선다. 장거리 노선은 아마 두 배일 것이다. 손님이 한명만 타는 것도 아니고 몇 명씩 타면 인사를 여러번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기사님이 나에게 인사 안하셔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사님이 인사를 하시든 안하시든 고생하시니까 그냥 내가 인사하고 탄다 (물론 나도 인사 안하고 탈 때도 있다)


나도 운전자라 그런지 도심운전은 자주 빡이친다. 신호에 걸리는 것도 싫고 막히는 것도 짜증난다.  도로에서 빌런이라도 만나면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덩치가 커다란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은 오죽하시겠는가.


물론 나는 운전이 업이 아니라 내 차 안에서 욕을 하거나 클락션을 울리거나 하지만 버스기사님은 이게 업이니 화가 난다고 손님들 앞에서 욕을 할 수도 없을텐데 그 사람들도 화나는 상황이 어찌 없겠는가.


그냥 안전하게 손님을 목적지에 잘 데려다주시면 그분들의 임무는 다 한 것이라고 본다. 한편으론 생각했다. 이 버스 없었으면 출근길이 불편한건 나인데 내가 시민 모니터링 요원이랍시고 그분들에게 고나리짓을 할 것인가.




모니터 요원을 해보고 나니 이 제도는 처음엔 버스회사에서 좋은 취지로 야심차게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BRT버스의 서비스 개선에는 이런 모니터링 제도가 크게 기여했을테다. 하지만 그 의도와 다르게 이제는 그리 좋은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 기사님 입장에서는 타고 있는 손님 중 하나가 요원일 수도 있으니 모든 손님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하면서 운행을 해야 하고(이걸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성공이다) 아차 실수하여 급정거를 했는데 그날따라 열혈 모니터요원이 탑승중이라면 -2점이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운전하다 신호나 돌발상황으로 급정거 꽤 해봤다.


만약 기사님 중에 정말 특이한 분이 있어서 이유없이 손님에게 욕을 하거나 난폭운전을 하거나 하면 요즘 톡방이나 SNS 같은 것들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가. 차라리 이런 즉각적인 채널로 즉시 신고를 받는 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신고 엽서가 차내에 비치되어있긴 하지만 너무 올드한 신고법...  그 엽서 꺼내는 사람은 한 번도 못본 것 같다.


이번주 까지 모니터 내용을 보내고 (사실 이번주 것들은 거의 기사님들 칭찬만 썼다. 버스회사가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봤을때 이 노선은 딱히 적발할 사항들이 별로 없었다) 모니터링 비 안주셔도 되니까 이런 모니터링 진행 보다는 기사님들 업무환경 개선에 더 신경써달라고 당부할 예정이다.


그리고 정말 적발과 신고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테니 그건 신속한 신고가 가능하도록 카톡이나 기타 채널을 버스 회사에서 만들어서 운영해달라고. 요즘 QR코드도 엄청 잘 인식되고 카톡은 손에 쥐고 사는데... 이렇게 블라인드 요원들이 활동한다는 것이 오히려 버스기사님들의 사기 저하를 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의견을 담당자가 받아들여서 개선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인식한 이런 상황에서는 이 노선에 대한 모니터링 요원 활동은 그만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적할 것이 별로 없는 노선은 오히려 칭찬을 해야 마땅할 듯.


덧붙이자면... 지금 어느 파일에는 같은 차고지 기사님이 손님으로 타셔서 운전 기사님이랑 담소를 나누시면서 가신 내용을 썼는데 이거도 써야되는 사항인지 앉아서  고민했다. 다른건 지적할게 없어서 그거라도 간단히 '그러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라고 탑승소감에 썼지만. 솔직히 버즈 끼고 있으니 두 분이 뭔 얘기를 하시는지 들리지도 않아서 상관없는데 괜히 회사에서 버스에 동료가 탑승해도 사담 나누지 말라고 할까봐 좀 걱정이다.


래서 더더욱 모니터 요원은 그만해야겠다. 내가 뭐라고 기사님들 담소 타임도 지른단 말인가. 나도 일터에서 동료랑 사담 나누는데 누가 내가 일하다 사담 나눴다고 이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이모부도 예전 그 지역이 기자촌 시절이었을 때 154, 155번 버스를 운행하셨기에 사실 버스 기사님들께는 불편보다는 애정이 훨씬 더 많다. 어린 시절 나를 승객석에 태우시고는 서울시내 구경을 시켜주신 추억도 있고 차고지에서 버스구경도 종종 했었기에. 그래서인지 정말 크리티컬하게 불편한 사항이나 개선점에 대한 제보를 받는 것이 아닌 마이너스 점수를 쌓는 이런 시민 모니터링 운영의 방식이 좀 불편했다. 정말 도움이  제보를 받고 그것들을 선별해서 기프티콘 같은 것증정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는건 어떨까.




서울에 있는 모든 버스들이 래핑을 파랑이 타요, 초록이 타요 버스 스타일로 하고 다니길래 버스회사가 몇 개 안되는 줄 알았더니 무려 65개란다.....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7,400대나 된다고... 이건 이번 글 쓰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참고로 내가 모니터링 한 회사는 여태 은평구가 차고지인 줄 알았는데 무려 송파구가 차고지인 버스 회사였다. ㄷㄷ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면 서울 버스회사 정보를 알 수 있다. 

https://url.kr/x214rp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핸드폰 노예의 삶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