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Jan 24. 2024

쌤, 내년에도 계실거죠?

2학기 말이 다가오면 슬슬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된다. 내가 지금까지 근무했던 학교들이 다 고등학교였고, 아이들이 이 선생님이 기간제인지, 정교사인지 다들 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물어보는 것에는 당황하기 일쑤다. 물론 아이들은 별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하도 많은 선생님들이 3월에 바뀌니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쌤이 계속 계시는건가 싶어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막상 질문을 받는 기간제교사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확답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순간 머뭇거릴 수 밖에 없다.


'잘 모르겠는데...?' 또는 '쌤 내년에 다른 학교 가.' 라고 하면 정말 까마귀가 지나가듯이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아.... 예.....' 라며 도망가는 아이도 있고 자기가 뭘 잘못한 것이냐며 내년엔 더 열심히 하겠다는 아이, 왜 가냐는 아이, 교장실에 가서 선생님 계속 계시도록 자기가 얘기를 해보겠다는 아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면 쌤이 내년에 있을 수 있냐는 아이 등등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마음들은 너무 고마운데 제발 참으라고 얘들아.....

교장실을 쳐들어가거나 교육청에 민원이 왠말이라니! 그런다고 아무 소용도 없는데????


하도 말을 안듣던 남자 녀석들에게는 '1년간 니들이 내 앞에서 한 행동을 잘 생각해봐 이것들아~' 라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1년간 정들어서 눈에 밟히는 애들을 두고 학교를 옮겨야 하는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당연스럽게 "그럼~ 내년에 너 더 잘하나 두고볼거다??"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겠지. 

아이들은 단순해서 해가 바뀌고 학년이 바뀌어서 정신없는 신학기가 시작되면 지난 사람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고, 서운하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사립학교의 경우 선생님이 바뀌지 않고 계속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이런 질문이 곤란한 부분이다. 공립은 로테이션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교사가 바뀌는 것에 무감하고 옮길 때가 되어서 떠나시나보다 하는 분위기인데 우리나라는 사립학교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당연히 그 선생님이 이 학교에 계속 계셔서 몇 해가 지나 찾아와도 나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스승의 날 근처에는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선생님들을 찾아오는 모습도 많이 보았고. 그 사람이 내가 아닌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착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내가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이야기들로는 모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기간제 선생님 면전에 대놓고 기간제라고 언급한다고도 하고, 얼마 전 본 용감한 시민이라는 웨이브 영화에 신혜선 배우가 기간제교사로 나오는데(근데 이 영화는 23년에 나온건데 기간제교사에 대해서 너무 조사 없이 만든 영화라 한숨이 났다) 학생들이 그녀를 스타라고 부르길래 예뻐서 그러는줄 알았더니 '스페어타이어'라고....ㄷㄷ 신혜선 배우을 좋아해서 본 것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 모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기간제교사도 엄연히 정규 교육을 받은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교육인력인데 뭐 얼마나 극적인 묘사를 하려고 저런 소리를 넣어서 쓴건지 싶다가도 '과연 없는 얘기를 꾸몄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여하튼 대단히 기분이 나빴다.


여태 만난 학생들 중에 교사가 기간제인지, 정교사인지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는 애들을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 고딩들은 기간제고 정교사고 간에 자기 생기부 잘써주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굳이 저리 따질 필요가 없고, 1년을 자신과 지내는 선생님이 실력있고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사자인 학생들이 그닥 신경쓰지 않는 부분인데 왜 언론과 여론과 소문에는 이렇게 기간제교사를 무시하지 못해 안달인지. 근데 강남 모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기간제교사한테 기간제라고 칭한다고 하는걸 보니 아예 없는 얘긴 아닌가...?


현재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서울에 있는 학교들조차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 학교에서는 기간제교사 채용을 늘릴 수 밖에 없다. 50:50의 비율로 정교사와 기간제교사의 수가 비등한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줄어들면 교사를 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이상 정규 교원을 늘리지 않고 기간제교사를 채용하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휴직 대체의 경우에만 기간제교사를 채용했기에 한 학교에 기간제교사가 한자릿수인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결원 또는 한시적 교과 운영으로 계속 그 비율이 늘어나는 상황이고 인원이 늘다보니 기간제교사의 처우도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차별로는 성과급 비선호 업무 몰아주기 같은 것들 정도다. 그 전에는 교내에서 대놓고 차별 + 호봉 상한선 제한이 있었다. 


요즘은 기간제교사를 제 때 못구해서 학사행정이 학기 초에 어그러져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서 예전처럼 저리 했다가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학교 현장의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대부분 학교들에서는 관리자님들이 선생님 계시는 기간동안 우리 학생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시는 경우도 있고, 기간제선생님을 모신다고 표현해주는 학교들도 많다. 나는 교직에 늦게 입문했기에 기간제교사 차별대우 시절에는 학교에 있지 않아서 설움이 크진 않은 편이라 다행인건가?


오늘도 한 아이가 '쌤 내년에 저 담임 해주세요~' 라고 하는데 대답을 못해줘서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 물론 사서교사한테 담임 시키는 학교도 별로 없긴 하지만 3월 새학기에 선생님이(나는 아이들이) 바뀌어서 또 낯가림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은건 학교를 떠나는 기간제샘들의 공통된 마음일것이다.  


그래도 올 한해 사랑스러운 너희들과 함께여서 쌤은 넘 행복했다~~ 내년에도 새로운 쌤 말 잘듣고 열공하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