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쌤도 쌤이에요?
정확히는 '사서 교사' 입니다
사서 교사로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가장 난감한 순간 중 하나는 바로 '무슨 과목 가르치시는데요?' 라는 질문이다. '저는 사서 교사입니다'라고 답하면 '에? 무슨 교사라고요?' 라는 눈빛을 마주하는 난감한 경우가 대단히 자주 있다.
학교마다 학교도서관 의무 설치가 법으로 시행되고 사서교사가 확충되기 시작한 것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기에 지금 내 또래+ 그 이전의 사람들은 학교에 도서관이 없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말 즈음 학교 한 구석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생긴 것을 보았으니까. 당시만 해도 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거나, 대학도서관이거나 둘 중 하나여서 학교도서관이라는 존재를 몰랐다. 물론 이를 담당하는 교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사서교사는 일반대학 중 교직이 설치된 문헌정보학과에서 교직을 이수 하거나 4년제 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여 정사서 자격 취득 후 교육대학원을 졸업하면 교원 자격이 발급된다.
이번 겨울방학에 패키지로 라오스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랑 같이 다니던 아버지와 아들과 어느정도 친해져 호구조사를 하기까지에 이르렀을 때, 대학생인 아들은 사서교사의 존재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거주지가 경기도라 그런지 이 학생은 초, 중, 고 다 사서선생님이 계셨단다. 경기도 시책 상 아마 이 친구가 중, 고등학교에서 만난 분은 사서교사였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버지는 '그런 교사도 있어?' 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학교의 교사는 두가지로 나뉜다. 교과 교사와 비교과 교사.
교과 교사는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비교과 교사는 보건, 사서, 상담, 영양교사를 말한다. 학교에 비교과 교사가 자리하게 된 것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보건교사를 제외한 사서, 상담, 영양교사는 임용 TO조차 없었던 시절이 길었으니. 특히나 사서교사의 경우 비교과군에서도 대단히 적은 수다. 꽤 오랜기간 공무직 사서가 그 자리를 메꿔왔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더 사람들이 사서교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공교육의 정상화와 정보불평등 해소를 위해 학교도서관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여 2000년 11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는 전국에서 모인 문헌정보학과 학생들, 교수들, 교육단체 관계자들, 학교도서관 관계자들, 정치인들이 '학교도서관 국민연대'의 출범식을 거행했다.
01학번인 나는 학교도서관 활성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의 문헌정보학과 학생이었다. 입학 당시 교수님들은 학도관 운동에 열심이셨고, 강의실에는 해당 포스터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도서관은 학교로부터 시작되어야 된다는 뜻있는 운동이었다. 교수님들은 항상 너희들이 갈 곳은 학교도서관이라며 교직이수를 적극 추천하셨고, 앞으로 너희가 졸업하면 학교 현장에서 도서관 운동을 해야 한다고 독려하셨다.
그렇게 배출된 사서+사서교사들이 학교도서관에 공무직(또는 교사)으로 자리잡고, 이후 공무직이 무기 계약직으로 변경되었으며 그 와중에 전국 한 자릿수의 사서교사 임용 티오(그나마도 박근혜/이명박 정권에서는 0명)에 문정과생들이 뿔뿔이 다른 직종으로 빠져나간지 10여년 후, 문재인 정권에서 대규모 사서교사 배치 사업이 시작된다. 이 때 정규 교원 티오도 늘었고 정원 외 기간제 사서교사 의무배치 사업을 경기 지역에서 시행하게 된다. (현재는 인천까지 확장됨. 왜 서울은 안하나 모르겠다)
사서교사는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기본, 학생들에게 독서 및 정보 관련 수업을 할 수 있다. 사서교사는 교사의 고유 권한인 수업권을 갖고 있으니까. 아쉬운 점은 교육과정 내에 사서교사가 교과서를 가지고 정규 수업시수를 배치받아 수업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창체시간을 맡아 진로독서 수업을 하거나 자체 수업을 개발하여 진행하다 보니 오로지 사서교사의 역량에 수업의 질이 좌지우지된다. 초등의 경우 중, 고등에 비해 굉장히 많은 수업을 사서교사가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경우 각 교과들의 진도 빼기도 벅차고, 수업시수 자체가 성과 평가에 반영되다 보니 비교과에 수업시수를 배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편이라 아쉬움이 크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독서 교육과 아이들의 발달 기준에 맞춰 학교도서관에서의 사서교사 중요도를 따져보면 초등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중학교, 그 다음이 고등학교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사서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은 교대 출신들이 다수이다보니 사서교사는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나 요즘 인디스쿨에서는 비교과 교사에게 그들은 교사가 아니니 직원으로 바꾸라는 운동을 하고 있는 초등 교원들이 있다고 하니 분위기가 어떨지 감히 짐작이 된다.
그리고 서울시 중학교에는 사서교사가 없다. 공무직 노조에서 서울시에 있는 중학교에는 공무직을 배치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해 교육청이 그걸 받아들였다고 한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수업이 가장 레퍼런스도 많고, 효과는 물론 활동할 수 있는 것들도 가장 많은데 인구수가 제일 많은 수도 서울의 중학교에 사서교사의 진입을 막아버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실제로 18년도부터 경기도에서 사서교사 의무배치 사업을 실시하여 그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데,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몸에 배어 사회에 나와 대학, 공공 도서관 이용으로 이어져 평생 학습의 기틀이 잡히는 유의미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나 자료 검색 및 활용과 재구성 부문에서 학생들의 실력이 일취월장 하고 있다.
영상물에 빠져 헤엄치느라 책을 읽지 않고 문해력 저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학교에서 꾸준히 독서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도서관으로 발걸음하게 하는 것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생활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책을 읽으라고 아무리 잔소리해봐야 학생들은 안읽는다. 때문에 많은 학교의 사서교사들은 학생들이 책을 어떻게든 접해보도록, 그리고 그 경험이 즐거운 것이 되도록, 나아가 확장 독서로의 발걸음까지 내딛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보의 조작이 판을 치고 너무 많은 정보가 흘러넘쳐 선택적 이용조차 버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바르게 정보를 이용하고,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사서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따뜻하게 학생들을 맞아주는 역할은 덤이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