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사서교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항상 묻는 말이 몇가지 있다.
Q.책을 많이 보는가.
- 많이 볼 때도 있고 아예 못 볼 때도 있다.
Q.여기 도서관에 있는 책 다 읽어봤는가.
- 학교도서관 평균 장서수가 약 2~3만권인데 어떻게 다 읽지....? (공공은 몇십만권...)
Q.사서교사면 맨날 책 읽을 수 있지 않나.
-거의 읽지는 못하고 책 표지랑 책 등을 더 많이 본다.
이렇게 늘 대답해도 사람들 머릿속엔 이미 고정관념이 박혀있다.
사서교사는 도서관에 우아하게 앉아서 차 마시며 책 보다 가끔 사람들 오면 바코드를 찍어주는 사람이라고.
오죽하면 코시국에 예산이 남아돌아 학교도서관에 자가대출반납기 보급사업이 진행되었을 때 학생들이 '기계로 대출반납 하면 쌤은 이제 뭐해요? 짤려요?' 라고 걱정을 다 해줬을까.
교사들 중에도 사서교사 하면 편해서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번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께서 도서관만 오시면 본인이 사서교사를 했어야하는데 교과교사를 해서 평생 고생만 했다고 하시기도... (사서교사도 고생하는데...)
어느 직업인들 안 힘든 직업이 있겠냐마는 굳이 편하다는 인식에 대한 사족을 좀 달아보자면,
1. 도서관 활용&협력수업 등이 몰리는 시기+진로독서 수업시수가 배정되어있는 경우에는 교과교사보다 수업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방광염에 걸린적도... 특히 초등은 정말 시수가 많다. 교과서도 없이 수업준비를 해야되는 막막함이란...
2. 직업병으로 비염, 손목, 허리, 목 등의 관절통은 상시로 달고 산다. 책이 쌓여있는 공간이다 보니 먼지 많은 환경인건 어쩔 수 없는데다가 책이 알아서 서가로 들어가는게 아니기 때문에 책 좀 들었다놨다하면 여기저기 망가지는건 시간문제. 생각보다 책 무게가 상당하다. 장서점검 한 번 하면 진짜 몸살나서 앓아눕기 일쑤.
3. 책을 고르고 선별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학교도서관에 아무 책이나 비치할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물리적 공간의 한계상 새 책이 들어오면 오래된 책은 나가야하므로 폐기 작업도 해야하고, 파손 도서 수선도 해야하고...
4. 사람들에게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지 도서 전시를 상시로 구상하여 전시한다.
5. 내가 교사인지 이벤트회사 직원인지 싶을 때가 많을 정도로 각종 책 관련 행사를 만들어서 진행하고, 학사일정에 맞춰서 필요한 때에 독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사업을 일정 사이사이에 잘 끼워서 진행해야 한다. 또 주요 행사들은 생활기록부 기록으로 꼼꼼히 남겨주어야 한다.
6. 연체자들을 추노하러 다닌다. 특히 장기연체자들은 교실까지 쫓아가거나 도서부에게 연행해오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7. 각종 상담이 진짜 많다. 독서상담은 물론 연애, 성적, 가정사 상담까지... 내가 있는 곳이 도서관인지 상담실인지 헷갈릴 때가 정말 많다. 왜 나에게 저런 개인적인 일까지 상담하는지 싶을 때가 참 많지만 열심히 들어준다. 독서교육 상담보다 애들 개인사 상담이 더 많을땐 현타가 가끔 오기도...
사람들이 그렇게 쉽고 편한 직업이라고 하는데, 왜 나는 대체 업무시간에 책을 볼 시간이 없는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아하게 책 보기'를 시행하기 위해 전날 책 한 권을 찜해두고 퇴근했다. 사실 토론 활동 참고도서여서 꼭 읽어야만 하는 도서다. 사서교사로 일하다보면 내 취향의 책을 읽기 보다는 업무 때문에 읽는 경우가 정말 많다. 다행히 내일은 도서관 활용수업이 2시간밖에 없는 날이니 책을 볼 수 있겠지?
출근 하자마자 신문 읽기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몰려온다. 진로 탐색 활동인데 학생들은 종이 신문을 잘 못 읽고 자기가 원하는 기사도 잘 못찾는다. 넌 뭐가 되고 싶니, 뭐에 관심이 있니, 무한 질문을 하면서 알려주고 찾아주느라 오전 내내 시달리다보니 1교시가 시작된다.
한숨을 몰아쉬고 커피 한 잔을 타놓고 우아하게 책을 보기는 개뿔... 이메일, 공문, 쌓여있는 쿨메신저 쪽지 등등을 확인하고 처리하다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쉬는시간에 찾아오는 학생들 업무를 처리해주다보면 통합과학 교과 수행평가에 쓸 자료탐구 활동으로 1학년 한 학급이 도서관을 찾는다. 학생들이 수행과제 작성 방향을 못찾으니 서가 사이에서 교과교사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수행평가 방향을 잡아준다.
쉬는시간에는 또 애들이 찾아오고...
북카트에 더미로 쌓여있는 학생들이 뒤집어놓은 책을 정리한다. 한 학급만 왔다 가도 북카트에 책이 넘친다. 아이들이 막 꽂아두어 잘못 꽂혀있는 책들을 제자리로 옮기고, 발견된 파손 도서들을 골라낸다. 시간날 때 수선해야지.
4교시엔 급식실에 뛰어가서 밥을 먹고 온다. 그나마도 4교시에 수업이 있으면 급식실을 못가고 3교시에 간단하게 때워야한다.
점심시간. 말 그대로 전쟁터다. 쉬는시간 10분은 짧아서 점심시간에 많이들 도서관을 찾는다. 3개 학년이 몰려드니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간다.
5교시. 수학 수행평가 준비로 2학년 한 학급이 도서관에 왔다. 수학 교과서 목차를 들여다보면서 관련 도서를 찾아주고 수행평가의 방향을 상담하느라 4백번 서가에서 애들이랑 뒤엉켜있어야했다.
오늘 7교시에는 전학년 독서 활동이 예정되어있다. 반별 윤독 도서가 나가야 해서 6교시 내내 각 학급에서 선정한 도서들을 꺼내서 수량을 확인하고 활동지들을 체크한다. 책을 이백여권 들었다놨다 했더니 손목과 허리가 뻐근하다.
7교시. 윤독도서와 활동지 배포가 잘되었는지 학급별로 돌면서 체크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며 겸사겸사 연체자들한테 책 반납을 독촉한다.
수업 종료 후 찾아오는 학생들과 치대다보니 퇴근시간이 훌쩍 넘어섰다.
어제 읽으려고 꺼내두었던 책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집에가서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대체 사서교사가 우아하게 앉아서 책을 본다고 하였는가... 엉덩이도 좀 전에 의자에 붙인 것 같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애들이 늘 많이 찾아와줘서 즐겁다.
아무도 안온다 생각하면 이 넓은 공간에서 굉장히 막막할듯. 아이들은 남는 시간을 총동원하여 도서관에 오니 그 아이들의 시간을 아껴주려면 성심성의껏 대할 수 밖에 없다.
우아하진 않지만 이 직업의 장점이 몇가지 있다.
새 책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독립 공간에서 근무한다는 것.
시험문제 제출이 없고 평가를 담당하지 않아 부담없이 아이들이랑 만날 수 있다는 것.
물론 마지막 장점 때문에 니가 무슨 교사냐 소리도 듣긴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교육해서 애들이 학교도서관에 달려오게 하는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이 원하는 지식을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안내해주는 지도자이자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어야 함은 물론이고.
더불어 시시콜콜한 여러가지 상담도 더해주면 아이들의 숨쉴 틈까지 되어줄 수 있으니 더 좋지 않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