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특히 랜드사 업무를 하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연락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불확실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고, 그걸 줄여보고자 사람들은 오랫동안 운영된 검증된 패키지 상품을 예약해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이 참 유기적인 상품이다 보니 아무리 준비를 다 한다고 해도 정말 별별일이 다 생긴다. 사전준비도 잘 하고 확정서 등등을 아무리 샅샅이 본다 한들 사고는 늘 터지는 법.
나는 현지사무소 + 한국 랜드사 + 여행사를 거쳐온 터라 온갖 지역들의 사건 사고를 다 겪다보니 이 일을 오래하다간 제명에 못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시차에 따라 지역 담당자들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껴보았고. 대양주나 일본, 중국 상품을 취급하는 직원들은 수면의 질이 그나마 낫고, 미주, 유럽, 중남미 지역은 시차가 애매하여 한밤중에 비상 연락이 오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패키지 여행 팀을 만드는 데까지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다. 사람들이 원하는 시기의 상품들은 빨리 마감되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소 출발 인원을 채우는데까지 진땀을 뺀다. 패키지의 경우 최소 출발 인원이 모객이 안되면 출발이 안되어 앞, 뒷 날짜로 이동해야 하는데 일정이 여의치 않은 고객들이 많다. 어떤 경우는 이쪽 날짜에 5명, 저쪽 날짜에 5명 이렇게 있는데 절대 안 합쳐져서 결국 파토나는 팀들도 많고... 한 팀, 한 팀 만들어서 내보내는 것이 정말 전쟁이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서 팀을 구성해서 현지에 보내기까지도 가시밭길이다. 중간에 취소하는 고객(취소 패널티로 진짜 많이 싸움이 난다. 특히 항공은 발권하면 취소수수료가 크고, 현지 항공들은 환불이 안되는 경우들도 많다), 이것저것 변경을 요구하는 고객, 간신히 최소 출발 인원 채워서 현지에 확정 띄웠는데 갑자기 일부 취소자가 나서 최소 인원이 모자라는 팀(이 경우는 여행사가 일부 손해보고 그냥 띄우는 경우가 많다) 등등...
어찌저찌 내 팀이 비행기를 타면 한 숨 돌릴......
수가 없지!
비행기랑 공항에서 일이 먼저 터진다.
1. 직항인데 출발이 늦어지는 경우 - 이건 그냥 노멀한 경우. 길게는 막 서너시간도 있더라...
2. 경유편인 경우 - 연결편이 지연되거나 변경되어 경유지 대기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 이럼 일정 시작일이 지나서 현지에 도착하게 된다. 관광지 몇개는 스킵해야 함. 중남미의 경우 연결편이 너무 많아서 항공 사고 터지면 그냥 그 팀은 일정 도는 내내 비상이다. 연착되고 싶으면 돌아올 때 연착돼라 좀..... ㅠ
3. 비행기 사고나는 경우 - 딱 한 팀 있었다. 착륙 때 동체 착륙함. -_-......... 큰 부상자는 없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4. 수하물이 안오는 경우 - 특정 항공사 타면 진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ㅋ 사람은 왔는데 짐이 안와... 특히 연결편이 있는 경우 자주 수하물 지연이 발생한다. 공항에 수하물 지연 접수를 해놓고 이동을 하면 담날이나 다다음 날쯤 숙소로 가방이 와있다. 없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현지에 도착하면 이제 현지 사무소에서 내 고객들을 받아서 관광 일정을 진행한다.
팀이 돌고 있는 동안은 차량, 식당, 관광지 그 어느곳에서도 무엇이라도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한다.
물론 현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국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현지에서 처리한 후 한국으로 연락을 주기에 일이 생긴 후라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 때문에 노련하고 경험 많은 현지 회사랑 일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차량 고장 또는 사고 - 아무리 점검 잘 한 차량이 나온다 한들 사고는 속수무책이다. 다친 사람 없으면 다행... 차량 고장인 경우 현지에서 대체 차량이 나오는데 이동거리 긴 구간에선 진짜 진땀이 난다. 한 번은 달리는 버스에 돌이 튀어서 유리창이 깨졌다는 연락이 왔다. 대체차량이 오는 동안(2시간이었나..) 손님들은 도로에 선 버스에서 멍하니 기다려야 한 경우도 있었고, 몽골에선 사막을 달리던 지프차가 뒤집어져서 손님들이 다 실려간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젤 많이 발생하는 파업 - 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 아니랄까봐 프랑스는 진짜 파업을 많이 한다. 유로스타 파업하면.. 휴....
숙소 강제 변경 - 지역들 마다 성수기가 있다. 때문에 호텔들이 부킹을 잘못 하거나 한 경우 급이 떨어지는 다른 호텔로 강제 변경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냥 현지에서 가이드가 싹싹 빌고 식사 업그레이드나 주류 추가 해주는 방법으로 고객들 달래는 방법밖엔...
한 번은 칸쿤에 손님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원한 숙소는 성인 전용 리조트였다. (유명 휴양지는 adult only 숙소들이 많다.) 나중에 보니 이 팀에 초등학생 아이가 있었던 것. 일이 터지려면 진짜 아무도 모르게 터진다더니 나도 체크를 못했고, 현지에서도 체크를 못했고 팀이 칸쿤에 도착해서 입실하려고 하니 입실 거부를 당한 것. 현지에서 수습해서 다른 리조트로 옮기고 리조트 비용도 환불을 받았는데 원래는 리조트 비용을 다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물건 분실 또는 도난 - 관광지에 정말 많은 소매치기가 있다. 사실 소매치기는 귀여운 편이고 버스를 털어가는 전문 도둑들도 있다. (이쯤되면 기사랑 한패 아닌가 싶을때도 있다) 몇 팀 중 하나는 꼭 도난사고가 발생한다. 현지 경찰도 협조가 잘 안되고... 보험 처리하는게 젤 나은데 이것도 휴...
젤 무서운건 상해 사고다.
여행자 보험을 들고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이 잘 되어있는 나라는 뉴질랜드를 제외하고 본 적이 없다. 현지에서 일단 병원을 갔다 하면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 우리나라만큼 빠르고 깔끔하게 진료도 안된다.
샤워부스가 박살나서 고객이 실려간 경우도 있었고, 돌계단 같은 것이 많은 지역들은 낙상사고가 정말 많다. 한 번은 손님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졌는데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 + 거동이 불가능 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현지 수술 및 병원비도 비용이 크지만 언제까지 외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한국으로 와야 하는데 누워있는 사람을 실어와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코노미 좌석 여러개를 구매해서 오는 것으로 해서 국내로 이송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 건 처리하는데 진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 팀은 아니었지만 우유니 소금사막에 간 사람들 중에 고산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 사고도...
이쯤되면 정말 별 일 없이 잘 다녀온 팀들은 고마울 지경이다.
그래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도 송출팀이 많아 영업 이익이 잘 나오고 손님들의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들으면 굉장히 보람있기도 하다. 힘은 왕창 들었지만 뭔가 뿌듯하달까?한 팀, 한 팀 마감치는 재미로 일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