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

by 당근쥬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교사들마다 드럼스틱부터 대걸레 자루까지 다양하게 무기(?)를 소지하고 다녀서 그들에게 두들겨맞지 않으려면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체벌 전면금지가 시행중이라 어떤 때에는 학생들을 지도하려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때리면 안되지만 가끔은 '저게 쳐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싶은 굉장한 아이들이 보인다. 하지만 우린 흐린눈을 할 뿐. 학생한테 언성높여 혼내다가 아동 학대죄로 고발당하는 교사가 한둘이 아니니 내 한몸 오늘도 무사히 건사하려면 모른척 하게 될 때도 많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3년차 재계약이 되어 연속해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도서관은 공공도서관과 달리 학생들이 교내에서 숨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간 강하게 정숙지도를 하거나 하진 않고 조금은 편안하게 운영해왔다. 그래서인지 여기가 도서관인지 위클래스(상담실)인지 모를정도로 개인 상담을 해오는 애들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독서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지 내가 언제 너희들 연애 상담, 가정 상담을 해준다고 했냐!'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오죽 말할데가 없어서 사서교사한테 와서 말하나 싶어 한두명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도서관이 학교 상담소가 되어버렸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긴 겨울방학 끝에 친구들을 다시 학교에 만나 반가움에 소란스럽다. 문제는 최근 소란의 강도가 너무 심해졌다는 것. 도서관을 조용히 이용하고 싶은 학생들의 소음관련 민원 + 신입생들의 '도서관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까지 발생하다 보니 생활지도를 강력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크게 떠들고 있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랬더니 왜 자기한테만 뭐라 하냐면서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 학생은 내가 3년째 이 학교에서 나름 가깝게 지내는 학생이었다. 순간 뒷목이 뻐근해졌지만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 학생을 잡도리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 시간에 도서관으로 오라고 한 뒤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었다. 내가 그간 얼마나 만만한 교사로 보였으면 교사의 지적에 학생이 저런 반응을 보이나 싶어 현타가 심하게 왔다.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하는 스타일은 다양하다. 아예 니가 뭐가 되든 상관없고 내 할일만 한다는 식으로 방관하는 교사도 있고,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교사도 있고, 무섭게 아이들을 혼내는 교사도 있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교수학습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생활지도 비중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가기 전 기본적인 태도, 사회성 같은 것들을 학교에서 교육하지 않으면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체벌금지가 시행되고 교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바람에 위축된 교사들이 생활지도를 하지 않고 그냥 사회로 내보낸 후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고스란히 사회가 떠맡아야 한다.


아무래도 사서교사는 학생들을 교실이 아닌 도서관에서 만나고, 학생을 과목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아닌데다가 수업이 많지 않다보니 무서운 교사보다는 아이들과 편하게 지내는 교사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서글프게도 약삭빠른 학생들은 사람을 봐가면서 자신의 스탠스를 정한다.


나에게 괴성을 지른 학생은 아마도 나를 만만한 교사 카테고리에 넣었을 것이다. 평소에 예뻐했던 학생이기도 해서 학생의 태도에 실망감이 더 컸다. 이후 학생을 불러서 아까의 태도에 대해 호되게 혼을 냈고, 결국 학생은 울먹이다 집에 갔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좋을리가 없다.


다른 학생들이 찾아와서는 '사서샘은 원래 1년에 한 번 폭발해서 한 명만 조지는데 올해는 벌써 끝났네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헛웃음이 났다. 재작년엔 여름에 누구, 작년엔 5월에 누구, 근데 올해는 3월초인데 벌써 끝났냐고. 이러다 내년엔 개학식날 아니면 2월에 혼내시겠다고.


내가 일년에 한 번 화내는 선생님이라는 것에 이걸 고마워해야 하는건지, 열받아야 하는건지... 올해부터는 조용한 도서관을 만들겠다 했더니 학생들이 '그건 쌤이 학기초에 하는 습관성 멘트 아니냐'고 하질 않나...


결국 떠드는 학생들에게 구두 경고 후 벌점을 살포하고(벌점이 누적되면 학생부로 인계된다) 일정기간 도서관 출입금지를 시켰다. 그랬더니 나름 도서관의 분위기는 잡혔지만 아이들로부터 '사서샘이 드디어 흑화했다'는 쌉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긴, 작년에도 시끄러워서 몇몇을 혼냈더니 '남편분이랑 싸운거 아냐?'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소리 한 애들을 잡아다 된통 혼냈던 것이 작년 5월 폭발사건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건지, 무서운 선생님 소리를 듣는게 좋은건지 고민이 된다. 무서운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에게 인기는 없어지고 욕도 먹을 수 있지만 일은 상당히 편해진다. 여러번 말할 필요 없이 한마디에 애들이 딱딱 움직이니까. 좋은 선생님이 되면 인기도 생기고 욕도 안먹고 아이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다.


교사가 연예인도 아니고 인기가 뭐 그리 중요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요즘 애들은 욕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괜히 애들한테 사서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둘 다 되면 되지 않냐 하겠지만 아이들은 굉장히 단순해서 대부분은 '무서운데 좋은 선생님, 좋은데 무서운 선생님' 이렇게 중복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대단히 단편적으로 분류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올해의 나는 어떤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설지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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