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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Oct 25. 2021

우리 집으로 가자

네덜란드 교환학생 D+9, 스페인 알리칸테 여행 마지막날

2017년 1월 27일 금요일


드디어 우리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도시, 알리칸테로 돌아왔다.

사실 알리칸테는 페이스북 유럽여행 페이지에서 핑크호수가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을 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리칸테를 다시 찾은 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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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는 방법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마스트리히트-아헨 공항은 우리가 사는 엠빌딩에서 제일 가까운 공항이지만, 아무래도 규모가 작다 보니 운행하는 노선이 몇개 없다. 그리고 그 몇 안되는 노선 중 하나가 마스트리히트와 스페인 알리칸테를 잇는 노선이다. 그라나다에서 네덜란드로 운행하는 항공 노선이야 물론 더 있겠지만, 마스트리히트의 위치 특성상 네덜란드 내의 어느 공항에서든 우리들의 집까지 최소 몇시간은 더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알리칸테에서 여행 마지막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고 마스로 바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정보 찾기를 게을리한 탓에 맛없는 것들만 먹었던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 아침 우리는 호스텔 주인에게 현지 맛집을 추천받았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낫긴 한데... 이곳의 음식 역시 음...오아예....

여기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아주 단순하게 조리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달라고 했더니 식재료 목록을 보여주길래 '뭐지...?' 싶었는데, 우리가 고른 재료를 썰어서 양념만 한 음식, 그리고 그냥 정직하게 한 번 튀긴 음식이 나왔다. 탄수화물도 없이 오로지 버섯과 오징어만으로 배를 채우고 있자니 어쩐지 절반쯤은 농경사회 이전 시기의 식단을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를 당황시킨 버섯산과 오징어 튀김.(우리는 재료 목록에서 버섯과 오징어를 골랐다) 오른쪽의 정체불명 음식은 타파스로 나온 샐러드다. 참고로 가게의 이름은 Kiosko Susi.


어쨌든 대충 아침을 먹었으니 산책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어차피 일정도 따로 없으니까. 우리는 어느 쪽이든간에 그냥 바다를 보고 오는 것을 목표로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거대하고 황량한 언덕(비스무리한 것)이 나왔다. 사실 왠지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 미묘한 기분을 무시한 채 방향 조절이 안되는 태엽인형마냥 꿋꿋이 전진했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른 끝에, 우리는 드디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야 안으로 밀물져 들어왔다.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우리는 저도 모르게 와아- 하는 탄성을 뱉었다. 특별히 아름답지 않아도 바다는 매번 볼 때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설레게 만드니 참 신기하다. 특히 여행 중에 보는 바다는 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알리칸테 한 귀퉁이의 이 바다는 우리의 입에서 작게나마 감탄을 끄집어냄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한 셈이니,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그렇듯이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언덕 위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언덕(?) 너머로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나름 장관이었다. 언덕이 생각보다 높아서 차마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번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룸메샷을 찍기 위해 타이머를 설정한 뒤 후다닥 뛰어가는 짓을 몇 번 반복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아래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사진만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언덕 자체가 사람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어서 누구한테 부탁할 수도 없었고, 이 바위 언덕에서 휴대폰을 세울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기에 우리는 더이상의 도전을 포기하고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바닷바람이 조금 쌀쌀했다.


사실 날이 그렇게 맑지는 않아서 오른쪽 사진에는 아날로그 필터를 끼얹어 보았다. 이렇게 여행의 낭만이 또 한번 조작된다...




바다를 보고 돌아왔는데도 시간이 조금 남았다. 쌀쌀한 날씨에 열심히 걸어서 그런가 다시 배가 고파져서, 이번에는 숙소에서 추천받은 디저트집에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여기는 진짜 맛집이었다. (이름을 적어온다는게 까먹었다...)

정말 맛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먹은 커피는 네덜란드에 돌아와서 내 잠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라이언에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동시에 집이 있다는 건 정말 아늑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 머나먼 타국에서도 내가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큰 안정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우리가 마스트리히트를 사랑하게 만드는 여행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마스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네덜란드의 물가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 역시 깨닫게 만드는 5일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라이언에어에 대해 조금 덧붙이자면, 이 저가항공사는 비행기 기체가 매우 많이 흔들린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도 많이 흔들렸다! 나와 지은이는 이대로 우리가 추락하는게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해해야 했으며, 정말 어이없게도 무사히 착륙하면 방송에서 팡파레 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이 기쁨의 박수를 친다. 진짜, 장난 아니고 진짜로!! (솔직히 누구든 이 비행기를 한 번이라도 타보면 무사착륙한 순간 마구 박수를 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기립박수를 치는 승객들도 있었는데, 아마 자신이 숨이 붙은 채로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감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는 우리의 여행답게 마지막까지 참 다이나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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