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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Oct 20. 2021

스페인 고속버스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네덜란드 교환학생 D+8, 스페인 그라나다 여행 둘째날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지은이가 감기에 걸렸다.

아마 그라나다에 도착한 첫날 차가운 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잔 게 타격이 컸던 모양이다. 나는 지은이보다 겹쳐 입을 옷을 더 가져와서 그나마 크게 아프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12시 체크아웃 전까지 숙소에서 골골대다가 벼르던 쇼핑을 위해 길을 나섰다.


스페인 남부의 물가는 지난 포스팅들에서 말했듯이 정말 저렴한 편이다. 거기에다 세일기간까지 겹치니 옷을 정말 싸게 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오이쇼(Oysho)에서 산 목욕가운인데, 한국에서라면 3만원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 퀄리티의 가운이 단돈 15유로밖에 안 한다. 특히 저 토끼 귀는 내 취향을 탕탕 저격해버려서 도저히 안 사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엄마가 볼 때마다 경악하는 곰돌이 귀 후드집업(비슷한 제품 사진을 구글링해서 오른쪽에 첨부했다)을 놓고 온게 못내 아쉬웠는데, 여기서 그만큼 귀여운 걸 찾게 돼서 행복하다.


그 밖에도 풀앤베어랑 에첸엠에서 몇가지를 더 샀는데, 옷 쇼핑에 100유로쯤 쓴 것 같다. 사실 스페인 하면 자라의 본고장이니 자라에서 좀 괜찮은 걸 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자라의 옷은 우리에겐 너무 난해했다!!

일부분만 보고 오 괜찮네? 하고 집어들면 가슴이나 등이 시원하게 뚫려 있거나, 옷 어딘가에 이상한 무늬나 장식이 있었다. 와 웬일로 전체적으로 멀쩡하네? 하고 집어들면 핏이 이상했다. 결국 우리는 자라에서 무언가를 건지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의 자라 홈 매장이나 좀 구경하다 나왔다.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들이 무척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다시 알리칸테로 돌아갈 시간!

우리는 쇼핑한 것들을 한아름 안고 알리칸테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아무래도 오래 가야 하다보니 한숨 자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가 탄 버스 안에서 광란의 파티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우리 바로 오른쪽 좌석에 앉은 스페인인 커플이 어느 순간부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 우리는 맨 앞줄에 앉아 있어서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다 들렸다 - 를 따라부르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냥 자기들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거였다; 이후 그 커플은 점점 흥을 주체할 수 없는지 춤까지 같이 추기 시작했다. (하필 또 목과 팔을 맷돌처럼 빙글빙글 돌리는 춤이어서 그들의 팔은 좌석 밖으로 쉴새없이 빠져나왔는데, 복도쪽 좌석에 앉아 있던 지은이는 미쳐버리려고 했다.) 커플의 바로 뒷자석에는 할머니들이 앉아 계셨는데, 아마 한국이라면 그 커플들은 K-어르신들에게 진작 참교육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열정의 나라 스페인. 그 커플의 뒷자리 할머니들은 덩달아 신이 나셨는지 함께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이런 표정으로 쳐다봐도 그들은 노래와 춤을 멈추지 않았다...끔찍...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결국 버스 기사 아저씨가 큰 소리로 뭐라뭐라 하셨다. 우리는 '그럼 그렇지, 버스 안에서 너무 민폐잖아!'라고 생각하며 평화롭게 잠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스페인.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낸 큰 소리는 호통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고자 건넨 웃긴 말이었던 것이다...하...


당연히 '거 조용히 좀 갑시다' 이런 건 줄 알았다구요!!!


커플과 할머니들은 그 말에 숨 넘어갈듯이 웃더니, 이윽고 기사 아저씨까지 합류하여 더욱 큰 소리로 다함께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쉴새없이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필 또 스페인어는 정말 빠르고 따그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서, 이 상황에서 잠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는 강제로 그들의 미니 콘서트 관객이 되어 한참을 버텨야만 했다...


몇 시간쯤 지나자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옆자리 커플이 중간 정류장에서 내렸다. 드디어 버스가 조용해지나 했는데 웬걸, 뒤쪽 좌석에 그만큼 시끄러운 사람들이 또 있었다. 단지 큰 소음이 우리 바로 옆자리에서 서라운드로 재생되니까 우리가 뒤쪽의 소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스페인 고속버스는 원래 이런 분위기인건지, 아니면 우리가 탄 버스가 유난히 시끄러웠던건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참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어쩐지 우리 여행답지 않게 너무 평화롭더라니!




고생 끝에 알리칸테로 돌아오니 저녁이었는데, 우리는 맛집을 열심히 찾기엔 너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결국 그 시간에 문을 연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말 가격대비 별로인 맛이었다. 우리는 먹으면서 '이건 우리학교 장터 메뉴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수군댔다. 앞으로 여행지에서 밥을 먹을 때는 조금 귀찮더라도 꼭 맛집을 찾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필터캠으로 찍어서 그나마 괜찮아 보이지만 진짜 맛없었다...

                

오늘의 메뉴
▶아침 : 호스텔 조식. 맛없음
▶점심 :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산 햄 바게트. 맛없음
▶저녁 : 동네에서 그나마 사람이 많아보였던 펍에서 먹은 음식들. 맛없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오늘은 정말 다 맛없는 음식들만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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