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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Oct 25. 2021

작은 설날 이야기

네덜란드 교환학생 D+10

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오늘은 한국 날짜로 구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떡국을 먹어야지!


스페인 여행을 마친 직후라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세 포럼에 위치한 아시안 마켓, 동방행*으로 향했다.

*한자로는 東方行, 영어로는 Amazing Oriental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냥 동방행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글자가 부르기에 훨씬 경제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떡국떡, 참기름, 말린 멸치와 다시마, 마늘, 대파, 소고기 등등 떡국 재료를 샀다. 동방행에는 생각보다 우리가 원하는 식재료들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엠빌딩에서 모세 포럼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내리막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그게 끝없는 오르막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뼈저리게 깨달았다. 떡국 재료 외에도 일주일치 식량을 잔뜩 사버린 우리는 그것들을 각자의 자전거 바구니에 나눠 담고 힘겹게 페달을 밟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피를 토할 것만 같다고 했으며(모세 포럼에서 엠빌딩까지는 약 2km정도인데, 정말 내리막 한번 없이 계속 올라가야만 하는 길이 이어진다. 자전거 타고 씽씽 내려올때는 계속 내리막이라며 그저 신났었지...), 내 자전거는 계속해서 반으로 접히려고 해서 몇 번이고 위기를 겪었다. 이 노답 자전거를 산 이후로 이렇게 오래 타보는게 처음이라 이제야 알았는데, 접힘 방지 레버 자체가 무슨 이유에선지 무척 헐거워서 금방 풀리는 거였다.

레오 할아버지 나한테 불량품을 팔았던 거냐구요!!! 내가 이 자전거를 사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스페인 여행의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대낮부터 반강제로 오르막길에서 사이클링을 하게 된 셈이다. 심지어 식자재들 무게까지 더해서 말이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자전거 도로에서 다들 씽씽 달리기 때문에 중간에 맘대로 멈춰설수도 없어서, 우리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낑낑대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모세 포럼으로 장보러 갈 때 절대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근데 이런걸 왜 꼭 직접 고생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건지 원...)




아무튼 이제 떡국을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마침 SBE*에 다니는 유빈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SBE는 School of Buisness and Economics,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상경대 이름이다. 참고로 지은이와 나는 인문사회대쯤 되는 Fasos 소속이다. Fasos는 Faculty of Arts and Social Science의 약자다.


언니가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요?'하고 말씀하셔서, 어쩌다 보니 셋이서 떡국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떡국을 직접 만들어보는 건 처음이라 네이버에 레시피를 검색해서 어영부영 따라했는데, 생각보다 꽤 그럴듯한 떡국이 완성되었다!


잡채가 있었더라면 더욱 행복했을 텐데! 엄마가 해준 맛있는 잡채와 약식이 그리웠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 내게 있어 명절은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가족, 친척들과 모두 떨어져 낯선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고유의 명절을 기념하는 일이 왠지 특별하고 의미있게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자니 한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드는 걸까? 나도 이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한국인 셋이서 조그맣게 설날을 기념하는 행위가 내게는 어쩐지 애틋한 의식처럼 다가왔다. 타국에서 보낸 첫 설날은 나름대로 행복했다.


저녁을 먹고 오늘도 꼭꼭 과일을 챙겨먹은 뒤,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원래의 저녁 루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하기를 재개했다. 내일은 드디어 죽음의 성물2를 보고 해리포터 복습을 끝내게 된다. 이쯤 되면 영국 여행 준비가 1/3쯤은 끝난 거라고 볼 수 있다. 하하하!



오늘의 메뉴
▶아침 겸 점심 : 시리얼과 초코멜(우유가 없어서 어쩔수 없었다..)
▶저녁 : 떡국
초코멜은 이렇게 생긴, 샛노란 패키지가 특징적인 초코우유다. 아주 맛있지만 시리얼에 넣어먹는 건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다음번에 장볼때 흰 우유 까먹지 말고 사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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