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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Nov 04. 2021

신입생환영회에서 클럽을...?

네덜란드 교환학생 D+12 : Welcome Dinner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오늘은 Welcome Dinner가 있는 날!

사실 네덜란드에 도착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가 한 거라고는 여행하기, 장보기, 뒹굴거리기 정도가 다였다.

물론 이렇게 생활에 미리 적응하려고 일부러 개강보다 조금 일찍 온 거긴 했지만, 그래도 슬슬 이곳에서의 학교생활은 어떨지 궁금해지던 차에 마스트리히트 대학과 관련된 첫 행사, 웰컴 디너의 날이 찾아온 것이다. 사전에 공지된 저녁 시간에 맞춰서 지은이와 나는 웰컴 디너 장소인 The Lab으로 향했다. 웰컴 디너면 우리나라의 신환회(신입생환영회의 줄임말이다)같은 행사이려나? 나는 설렘과 걱정을 반반씩 안고 아직 추운 밤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듣던대로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듯한 교환학생들이 웅성대며 모여 있었다.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쭉 늘어선 4인 테이블에 사람들을 대충 앉혀 주는데, 지은이와 나는 처음 보는 여자 두 명과 섞여 함께 자리에 앉았다. 웰컴 디너 메뉴는 두가지 중 하나인데(역시 이곳에서도 단체 행사시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메뉴를 통일시키는 모양이다) 나는 카프레제 피자를 골랐다. 맥주와 스프라이트도 나왔지만 사실 10유로짜리라기엔 그닥...인 식사였다. 피자는 너무 양이 많아서 먹다 보니 물렸고, 맛도 정~말 무난했다. 우리는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좀처럼 편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파워 내향인간인 나로서는 숨이 턱턱 막혔다. 제발... 여기서 벗어나게 해줘...!

나중에 ISN에서 받은 그날의 사진. 모두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체 제작 스티커를 붙였다! 지은이가 왜 저런 캐릭터가 되었는지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나올 예정이다.


식사 이후에 교환학생들은 행사 스탭들의 인솔에 따라 다같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 채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떼마냥 우루루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다소 허름해보이는 웬 건물 앞에 도착했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 보니 그곳은 다름아닌 클럽이었다!!!


클럽이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다같이 클럽을 간다구요...? 내가 아는 신환회는 학교 근처 술집에서 다같이 하하호호 술이나 마시는게 다라구요!


충분히 혼란스러워할 틈도 없이, 입구에 서있던 스탭이 나에게 대뜸 야광팔찌 색깔을 고르라고 했다.

정말 쓸데없는 데에서 선택권을 준다고 생각하며 아무거나 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팔찌 색마다 의미가 있었다. 스탭은 현재 솔로면 초록, 이미 애인이 있으면 빨강, 좀 complicated하면 주황을 고르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니 대체 신입생 환영회에서 뭘 하려고 그걸 표시하게 하는건데???* 알면 알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신환회였다.


*나중에 듣게 된건데, 이게 신호등 색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애인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대쉬를 거절한다는 의미로 멈춤 신호인 빨간불을, 내가 솔로면 대쉬를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초록불을 켜는 것이다. 그리고 좀 애매한 사람들을 위한 노란불도 있는 것.




건물 안은 널찍한 홀이었는데, 입구쪽에 작은 바가 하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릴 때에는 문이 여닫힐 때마다 둥둥거리는 음악 소리와 조명이 새어나오길래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클럽이라고 해서 강남이나 홍대 클럽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이태원 펍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간혹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사람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색하게 펭귄들처럼 모여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펭귄1, 2가 되어 사교활동을 시도해보았으나 음악이 너무 커서 뭐라고 하는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근데 홀의 크기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음악이 작았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착 가라앉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거기에서 만난 네덜란드 출신의 니키라는 여자애가 우리에게 술을 사주었다. 니키는 우리를 바(bar)로 데려가더니 데낄라 샷을 주문했다. 작은 샷잔에 담긴 데낄라와 레몬이 함께 나왔는데, 니키가 난데없이 내 손에 소금을 뿌려주더니 '일단 핥아보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당황했다. 혀로 핥으라구요? 지금 여기서요?

장난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데낄라 샷은 원래 그렇게 먹는거라고 했다. 나처럼 몰랐을 사람들을 위해 니키가 알려준 방법을 한번 적어보겠다.


1.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 공간(아래 사진 참고)에 소금을 뿌린다.

2. 소금을 핥아먹은 뒤 데낄라를 재빨리 전부 입에 털어넣는다.

3. 곧바로 레몬/라임을 한 입 베어문다. 끝!


동그라이미친 부분에다가 소금을 뿌린 후 핥아먹는다


왜 이렇게 먹어야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 원래 그런 거라니까 한번 해봤다. '짜고 쓰고 셔!' 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다만 소금을 굳이 손에 뿌리고 핥아 먹는건 다소 결벽증이 있는 나에겐 좀 끔찍한 일이었으나(밖이었으면 분명 지은이와 함께 역시 미-개 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뜻한 느낌에 찝찝한 기분은 생각보다 금방 잊혀져갔다. 어떻게 마시든 맛있으면 됐고, 취하면 된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술도 조금 마시고,  대화도 좀 해보고, 음악에 맞춰 둠칫둠칫 춤을 추려는 노력도 해 보았지만, 클럽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결국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10시 45분 경에 뛰쳐나왔다. 이건 뭐 정신 놓고 놀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한국 클럽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교환학생 생활에 대한 모든 로망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공부는 대충 하고 여행이나 다녀야 하나... 나는 과연 다가올 arrival week에서 무언가 수확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의 메뉴    
▶아점 : 호밀식빵, 그릭요거트*+꿀, 양념감자, 계란프라이
▶저녁 : 웰컴 디너 I - 카프레제 피자, 맥주, 스프라이트
▶기타 : 데낄라 한잔~

*이 그릭요거트는 지나치게 꾸덕해서 꿀이 없으면 먹을수가 없다. 맛도 꾸덕꾸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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