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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Nov 09. 2021

파티에서 새 친구 사귀는 법

네덜란드 교환학생 D+13, 14 : 플래그 파티와 삼겹살 파티

2017년 2월 1일 수요일


오늘은 이틀간의 파티 이야기를 몰아서 써 볼까 한다.

어제는 International Flag Party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저께 웰컴 디너를 주최했던 ISN(International Student Network, 쉽게 말하면 교환학생과 관련된 온갖 잡다한 프로그램들을 주최하는 학생단체쯤 된다)에서 여는 파티였는데, 웰컴 디너 애프터파티에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던 지은이와 나는 일부러 파티 시작 시간보다 1~2시간가량 지난 시점에 파티장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쯤 되니 사람도 딱 알맞게 북적거리고 분위기도 꽤 달궈진 상태였다.


도착해보니 파티 이름답게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학생들은 각자 자기 나라의 국기를 얼굴에 그린 채로 놀고 있었다. 아하, 그래서 flag party구나! (맞다. 사실 뭐 하는 파티인지도 모르고 그냥 왔다.)

우리는 파티의 컨셉을 100프로 즐기기 위해 일단 구석에 마련되어있는 페이스페인팅 부스(?)에 줄을 섰다. 보니까 자기 나라 국기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면 그리는 학생이 따라 그려주는 방식이길래, 우리도 태극기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 준비해두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

그런데 페이스페인팅 담당 ISN 학생에게 태극기 이미지를 보여주자,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그림을 그리던 ISN 학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붓을 내려놓더니 내가 보여준 태극기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설마 동양의 코딱지만한 나라 국가 국기는 취급하지 않는다 뭐 이런건 아니겠지~?(농담이다)


정지화면처럼 태극기를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아 이건 쉽지 않겠는데...?' 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태극기를 내 볼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좀;


처음에는 왜 그러지 싶었는데, 주변 학생들 얼굴의 국기를 찬찬히 둘러보니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국기는 기껏해야 두세가지 색으로 직직 그으면 완성되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 국기들과 차원이 다른 디테일을 자랑했던 것이다. 아니 한국인들은 초딩때 학교에서 태극기 다 그려본다구요~!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유럽 국기들은 대체로 심플한 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동북아시아 3국중에서도 한국 국기가 유달리 그리기 좀 어려운 편은 맞는 것 같다.


그림그리던 학생은 태극문양의 곡선도 어려워했지만, 특히 양 사이드의 건곤감리 부분을 그릴 때 상당히 버거워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한국인이 두 명이니 작업량이 두 배! 결국 그녀는 디테일을 포기했는지 두줄씩만 직직 그어서 마무리를 해줬다. 그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아무튼 드디어 flag party 참가자로서의 모습을 갖춘 우리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여러 나라 아이들에게 조금씩 말을 붙여 보았다. 어떤 독일 여자애는 내가 "나 고등학생 때 독일어 조금 배웠는데,"라고 운을 떼자마자 신이 났는지 독일어로 마구 말을 쏟아내기 시작해서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 그냥 아이스브레이킹삼아 꺼낸 얘기였다구요~!! 그 애는 '어려운 부분은 편하게 영어로 물어보라'며 계속 말을 했지만 내 독일어 실력은 수능을 친 이후 급격히 퇴화된 상태였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아무래도 웰컴파티때보다는 좀더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다들 좀 취한 상태라 그런지 비교적 파티스러운 느낌이 났다. 우리는 여기서 또다른 한국인들도 만났는데, 외국인들과 이미 무척 친해 보이는 에디씨, 그리고 뭔가 교포 언니스러운 느낌의 활발한 또래 친구 주연이, 이렇게 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연이는 오늘 처음 본 우리에게 내일 함께 파티를 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하는 놀라운 친화력을 보여주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한국인 또래 친구가 한명 더 있으니 넷이서 삼겹살 파티를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삼겹살 파티 약속을 덜컥 잡아버렸고, 그렇게 오늘 처음으로 C빌딩에 놀러가게 되었다.




C빌딩은 우리가 사는 M빌딩과 ㄱ자 모양으로 붙어있는 건물인데, 마찬가지로 마스트리히트 대학 학생들이 많이들 거주하는 게스트하우스다. 두 빌딩은 물리적으로 이어져있긴 하지만 그 사이를 오가려면 출입증이 필요하다. C빌딩 유리문 앞에서 쭈뼛거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또다른 한국인 친구, 현교가 문을 열어주러 나왔다.


현교는 조그맣고 귀엽지만 무척 야무져보이는 친구였다. 현교는 C빌딩의 일층 방에서 혼자 지낸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현교가 사는 C빌딩 1층 방의 창문이 우리가 M빌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나 있던 창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방 안을 볼 수 있어서 블라인드를 열기가 좀 그렇고, 창문을 열어두면 밖에서 담배냄새가 들어와서 1층이 별로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3층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고충이었다.


우리는 현교의 안내에 따라 C빌딩 1층 맨 끝에 위치한 공용주방에 자리를 잡았다. C빌딩의 주방은 M빌딩 주방이랑 사이즈는 비슷했지만 훨씬 개방감이 있고 인테리어가 예뻤다. (우리 빌딩에서 찍은 음식 사진들이 죄다 노랗고 뻘건 색으로 나오는 건 다 인테리어 탓이다...) 인상적인 것은 방별로 사용할 수 있는 캐비닛이 아예 나누어져 있고, 열쇠로 잠글 수 있다는 점이었다. 캐비닛은 함께 쓰고, 냉장고가 방별로 칸이 나누어져 있는 우리 빌딩과는 다른 점이었다.



삼겹살과 상추, 쌈장, 햇반, 그리고 비빔면까지! 우리는 인당 5.5유로씩 모아서 완벽한 한국식 한끼를 즐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면서 한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자니 마치 잠시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나온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묘한 안정감도 들었다. 이래서 외국 나와서 사는 사람들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로군! 현교는 방도 우리랑 가깝고 또 fasos라고 하니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될 것 같았다.



추가) 정보수집의 대가 지은이는 마스트리히트에 비숍스몰렌(Bisschopsmolen)이라는 파이 맛집이 있다는 소식을 물어왔다. 어제 플래그파티에 가기 전에 들를까 하다 결국 못 간게 아쉬워서 점보 근처 베이커리에서 파이를 사왔는데, 왼쪽꺼는 rice 파이라고 하길래 신기해서 사봤다. (우리는 서로가 이상한 시도를 하려고 할 때 좀처럼 말리지 않는다.) 맛은 음... 역시 사람들이 굳이 맛집을 찾아가는데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쌀이 주식인 우리로서는 쌀을 달달하게 조리하는게 정말 낯설게 느껴지는데, 유럽인들은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간식 느낌의 달달한 빵이 많은 것과 비슷한 걸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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