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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Nov 23. 2021

리딩의 폭격

네덜란드 교환학생 D+16

2017년 2월 3일 금요일


Arrival Week 행사들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드디어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개강은 다음주 월요일이지만 당장 어제가 Introduction Day였고, 첫 수업 전까지 읽어와야 하는 리딩 과제도 벌써 나왔다. 나와 지은이는 앞으로의 수업을 대비해 프린트하는 법을 익히러 M빌딩 1층 복사실로 향했다.


프린트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myPrint라는 사이트를 통해서만 프린트를 할 수가 있다. 이 사이트에 선불로 credit을 충전해두고, 프린트하고자 하는 파일을 여기에 업로드한 뒤에 프린트를 누르면 프린트의 종류와 매수에 따라 credit이 차감되는 시스템이다. 프린트할 파일을 업로드만 하면 언제 어느 프린터에서든 프린트 가능! 뭐 이런 점을 좋다고 어필하는 것 같은데, 사실 정~말 귀찮다.


한국에서는 그냥 복사기에 연결된 컴퓨터에서 파일을 열기만 하면 바로 프린트가 되고, 내가 인쇄한 양에 맞춰서 요금을 후불로 치르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서는 매번 파일을 웹사이트에 미리 업로드해놔야 하고, 인터넷 결제로 요금을 미리 충전해놔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이 안 되는 환경에서 작성한 문서는 일단 그걸 USB에 담고,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를 찾아가 문서를 그리로 옮긴 뒤, 거기서 myPrint로 업로드한 뒤에야 프린트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물론, 네덜란드에서 공공업무들을 여전히 아날로그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납득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빨리빨리의 민족에겐 정말 답답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myPrint 페이지는 이렇게 생겼다.




그나저나 나는 전공서적의 2쪽부터 84쪽까지를 미리 읽어오라는 수업 공지를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문득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신청한 미술사 강의에서 하루에 진도를 ppt 200장씩 나가는 걸 보고 바로 드랍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여담이지만 그때 같이 수강신청을 했던 동기 6명 중 이미 책을 사버린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두 번째 시간에 탈주했다.)

이건... 드랍각인가...


그러나 현재의 나에게 드랍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이번 period에 내가 듣는 과목은 달랑 2개뿐이기 때문.

엄밀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대학의 봄학기는 이곳에서 period 4와 5에 해당하는데, 그 기간동안 우리에게 할당된 학점은 30 ects(유럽 대학의 학점 단위)이다. UM(마스트리히트 대학의 약자)의 수업은 크게 두 가지 종류인데, 쉽게 말하면 메인 수업에 해당하는 course와 서브 수업에 해당하는 skill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12ects와 3ects씩이다. 즉, 수강신청 가능한 학점을 고려할 때 한 period에 들을 수 있는 것은 course 하나와 skill 하나뿐이다. 아래 표를 참고하시라.

대학에서 수업을 이렇게 적게 들어도 되는건지 의아하겠지만, 이러한 학점 배정은 UM의 모든 수업이 PBL(Problem Based Learning, 문제 중심 학습)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PBL은 학생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선정하고 이를 토의/토론을 통해 풀어나가면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교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 한 period동안 course 하나와 skill 하나만 들어도 벅차다.


어쨌든 나는 리딩과제로 나온 책의 pdf파일을 구해서 프린트했다. 내 원래 전공도 아닌 내용을 영어로 읽고 있자니, 배경지식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은 고사하고 일단 학술용어에서부터 턱턱 걸리기 시작해서 난감했다. 이럴거면 리딩 과제 좀 일찍 주지...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탱자탱자 놀기만 했단 말이야!

극악무도한 분량의 리딩 과제가 나온 안내문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끼니는 잘 챙겨 먹어야지!

끔찍한 리딩을 잠시 뒤로하고, 우리는 지난번에 가려다 못 갔던 파이 맛집 Bisschopsmolen에 다녀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디저트 삼아 먹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어엄청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음~ 맛있네.' 이정도? 그나저나 뒤늦게 우리가 간 지점이 원조 비숍스몰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원조집은 대체 어디인거지?!

배를 열심히 채우고 우리는 각자의 리딩 과제에 다시 집중했다. 과연 개강 전까지 전부 해치울 수 있을 것인가...!



여담인데, 지난번 글까지 올리고 나서 지은이한테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ㅋㅋㅋㅋㅋ

그야 사실이기 때ㅁ... 아니, 아직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에피소드가 덜 나와서 그런 것이다.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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