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환학생 D+24, 25, 벨기에 여행
2017년 2월 12일 일요일
토요일 일기까지 몰아서 쓴다!
금요일 밤에 광란의 밤을 보내고도 우리(나, 지은, 윤진)는 다음날 멀쩡히 벨기에 가는 기차에 올랐다.
갑자기 왜 벨기에에 가냐고? 사실 우리도 좀 당황스럽긴 한데, 어쩌다보니 남들 여행에 꼽사리를 끼게 되었다.
원래의 여행 멤버는 윤진, 그리고 윤진이의 캐나다인 룸메 리지아, 그리고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 온 맷, 맷의 친구인 에드워드, 라이, 올리버, 그리고 범슨오빠(본명이 아닌데 왠지 이게 더 입에 착 붙어서 우리는 그를 그냥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렇게 7명이었던 것 같다. 이중에서 우리가 친하다 할 수 있는 건... 윤진이 정도?하하
범슨오빠는 우리(나, 지은)와 동문이지만 교환학생 온 시기가 달라서 사실 이야기를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아마 윤진이가 우리를 초대하자고 제안한 듯하다. 아무튼 기존 멤버들이 동의한 것인지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들과의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파워 내향인인 원래 내 성격대로면 질색했을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여행을 해보겠나 싶어 덜컥 알겠다고 해버렸다.
(물론 설렘이 주던 초반의 에너지는 여행 시작 후 급격한 속도로 사그라들게 되는데, 역시 나는 어색한 사이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에너지를 전부 빼앗기는 타입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벨기에의 엔트워프(Antwerp)와 브뤼셀이었다.
브뤼셀이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엔트워프는 처음 듣는 도시라 왜 가는지 몰랐는데, 사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여행 직전에 얹혀 가기로 결정된 거라 뭐 들어볼 새도 없었기도 했고, 기존 멤버들도 하나같이 관광에는 별 뜻이 없어 보여서 그냥 벨기에로 MT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금방 가는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기차를 갈아타면서 이동해서 시간이 좀더 많이 걸렸다.
윤진이가 미러리스를 가져와서 열심히 찍사 역할을 해 준 덕분에 사진이 많이 남았다.
엔트워프 기차역에 도착하자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내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호그와트의 마법사들이 비밀스럽게 섞여서 출퇴근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카메라 렌즈가 뿌연 상태로 찍어서 그 느낌이 잘 안 살지만 구글 검색을 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우리는 숙소에 먼저 들러서 짐을 풀고, 그 다음에 식사와 관광을 하기로 했다.
에어비엔비로 잡은 숙소였는데, 진짜 엠티 온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숙소 사진은 이따가 살짝 공개하는걸로!
숙소에서 나와 우리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러 수제버거집에 들어갔다. 신기한 건 비건 버거도 있었다는 거였다. 확실히 유럽 음식점들은 비건 메뉴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식사가 끝났으면 당연히 디저트도 먹어야지! 우리는 저녁을 다 먹고 벨기에의 명물인 와플을 먹으러 근처에 보이는 와플 체인점, '와플 팩토리'로 들어갔다. 기대하면서 기다렸는데 막상 먹어보니 별로였다. 세상에, 체인점은 보통 최소한 평타는 쳐야 하는거 아닌가?! 다음날 알게 된건데, 길에서 파는 와플들이 백배 천배 더 맛있다. 벨기에에 가거든 와플팩토리는 가지 말고 길거리 와플을 사먹을 것!
밥을 먹고 나서 우리는 앤트워프 시내를 구경했는데, 사실 앤트워프 성당 말고는 딱히 볼게 없었다.
앤트워프 성당은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자, 루벤스의 그림들이 걸려있는 고풍스러운 성당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모든 정보는 관광이 다 끝나고 집에 와서 검색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급한 여행이라는게 다 그렇지 뭐^^
성당 밖에는 이렇게 네로와 파트라슈를 본뜬 동상이 있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검색해보면서 알게 된 거고, 이 당시에는 그냥 '우와 가서 따라해봐야지~' 하면서 달려가서 사진을 찍은 거였다. (근데 나랑 윤진이 말고는 아무도 이 동상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들 너무... 너무 어른이야...?)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폭설이 내렸는데, 나는 짧은 패딩에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을 무진장 후회했다. 관광다운 관광을 하기에 오늘은 날이 영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다들 관광에 별 뜻이 없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추워서 그렇다) 성당이랑 거리를 적당히 휘휘 돌아보고 말았다. 근데 지금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니까 다들 우리처럼 그 성당의 의미같은거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쩐지 아무도 설명 안 해주더라니...!
눈은 점점 오고, 날은 점점 더 추워졌다. 우리는 관광이고 나발이고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결국 펍에 들러서 한잔 하고 숙소에 가기로 했다.
맥주 종류가 많아서 고민하는 나에게 리지아가 추천해 준 건 mort subite라는 맥주였다. 리지아는 그게 프랑스어로 'sudden death'라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맥주 이름치고는 너무 살벌한거 아닌지...?) 체리맛 맥주였는데 내 입맛에 딱이었다.
각자 한잔씩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맥주와 과자, 젤리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당연히 숙소에서 본격적으로 마시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이거 여행이 아니라 MT인 것 같다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한국 술게임을 조금 가르쳐줬는데 얘네한텐 아무래도 카드로 하는 게임이 익숙한지, 결국 트럼프카트를 사용하는 술게임으로 복귀했다. 그치만 흥의 민족에게 카드 술게임은 너무 정적인 것...! 한국 대학생들의 떠들썩한 MT 분위기가 문득 그리워졌다.
그나저나 뭔가 영어학원 원어민선생님같은 느낌이었던 맷은 숙소에서 안경을 벗고 나시만 입고 나타나서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맷은 정말 울퉁불퉁했다. 거기다가 볼캡까지 뒤로 돌려 쓰더니, 왜인지 갑자기 말투도 뭔가 양아치스러워졌다. 외관에 따라 인격이 달 달라지는걸까? 이게 말이 되는거냐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방 안에 늘어져 있었는데 언제 외출했던 건지 남자들이 식재료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아침을 척척 만들기 시작했다. 맷은 이번에는 웃통을 까고 방에 불쑥 나타나서 "커피 마실래?"라고 말해 우리를 한번 더 깜짝 놀라게 했지만, 아침식사 후 원래대로 옷을 입고 안경을 쓰더니 다시 선생님 모드로 돌아갔다. 참 알 수 없는 친구다. 우리는 비척비척 일어나 간단한 서양식 아침을 먹었다. 베이크드 빈은 에드워드가 꼭 사야 한다고 해서 샀다는데 사람들이 많이 먹지 않아서 뭔가 안타까웠다. 저 사진 속 땅콩버터는 너무 뻑뻑했는데, 윤진이는 엄청 좋아했다. (나중에 윤진이는 마스에 돌아가서도 저 땅콩버터를 따로 사먹게 된다)
그나저나 어제는 날씨가 너무 구려서 우울했는데 두번째 날은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오늘 우리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몰랐는데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벨기에도 프리츠가 유명한 모양이었다. 사실 흔하디흔해보이는 감자튀김이 한 국가 하면 떠올리게 되는 대표적인 음식이라는게 의아할 수 있겠지만, 네덜란드의 프리츠를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갑자기 네덜란드 홍보하기~)
아무튼 벨기에의 프리츠도 네덜란드 것과 거의 똑같았다. 두꺼운 감자튀김과 여러 종류의 소스들! 라이가 시킨 치킨 소스가 맛있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드디어 길거리 와플을 맛보게 되었는데, 진짜 진짜 맛있었다. 물론 윤진이의 미러리스로 찍어서 더 맛있어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래 사진 속 메뉴들 중 생크림+초코+딸기 맛을 선택했다. 물론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기도 하지만 정말 맛있기도 했다. 아, 사진 속 와플들은 모형(?)처럼 디피된거고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준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아서, 우리는 시청 건물을 휙 돌아본 뒤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을 보러 갔다. 근데 그 작은 동상 앞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는 멀찍이 서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 보러 갔을 때의 기분같달까...
마지막으로는 무슨 박물관인가? 어딘가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우리는 적당히 시내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여유롭게 마스트리히트로 돌아왔다.
이제 또 한주의 시작이다. 다시 리딩과 수업준비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먹고 잘 쉬다 왔다. 이렇게 주말에 주변 국가로 짧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게 유럽 교환학생의 매력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