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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Feb 12. 2022

꼬끼오 영화관과
낯선 집으로의 초대

네덜란드 교환학생 D+28  : 영화관 나들이 & 레일라 집 방문

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오늘은 바로바로 영화관에 가 보기로 한 날!

교환학생의 좋은 점은 이렇게 한 동네에 머무르면서 여유롭게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네덜란드의 영화관 시스템은 어떨지 기대가 됐다.


가기 전에 마켓에 들러서 간식을 먹고 Pathé 영화관까지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영화는 넷이서(윤진, 나, 지은, 현교) 보기로 했는데, 종민언니랑 유빈언니가 마켓 나들이에 합류했다.

마켓에는 Reitz라는 프리츠 맛집이 있는데 아래 사진처럼 종이 고깔에다가 프리츠를 잔뜩 담아서 준다. 우리가 먹은 건 '스페셜 소스' 인데, 다진 양파, 마요네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소스가 섞여있다. 진짜 진짜 맛있는데, 레시피만 알 수 있다면 집에서도 자주 해먹고 싶을 정도다. 오른쪽껀 말고기가 들어간 소스인데 생각보다 고기가 부드러워서 놀랐다. 말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괜히 거부감이 들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사실 갓 튀겨져서 나온 따끈따끈한 프리츠는 어떻게 먹든 맛있을 것 같다, 하하!

Reitz에서 산 프리츠


그나저나 걸어가는 중간에 네덜란드 10대 무리가 낄낄거리며 우리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누가 봐도 욕인게 분명한— 말들을 지껄였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참기로 했다...는 개뿔! 우리는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난무하는 한국어 욕으로 되돌려 주었다^^ 인종차별이 얼마나 미개한 짓인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그래도 다행히 여럿이 있어서 그런지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당하면 정말 기분도 더럽거니와, 이곳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되새기는 느낌이라 좀 서글퍼진다.


아무튼,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며 기분나쁜 일들은 금방 털어 버리고, 우리는 단짠단짠의 정석대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Pinky로 향했다. Pinky 역시 마켓에 있는 젤라또 가게인데, 이 근방에만 세 군데나 있는 걸 보면 흔한 체인점인 것 같다. 우리는 간만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야외 테이블에서 젤라또를 먹었다. 오늘의 기온은 무려 16도! 네덜란드에서 정말 보기 드문 날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벨지안 초콜릿 맛이 진짜 맛있다.
화창한 하늘

 



마켓에서 슬슬 걸어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Pathé 영화관이 나온다. 로고가 닭이 소리치는 듯한 말풍선 안에 이름이 적힌 모습이라서 우리는 당연히 '꼬끼오' 정도의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프랑스의 유명한 미디어 프레스라고 해서 뭔가 배신감이 들었다. 동네의 귀여운 꼬끼오 극장인 줄 알았다고요~! 실망이야...

바로 그 문제의 Pathé 로고
영화관 외부 모습. 정말 동네 꼬끼오 극장이라기엔 크고 삐까번쩍한 모습이다.


오늘 볼 영화는 바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심연'. 그레이 시리즈 중 2편이다.

이 영화의 1편과 관련해서는 슬픈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내가 갓 20살이 된 해의 2월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제 우리도 성인이 되었으니 영화관에서 당당하게 청불 영화를 볼 수 있다며 당시 엄청나게 핫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편을 예매했고, 영화가 끝나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어리둥절해하며 나왔다. 살다 살다 그렇게 별로인 영화를 내 돈 주고 보긴 처음이었다. 아마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예매했을 커플들이 얼빠진 표정으로 터덜터덜 나오는 모습이 웃겼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이 영화가 선택된 이유는 '이런 류의 영화는 언어의 장벽이 덜하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아주 그럴듯한 설명 때문이었다. 2년 전 호되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결국 이 망할 시리즈의 2편까지 영화관에서 보게 된 것이다! (아니 애초에 1편을 그렇게 말아먹고도 2편이 제작된게 놀라울 따름..)


귀여운 영화표! 뒤집으면 영화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리고 대망의 관람 후기 : 이번에도 OST 빼고는 건질 게 없다.

우리는 이번에도 얼빠진 표정의 관객들과 함께 나오면서 돈 버렸다고 욕했다. 인간이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는 바로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영어가 생각보다 잘 들려서 좋았다. (하지만 셜록은 당연히 자막으로 볼 것이다.) 미녀와 야수 예고편이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 영화관에 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엔 꼭 제대로 된 영화를 봐야지!




지은이와 나는 장을 보러 점보에 가기로 해서 윤진이와는 찢어졌다. 현교는 마침 그 근처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보에서 장을 보는 도중에 하필 그 친구(레일라)와 딱 마주쳤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레일라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을 자기 집에 초대한다고?! 프리드링크때도 느꼈지만 다들 정말 친화력이 좋은 것 같다.


빈 손으로 갈 수 없으니 우리는 라즈베리 술을 한 병 사들고 레일라의 집을 찾아갔다.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는데, 웃긴 건 그게 레일라가 아닌 현교가 만든 파스타였다는 점이다. 왜 손님인 현교가 요리를 하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아무튼 소스가 맛있어서 잘 먹었다. 그리고 난 펜네 파스타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깨닫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자를 먹으면서 현교와 레일라, 그리고 레일라의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레일라는 여러모로 특이한 캐릭터인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며 나와 지은이는 서로가 룸메인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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