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냥 써보세요, 기왕이면 결론까지.

by 다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생각을 했다가 저 생각을 했다가 아주 혼란하다. 그래서 생각 정리용으로 글을 썼다. 생각나는 것을 두서없이 이리저리 적다 보면 결국 혼란한 머릿속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백지 위에 활자로 적힌다. 글의 시작은 있지만 항상 끝은 없었다. 결론을 내지를 못했다. 혼란한 머릿속에서 무엇이 가장 문제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다.

나중에 내가 쓴 글을 읽어보니 꽤 괜찮게 읽혔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매끄럽고 나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다만, 결론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렇게 끝낸다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기왕 쓴 김에 마무리까지 지어보자 싶었다. 덩어리의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결론을 내어 보자. 엉성하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며 글을 썼다. 그리 대단한 주제로 논리를 펼친 것은 아니다. 쓴 글의 주제를 몇 가지 말해보자면, ‘나는 콜라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콜라는 맛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일에 몇 시간이나 낭비했기 때문이다.‘ 정도다.

어떤 이론이나 사회적인 현상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느끼는 이러저러한 것을 두서없이 나열했다. 단순 나열만 하던 글쓰기에서 발전해서 그 글을 조금 다듬었다. 한번 쓴 글은 다시는 읽지 않았는데 이 글들을 다시 읽었다. 은근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툭 끊기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이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다.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어디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결국 이 생각과 저 생각이 이어지고, 저 생각과 또 다른 생각이 이어지는데 이게 이상하게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파악조차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떠다니는 개념을 백지 위에 활자로 적어내는 과정은 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주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

콜라는 몸에 좋지 않다. 하지만 콜라는 맛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 콜라는 맛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몸에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면 이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하는가. 장점과 단점이 비슷하다는 의견은 받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당장 콜라를 마실 것인지 마시지 않을 것인지를 고른다. 지금까지는 이 결정을 하지를 못했다. 콜라가 맛있지만 몸에 좋지 않다. 콜라는 몸에 좋지 않지만 맛있다. 단점과 장점을 모두 인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며 콜라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콜라에 대한 장점도 쓸 수 있고, 단점도 쓸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입장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글의 ‘결론‘ 부분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최소한 어떤 마음인지 정도는 정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작성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당장은 명확히 하기가 어려우니 한동안은 이 애매한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콜라는 몸에 좋지 않으니 최대한 먹지 않겠다든지, 콜라는 맛있고 아직 젊은 몸을 가졌으니 먹고 싶은 만큼 마시겠다든지. 다양한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은가.

한번 쓴 글은 영원히 남는다. 하지만 어떤 입장을 표명한 글을 썼다고 해서 작가가 항상 그러한 입장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콜라는 몸에 좋지 않으니 마시지 말라는 주장을 쓴 사람도 경우에 따라 마실 수도 있다. 사람도 변한다. 이러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어땠고, 미래에는 어쩌고 싶은데 지금은 어떤지. 다 필요 없고 당장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생각을 글로 적어보는 거다. 기왕이면 결론까지. 아마 생각지 못했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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