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산문 & 에세이 &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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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위의 숫자들이 가을을 향해 시끌벅적 달려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 어느 한구석이 들썩이는 건 결코 사람만이 아닌 모양이죠.
가만히 달력에 손을 짚으면 가을을 향해 달려가던 숫자들이 멋쩍어 얼굴을 붉히기도 할까요? 아니면 또르르 소매 속으로 미끄러져 숨어들까요. 자연은 벌써부터 이리도 들썩이는데 인간은 짐짓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만 있습니다.
여름이 멀찍이 멀어지고 그 뒤로 바짝 추석도 따라가면서 멀어집니다. 여름내 뜯지 못한 달력 한 장을 박박 찢어 동그랗게 말아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찢긴 달력은 가을 나뭇잎처럼 쓰레기통에서 서걱 거리며 서서히 말라 가겠죠.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되는 계절이 무시로 다가옵니다. 세상은 이 좋은 계절, 왜 자꾸 꿈만 꾸어라 소곤대는 걸까요. 태양의 길이가 한 뼌쯤 짧아졌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계절을 건너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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