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네모난 컨테이너 박스.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진 이 작은 별장은 없는 것만 없을 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곳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숙박이 아니었다. 색다름이 선사하는 신선함이 차갑게 느껴졌던 컨테이너 박스의 철제벽을 따듯한 휴식처로 만들어주었다. 숲에서 맞이한 밤은 새로운 세상의 흥분과 몰입을 가져다주었다. 온몸이 물에 젖어 축 처질 때까지 우리는 그 밤을 불꽃을 피우며 즐겼다.
이른 아침, 누렁이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숲의 고요함 속에서, 낯선 환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도심을 떠나온 낯섦도 잠시 숲 속의 고요함이 우리를 받아들였다. 목줄을 끊고 다가온 누렁이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그 강철 쇠줄을 어떻게 끊고 우리에게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누렁이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숨결이 그토록 그렇게 그리웠구나!' 그렇게 우리와 누렁이의 컨테이너에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상기된 얼굴로 계획했던 담양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담양에 도착한 후, 우리는 메타세콰이아랜드로 향했다. 도로 양쪽에 심긴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을 보며, 우리는 이곳이 담양임을 실감했다. 정갈하고 가지런한 그곳이 편안하고 좋았다. 맑은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깊게 들이마시며 도심의 소란스러움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휴양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했고, 마치 이 공간이 통째로 온전히 우리를 위해 마련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아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을 선사했다. 하늘을 찌르듯이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만들어낸 터널 속, 탁 트인 내일이 내 안으로 들어온 듯 시원했고 당당했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메타세콰이아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약 1억 년 전,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에도 메타세콰이아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1941년 중국 쓰촨성에서 다시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발견은 단순한 식물학적 의미를 넘어, 인류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숲은 이 우람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 존재 자체가 압도적이다.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을 손끝으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거친 수피가 손끝에 닿자, 그 질감 속에서 자연의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반들반들 깎은 듯이 잘 생긴 손자 우주는 하늘 높이 솟아 오른 메타세콰이아의 엄청나게 큰 키를 보며 "키가 컸지요"를 연발했다. 아마도 2주 사이에 자신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메타세콰이아를 통해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메타세콰이아의 줄기는 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어,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처럼 보였다. 이 나무들은 그렇게 하늘과 땅을 이었고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웅대한 나무의 잎사귀들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깨끗한 산소를 내뿜는다. 메타세콰이아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간 도심에서 찌든 몸과 마음이 잘 풀리는 집의 휴지처럼 풀리며 치유되는 듯했다. 이 나무들이 지닌 수많은 전설과 자연의 이야기 그리고 치유의 그 거대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숲을 걷다가 문득 발아래 느껴지는 진흙의 물컹하고 푹신하고 질척하며 뻑뻑한 촉감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진흙이 다양한 형태로 내 발바닥을 감싸며 말없이 나를 자연으로 이끌고 있었다. 우주도 진흙 위를 걷는 것을 즐겼다. 아마도 이 진흙이 단순한 흙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나 보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쌓여온 낙엽들과 뿌리, 그리고 대자연이 빚어낸 고요한 시간의 흔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 진흙을 밟으며, 메타세콰이아가 수천 년을 견디며 살아온 방식,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생태계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견디고 있는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메타세콰이아의 끝없이 뻗은 가지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았다. 그 하늘은 마치 우주와 연결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주와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된 듯한 기분에 휩싸여 내가 웅장해 짐을 느꼈다. 그 우주의 작은 우주인 나, 내가 튼실한 두 다리로 이 땅을 지탱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은 그 뿌리로 땅을 지탱하고, 가지로 하늘을 향해 뻗어가며,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이 우주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메타세콰이아 숲에서의 하루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서의 내가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메타세콰이아는 단순한 나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연의 생명력과 인내, 그리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는 존재의 튼실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그곳에 나도 누렁이도 우주도 함께 있었다. 숲을 나서며 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지 이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지닌 고유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나빠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누렁이가 컨테이너집을 지키듯 나도 지키고 싶은 하나의 추억을 메타세콰이아와 손주 우주와 함께 만들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뼘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