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월의 무게만큼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반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어릴 땐 쉬이 넘겼던 일들이 이제는 번거롭게 느껴지고, 손 하나 더 빌리고 싶을 때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두 갈래 길에 서게 된다. 스스로 해결하려 애를 쓰거나, 아니면 차라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나는 온종일 핸드폰과 함께 생활을 한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화하는 현실을 따라가기에는 나의 인지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종종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부탁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어제는 밤을 새우며 중고거래 플랫폼에 광고를 올렸다. 그러나 빨간 글씨로 광고 거절 문구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야 밤새 고군분투한 노력이 허사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마케팅 광고업자에게 맡길까 고민했으나, 스스로 해보겠다는 고집으로 혼자 처리하려 했던 것이다.
이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 그 부탁이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요구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상대와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부탁이라는 행위가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호의라는 것이 생각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한 일이 상대에게는 부담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모두가 자기 삶에 바쁘고, 고유한 시간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도움이라면 차라리 그 일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이는 단지 효율의 문제를 넘어,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관계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부탁이라는 것은 묘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야”라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면 작은 부탁도 큰 짐으로 변하는 것이다. 예컨대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어차피 시간 날 텐데”라며 가볍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소한 태도가 관계를 서서히 갉아먹기도 하는 것이다.
"살면서 관계라는 것은 잘 구워진 빵의 반죽과 같다."손으로 반죽을 많이 잡거나 적게 잡거나 둘 중 하나가 판이한 결과를 만든다. 부탁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 파문이 가벼운 공감으로 흩어지느냐, 아니면 깊은 불편함으로 가라앉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에는 사려 깊은 자세가 필요하다. 어제 친구가 전화가 왔다. 무례한 부탁을 받고 당황해하는 지인의 사례를 얘기하며 우린 스스로를 경계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전문가에게 적절히 의뢰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이는 단지 문제 해결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를 지켜주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도움을 청하면서도 상대에게 무리한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배려는 결국 서로 간의 신뢰를 쌓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제 몫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명제는 삶의 공통된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할 수 없는 것과 타인에게 부탁해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삶은 이 구분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도움을 청하면서도 그 무게를 헤아릴 줄 아는 태도가 진정한 성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