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선의로 시작한 말이 오히려 상처를 남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이 조언이 아니라 참견이었다는 사실을.
오늘도 나는 참견을 참아내려 애쓰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에 귀가 쏠렸다. “내가 참견을 너무 했나 봐. 편의점 네 개를 운영하는 아들이 요즘 나를 피하는 것 같아.” 언니의 푸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을 떠올렸다. 혹시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30대 중반이었던 나를 돌아본다. 공부방을 운영하며 세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 나는 하루 48시간도 부족했다. 아이들에게 성적을 올려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매일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본 친정엄마는 늘 한마디 던지셨다. “집 좀 부지런히 치워라.” 엄마의 말이 내 귀에는 칼처럼 꽂혔다.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에도, 엄마의 지적은 마치 내 노력을 전부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편의점 네 곳과 온라인 스토어까지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는 언니의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한 경험이 다 맞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기준 삼아 아이들에게 참견 아닌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 건 아닐까?
아이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왜 잊었을까? 어쩌면 내 조언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간섭이었고, 그들의 성장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씨앗에는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싹트고 자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제야 이 말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