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쯤이었다. 매장을 정리하며 폐점을 준비하던 나는 온갖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직원은 발바닥 뼈에 금이 갔다며 출근하지 않았고,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알바들과 매장을 간신히 굴려가던 그 시절은 한 마디로 버티기의 연속이었다.
내 몸도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코와 입가 주변의 물집은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그때도 스테로이드 연고를 극소량 바르는 임시방편으로 간신히 증상을 억누르며 일상을 버텼다.
6월 말, 결국 매장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그간 쌓여 있던 피로를 풀겠다는 일념 하나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매일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잊고 지냈던 나만의 시간을 되찾았다. 하지만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은 내 몸에 상처로 남았다. 코가에 생긴 물집이 점차 번지더니, 오른쪽 콧방울은 붉게 부풀어 올라 딸기코처럼 변해갔다.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마주하니 한때 주변 사람들에게 피부가 좋다며 칭찬받던 내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단정함은커녕 무심했던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얼굴에 새긴 채 서 있었다.
이따금 손자 우주와 놀이터에 나갈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물었다.
“그 아이는 누구예요?”
“손자입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놀라곤 했다.
“늦둥이 아긴 줄 알았어요.”
그 말은 순간적인 기쁨을 주었지만, 거울 속 나를 마주할 때마다 씁쓸함이 찾아왔다. 내가 방치했던 몸과 마음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났다. 초라해진 내 모습은 그저 외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단정했던 삶의 태도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고즈넉한 한옥처럼 단정하고 고결한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품격을 지키는 한옥처럼,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코에 난 물집에 약을 정성스레 발랐다. 피부에 영양 크림을 꼼꼼히 펴 바르며 나 자신에게 다시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내게 시간을 들이자, 피부는 그 정성을 알아보기라도 하듯 조금씩 나아졌다.
어느 날, 거울 속 내 얼굴이 예전의 단정한 윤기를 되찾은 것을 발견했다. 콤팩트로 피부를 정리하고 립스틱을 바르며, 귀걸이로 포인트를 준 채 문 밖을 나섰다.
봄날처럼 생기 있는 내 모습을 되찾은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몸가짐과 차림새는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을. 단정한 옷차림과 고운 마음은 나를 지키는 힘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우주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었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손자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일생 동안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하자.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나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