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당신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더라고.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뜻이라더라. 그러고는 덧붙였습니다. 오규원의 시 <프란츠 카프카>에서처럼 시를 공부하겠다는 건 미친 생각이냐고.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나에게도 시를 쓰는 일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라하가 카프카고 카프카가 프라하이다."
오늘 프라하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녘 창문에 한바탕 부딪히던 빗방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나가본 비가 덜 갠 프라하는 맑았던 어제와 다르게 음산했습니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어린 시절 학교에 갈 때마다 이 구시가지 거리를 걸었다고 합니다. 딱딱한 돌바닥을 밟으며 온갖 이야기들을 상상했겠지요.
당신은 나에게 문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동경하다 문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며 학교에 다니고 글을 쓰던 당신. 나에게 글은 턱걸이와도 같아서 하루에 하나씩 꼭 써야 한다고, 안그러면 해낼 수 있는 갯수가 줄어든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나요.
그러던 당신이 어쩔 수 없이 야간 일을 시작한 이후로 당신은 한낮에도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나는 그런 당신을 봅니다.
<달과 6펜스>를 감명깊게 읽었다는 나의 말에 너는 달이야 6펜스야,라고 묻던 당신. 아마도 달이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런데 현실이 과연 6펜스밖에 안 될까?"라고 반문하던 당신. 그 말에 서린 무언가를 나는 보았습니다.
헤어지기 전날 더 이상 글이 읽히지도 써지지도 않는다고 말했던 당신. 다행히도 당신은 요즘 다시 펜을 드는 것 같습니다. 눈물이 많은 나에게 울면 지는 거라고 꿋꿋이 살라고 말하던 당신. 그건 늘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지만 당신이 떠나기 전날에는 왠지 정말로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꽤 이름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던 카프카는 변호사와 문학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리고 끝끝내 문학을 택했습니다. 당신도 글이 좋아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버렸었지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다."라고 말하는 카프카에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카프카처럼 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카프카를 닮아서는 안 됩니다. 우중충하고 추운 방에서 결핵에 걸려 각혈을 하고 숨을 거둔 비운의 예술가를요.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베풀기를 좋아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신이 있다면 당신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어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한결같기가 가장 어려운 세계에서 늘 꾸준한 것은 외로움뿐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어 하지 못한 말이 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시를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마저 잃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마도 우리는 꿋꿋이 살아갈 것입니다.
카프카는 황금소로의 집에서 첫 연인 펠리체에게 편지를 씁니다. "방 안에 단 혼자 있다는 것은 삶의 전제조건인 것 같습니다. 혼자 집 안에 있다는 것은 - 엄밀히 말하자면 때때로 혼자 있는 것이지만 - 행복의 전제조건인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실존주의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 인간 존재의 불안을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합니다. 야간버스 차창처럼 흔들리는 우리들. 내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야간버스 안에서 오늘밤 죽을지도 모른다고 온갖 두려운 상상들을 했던 것처럼, 인간은 삶의 유한성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혼자서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일생 동안 프라하를 벗어나지 못했던 카프카는 미로 같은 프라하의 골목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도시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세계는 무언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마치 내가 처음 빠지게 된 문학과 당신이 이미 알고 있던 문학 사이의 거리처럼요.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보겠습니다. 슬픔을 외로움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눈으로 아름답게 박제하겠습니다.
"청년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라고 카프카가 말하지 않았나요. 영원히 어른이 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