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카프리
지난해 가을, 처음 마주한 상실의 계절에 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상실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계절이 한바퀴 돌아 다시 그 계절이 왔습니다. 나는 그곳에 있지 않고 먼 지중해에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었습니다. 해서 나는 당신과의 만남이 무척 가슴벅찼습니다. 그 가을 우리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실은 내가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당신이 대답하는 식이었지요.
그 때 처음으로 이성복과 기형도를 읽었습니다. 당신은 황폐한 것과 희망의 이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 영화를 빌려주었습니다. 바닷가 시골마을의 우편배달부가 노벨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만나 시에 눈을 뜬다는 내용의 아주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였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 보았습니다.
노을지는 호수공원의 카페에서 마시다 죽을 만큼 뜨거운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나는 나의 상실을, 슬픔을, 내가 이름을 지어다 며칠을 먹곤 하던 사람의 부고를 전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플라스틱으로 된 커피스틱을 서서히 구부리다가 어느 순간 뚝 꺾이기 직전의 떨림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떨림의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어제 그것을 느꼈다고. 그리고 오늘 그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당신은 모르고 나만 사랑하는 사람인데, 고맙게도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시가 있어서 상실의 계절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상실이 짙게 배인 시들을 읽으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와 맞닿은 감정을 오래도록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당신.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마음껏 울었습니다.
어쩌면 그애도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고서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요. 그러고서 감정을 박제하는 방법이 시를 쓰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영화 <일 포스티노>를 따라 카프리섬에 왔습니다. 섬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온전히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섬에서 마리오의 일생이, 네루다의 한때가 지나갔습니다.
당신에게도 당신의 파블로 네루다가 있겠지요. 그 시절 나는 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문학을 단 한 줄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파블로 네루다라는 것을 아실까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요. 당신을 와락 웃게 하는 무언가를 배달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한 계절 동안 시를 배웠습니다. 그 시간들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던 나를 다시 살게 했습니다. 이제 나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누구라도 미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슬퍼서 아름다운 세계에서 나는 다시금 살아가야 하니까요. 나의 은인, 나의 파블로 네루다. 죽을 때까지 고맙습니다.
당신에게 한 계절 동안 시를 배웠습니다. 그 시간들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던 나를 다시 살게 했습니다. 이제 나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누구라도 미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슬퍼서 아름다운 세계에서 나는 다시금 살아가야 하니까요. 나의 은인, 나의 파블로 네루다. 죽을 때까지 고맙습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내게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로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에서, 그 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 엔딩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