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시학』
모방으로서의 예술의 진리인식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추방론'을 주장한다. 시의 모방은 진리와 무관하며, 시인은 시민을 현혹시켜 이성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에 대해서 플라톤이 "모든 것에는 본질인 이데아가 존재하므로,이데아를 모방한그림자를 모방한 (이중 모방) 예술작품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입장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자체가 본질"이라는 입장이다. 사람은 현실(본질)에 대한 모방을 통해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방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예술의 진리인식과 형식에 대하여, 그리고 모방으로서의 예술의 본질과 형식에 대하여 논한다.
리얼리즘의 시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개인의윤리학을 (인간은 사회적 존재), <정치학>이 공동체의 정치학 (인간은 정치적 동물)을 다루었다면, <시학>은 미학에 대한 탐구이다. 문학은 현실의 재현이다. 그런데 문학이 인물의 전부를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부 행동만 보여준다. 특히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이다. 아리스토텔레서의 루카치는 리얼리즘의 세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립했다. 첫째, 현실의 정확한 재현이다.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고, 그것을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 현실의 속성이다. 정적일 수도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셋째, 현실의 필연성이다. 모방의 대상 안에서 변화의 필연성의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 현실을 기억하다
오늘, 우리가 놓여 있는 ‘기억의 자리’는 어디일까.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 연극 <삼풍백화점>
연극 <삼풍백화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기억의 자리’를 무대화함으로써 사고에 접근하는 과정과 기억을 현재화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많은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한 애달픈 죽음이 있다. 잊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슴 속 깊이 새겨진 기억이지만, 대부분은 쉽게 잊고 만다. ‘기억’한다는 것은 ‘망각’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있어야 할 존재’들이 사라진 기억과 망각의 자리에서 우리의 책임과 몫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어느 자리에 놓여 있는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묻는다.”
연극 <삼풍백화점>은 연극 동인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막을 올렸다. 원작인 정이현의 단편 <삼풍백화점>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이 소설은 ‘502명의 사망자’ 중 한 사람이었던 ‘나’의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로 인한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의 이슈로 잠깐 앓고 지나갈 뻔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짐으로써 그 비극성이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었다.
문학, 현실을 통찰하다
문학은 실제 사건을 다루는 일이 잦다. 작가회의 성명서는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 중요한 역사적 장면들에는 문학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과 문학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 현실(fact)을 대하는 문학(fiction)의 힘은 여기에 있다. 비록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라 할지라도, 사건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개인의 감정(고통과 슬픔)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주구장창 사실(fact)을 말하는 것보다 문제의식을 더 각성시킨다.
나는 이것을 “‘6.25로 인해 이산가족 70만 명이 발생했다’는 통계보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한 편 읽는 것이 더 동족상잔의 비극을 느껴지게 한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문학은 6.26 전쟁,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사건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낳은 어마어마한 인명피해 안에서 희생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독자가 인물에 감정이입하게 하여 사건을 기억하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이 기억,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사건에 대한 기억과 슬픈 감정들은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이 진실이 될 수 있다
플라톤은 시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거짓이고 추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시가 모방이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여긴다. <시학>에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더 심각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데 반해 역사는 특수한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인 반면, 문학은 실제로 있음직한 보편성 있는 이야기를, 필연성을 가미하여 마치 현실처럼 꾸며 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깊은 통찰이 빚어낸 결과이다. 때로는 사실이 아닌 것(문학)이 더 진실한 진실이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식 잃은 부모들의 처절한 마지막 투쟁은 그것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그들이 ‘교통사고’ 피해자에 불과함에도 정부에 도를 넘어선 요구를 한다며 언론을 호도했다. 광장에 모인 유가족들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며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자신의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문학은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바라보는 시선을 우리에게 주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돕는다.
물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 그러면 사건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지식은 존중되어야 하고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이 이성의 힘은 문학과 예술이 만들어내는 ‘감성적 지지’가 뒷받침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재수사되고, 기존의 솜방망이 처벌이 강화되었던 것처럼.
문학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문학, 현실을 증언하다
문화계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건을 기억하고자 했던 문화예술계의 많은 움직임들로 하여금 블랙리스트의 번호는 나날이 늘어갔다. <혜화동 1번지>도 어김없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현 정권에 반(反)하는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탄압하는 이 비밀문서는 앞서 말한 문학과 현실에 대한 전부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문학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문학도 없다.
- 작가회의 성명서
도종환 시인은 “권력의 불의와 이웃의 비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펜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현실에 대해 예술로써 말하는 일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욕구이다. 카프 해체 이후 목적이 분명한 문학은 빛을 잃었다. 예술은 그 무엇의 수단도 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수단의 목적을 띄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는 것은 작가와 독자들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