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서점에서 책 사는 기분

by 이수


당신에게 책이 한 권 필요해졌다고 치자. 대학 과제로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든지, 친구 생일 선물로 책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든지, 아니면 문득 책 한 권이 읽고 싶어졌다든지. 이런 상황에 책을 사기 위한 장소로 교보문고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 독립 서점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 나라면 고민 없이 독립 서점을 고른다. 나는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독립 서점을 자주 찾는다. 서점 다니는 취미에 도움이 된 건 네이버 지도 앱의 '장소 저장' 기능이다. 빨간색, 초록색, 분홍색 별로 지도 위의 특정 장소를 콕콕 표시할 수 있다. 그럼 어디서든 지도 앱을 켜서 내가 저장해둔 서점이 근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서점에 다닌 지 5년 정도 흐른 지금, 내 계정으로 지도 앱을 켜면 온통 빨간색 별 천지다. 빨간색 별은 내가 저장해둔 독립 서점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내용으로 대충 짐작이 갈 거다. 나에게 책방(독립 서점을 편의상 책방이라고 부르겠다)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휴식하기 위해 책방에 가고,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가고, 교류하기 위해 간다. 그 외에도 목적은 다양하다. 현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가고, 영감을 받기 위해 가고, 기분 전환을 위해 가기도 한다.


책방 하나 방문하는데 뭐 그리 목적이 많고 의미가 다양하냐고? 실제로 책방은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적합하고, 다양한 의미를 줄만큼 풍부한 공간이니까. 우선 책방이란 공간은 휴식에 적합하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며,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구경할 만한 거리가 많다. 책들 사이를 누비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정화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거 아나? 기분 좋을 때는 영감도 더 잘 떠오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에 책이 참 많다. 6평 원룸에 살면서 소장한 책이 300권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책을 살 필요가 있었나, 스스로도 고민이 될 때가 있다. 그래도 책을 계속 사 모으는 이유는 짜릿할 만큼 재밌는 게 책 쇼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책방에서 하는 책 쇼핑이 제일 재밌다. 인터넷 서점처럼 할인을 받을 수는 없지만, 10% 할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독립서점 책 쇼핑이다.


우선 책방에서는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보통 나는 책방 주인에게 책 추천을 받는다. 열심히 추천을 하면서 어느새 싱글벙글에 가까울 정도로 웃는 책방 주인들. 책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즐겁다. 나도 한두 마디 얹게 되고, 그렇게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책 얘기가 시작된다. 재잘재잘.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아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그래도 그 순간은 얼마나 귀엽고 즐거운지.


요즘 '민음사 TV', '겨울 서점', '쩜' 같은 인기 있는 책 유튜브 채널을 꽤 볼 수 있다. 그들의 채널에 빠지지 않는 것이 서재 구경 콘텐츠다. 나는 그 콘텐츠가 올라오면 꼭 본다. 아, 남의 집 서재 구경은 얼마나 재밌는지. 이 책은 이래서 샀고, 저 책은 저래서 샀고. 그 책은 읽어봤는데 아쉬웠고, 저 책은 너무너무 재밌어서 이마를 탁 쳤다는 둥. 이 작가의 책들은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같은 책 이야기를 잔뜩 들을 수 있는 게 서재 구경이다. 독립 서점을 둘러보는 건 큰 규모의 서재 구경과 비슷하다. 책방 주인의 취향, 가치관, 마케팅 전략 등이 버무려진 고차원적인 서재랄까. 그 서재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구경하는 책방 주인의 의도를 추측해 보고 감탄하고 궁금해하는 시간은 그만의 특유한 재미가 있다.


또 하나의 재미는 책을 구매할 때 느낄 수 있다. 책방 주인의 거대한 서재 구경이 끝났으면,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세 권, 네 권일 때도 많지만) 골라서 값을 지불하고 집에 데려간다. 책 구매, 이게 서재 구경의 화룡점정이다. 흥미로운 전시를 관람하고 굿즈를 사서 집에 돌아갈 때와 비슷한 기분. 책방 구경의 여운이 집에 돌아가서도 이어질 것 같다. 책을 구매하면 독립 서점마다 책 포장을 다르게 해준다. 책에 직접 만든 책갈피를 끼워주는 곳들도 많고, 초콜릿을 한 개 같이 주거나, 꽃 한 송이를 함께 주는 경우도 봤다. 장미 향 페이퍼 인센스를 책에 끼워준 곳도 있었다. 책방마다 색다른 책 포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독립서점만의 특징이다.


그리고 독립 서점에는 책이 너무 많지 않아 좋다. 책방의 모든 서가를 대부분 1시간 안에 다 훑어볼 수 있다. 어떤 장르의 책들을 취급하고 있는지, 어떻게 배치했는지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대형서점에 갈 때면 나는 이곳의 전부를 둘러보기는 어려울 거란 사실에 공간에 대한 흥미가 짜게 식곤 한다.


마지막으로 독립 서점에는 손님이 없어서 좋다.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대부분 독립 서점은 손님이 적다. 방문할 때 나 홀로 책방을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그토록 좋은 공간을 나 혼자 향유할 수 있다니. 책방을 구경하고, 책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과정을 오롯이, 조용히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대형 서점보다 독립 서점에서 책을 산다. 예쁘게 포장된 책을 가지고 집으로 향할 때마다 만족감에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집~ 가서~ 뜯어봐야지~' 노랫말은 이런 내용이다. 내가 20대에 독립 서점에서 책 사는 기분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인생에 걸쳐 누릴 확실한 행복 하나를 알게 된 거니까. 이 행복을 종종 누리며 내 지도 앱은 앞으로도 더 촘촘한 빨간색 별 천지가 될 예정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힘들다'고 표현하는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