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조금 힘에 부쳤어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건 아래와 같은 대목이었습니다.
'OECD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40명씩 자살한다.
입시 지옥 속에서 학생들은 자살하고, 정리해고와 가계부채로 4,50대는 자살하며,
극빈과 고독 속에서 노인들은 자살한다.
처음 한 명의 죽음은 '자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부터는 '타살'이고,
수백 수천 번째가 되면 '학살'이다.'
이 문장을 읽고 누군가가 생각이 났고, 그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랐고,
마지막으로 그 고통을 모른 척한 저에 대한.. 글쎄요. 이 감정이 무엇일까요.
거부감. 혐오감. 싫음. 그런 걸 느꼈습니다.
이 정도의 반성과 성찰이 저의 그릇에는 아직 버거운가 봐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집어 들어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할 정도로
좋게 읽고 있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완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은 되어가는 것 같네요.
제가 종종 '힘들다'고 말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이 그랬고, 정희진 작가의 책이 그랬어요.
모두 저에게 '고통'을 주는 작품입니다.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고, 반성하고, 기분이 가라앉게 합니다.
몇 년전까지는 솔직히 이런 작품들을 피했어요. 힘든 게 싫었습니다. 버거웠습니다.
제가 '힘들다'고 표현한, 그 작품들에는 제가 회피하고 싶은 누군가의 고통, 나도 피할 수 없이 언젠가 목도하거나 겪게 될 고통이 포함되어 있고, 저는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마치 회피하면 나는 그런 일을 겪게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저의 나약함 때문에 저는 그 작품들을 '힘들다'고 간단하게 표현해버리고 회피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가 예의 그 작품들을 읽으며 '힘들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는데요.
뭐,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정리하면 내가 겪게 될 고통이 두려워서, 겪고 싶지 않아서,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