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 Jun 19. 2023

며느리는 참 어렵다

어머님이 늦은 점심을 드시러 오셨다.

어머님이 속상해하시며 집으로 가신 것이 어제 오후다. 어머님이 가시고 남편과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말을 나누었다.

나는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말없이 그냥 잤다. 물론 잠이 잘 오지 않았지만 모른 척 자려고 노력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유독 어머님과의 일은 예민했다.      


어제 어머님이 머위나물이며 비름나물을 만들어 오셨다. 나물 반찬은 나뿐만 아니라 아들들도 잘 먹는 반찬이다.      

반찬을 꺼내 놓으시며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물어보셨다.


“너는 내가 반찬 만들어 오는 것이 너도 싫으니? 딸 가진 친구들이 다들 며느리들이 힘들어하니 반찬 만들어 가지 말라고 했다, 귀찮아하니 가지 말라고 했어. 너도 그런 거니?”


그 말을 듣고 바로 아니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어머님의 질문과 어머님이 원하는 정해져 있는 답을 대답하기가 순간 너무 싫었다. 매번 정해진 답을 원하시며 질문하는 어머님이 순간 짜증이 났다.


지난번에는 “다른 며느리 다 그래도 우리 며느리는 아니라고 했어, 너는 안 그렇지?”라고 물어보셨다. 이때도 내가 “저도 그래요” 했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졌을 것이다. 매번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시는 어머님의 의도가 너무 의심이 간다.   

  

어머님은 결혼 초부터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편하게 여길 터이니 너도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 꼭 해라 ”

순진한 나는 그걸 진짜로 알아듣고 몇 번 솔직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결과는 어머님이 우시거나 분위기 어색해지거나였다.

이런 경험이 있어 나는 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듣고만 있다.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니 말이다. 시댁 식구들과는 말을 많이 석지 않게 되었다.     


어제도 어머님의 정해져 있는 답을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그러고 싶지 않았다. 2분 후에야 “맛있어요. 어머님 제 눈치 보지 마시고 어머님 마음 편한 것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어머님과 남편은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시작했고 어머님은 별말씀 않으시고 집으로 가셨다. 남편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냐며 엄청 화를 냈고 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것이다.     


어제 어머님이 반찬을 만들어 오신 것은 갑자기 오신 것이었다. 본래 오늘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계획이 되어있었다. 내가 코로나로 인해 2주 이상을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었는데 어머님은 나와 상의도 없이 우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며 고기를 보내셨다. 내 몸이 아픈데 우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어머님이 반찬도 만들어 오시지만 집에서 매번 차려야 되는 그것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2주 전에도 고기를 우리 집에서 어머님과 구워 먹었다.      


어제 그렇게 어색하게 가시고 어머님이 늦은 점심에 3시는 되어서 오셨다. 고기를 어색하게 구워 먹었다. 고기를 열심히 굽는 남편에게는 쌈을 세 번 싸주었다. 어머님께는 싸드리지 않았다. 눈치 없는 남편이 계속 어머님께 싸드리라고 말을 한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큰아들이 어머님께 쌈을 싸드린다. 눈치 있는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고기를 구워 먹고 남편이 말한다.     

“두 분이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자리를 빌려서 이야기해보세요”     


어머님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을 하신다.

“나는 네가 점점 어렵다. 너희 벌써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가면 갈수록 나는 왜 며느리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집 며느리가 너무 부럽다. 싹싹한 며느리 말이다.”

“왜 네가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뭐 너에게 잘못한 거 있니? 있으면 이야기해봐라.”


또 나의 속내를 비치면 어머님이 당황하시고 울 수도 있다.     

어머님이 이렇게 나오시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님 저는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어머님뿐 아니라 저의 남편도 참 어려워요. 이 집에서 편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매번 제가 저의 속내를 드러내면 다들 분위기가 어색해지잖아요. 그래서 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이 더 편해요”


“네가 예전에는 말도 잘하고 친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도 잘 안 하고 친절하지도 않고 그래서 이상했다.”


“어머님 어제도 어머님이 원하시는 정답이 있는 그런 문제를 물어보시잖아요. 저는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매번 그런 질문을 하시고 제가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당황하시잖아요. 저는 친구들이 다른 며느리들이 그렇다고 들었어! 그러면 우리 며느리도 그렇겠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그런 질문은 하지 않겠어요”


“그래 너 오늘은 속상한 것 다 이야기해 봐라.”


“어머님 저는 제가 제 속내를 말하면 남편과 매번 싸워요. 제가 불편한 것도 어머님께는 말하지 말고 참으라고 말하는데 어머님은 매번 이야기 하라고 하시고 이야기하면 너무 어색해지고 말이에요”


“나는 그런 적 없다. 뭘 가지고 그러니”


“지난번에 발을 밟으셔서 제가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어머님은 놀라시고 당황하시며 그런 적이 없다고 눈물까지 흘리셨어요. 3일을 계속 우셨잖아요. 제가 어떻게 저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겠어요”


어머님은 "발을 내가 밟은 적이 있구나! 그때는 나도 밟는 줄도 몰랐어!"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이 그러실 때마다 순간 정적이 10초 정도 있었고 사과도 하신 적이 없었다. 남편과 아들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발을 밟힌 적이 없었고 나의 행동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시는 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아주 큰 상처가 되었었다. 이런 사건을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시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가며 사건을 끝냈었다.      

오늘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며 계속 우신다. 우시며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것인지 너무 이 상황이 싫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머님과 있으면 저는 항상 긴장해야 해요. 제가 말실수를 할까 봐요. 그래서 말을 아끼고 있어요.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세요”


“나는 네가 말을 아끼지 않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 편하게 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계속 우신다. 남편은 기분이 벌써 상해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결국 어머님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하셨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고 나의 남편도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잘 지내보자고 하셨다.      

나도 나의 속내를 이야기하니 속이 시원해졌고 오늘보다는 앞으로가 더 편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는 다른 남의 아들들과 남의 며느리들과 비교를 하지 않으셨음 좋겠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속이 편해지니 어머님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내려드릴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게 차를 마시고 어머님은 웃으시면서 집으로 가셨다.     

남편은 눈을 동그랗고 뜨고 “불편한 남편과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하고 묻는다.

“솔직하게 말하라 하셔서 이런 면에서는 불편하다고 말한 거였어” 하며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우리의 불편함은 오늘로 끝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짜 50세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