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셨지요. 주말 밤부터 남편은 저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눈치는 보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합니다.
"마누라. 부탁이 있어"
저는 대답은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합니다.
"들어줄 거지?"
저는 쳐다만 봅니다.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먼저 해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저라면 먼저 전화하라고 말 못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
'효자라서 저러나 보다' 하고 넘깁니다.
월요일 퇴근해서도 남편은
"내 부탁 알지?"
화요일 아침에도 남편은
"내 부탁 알지?"
남편의 애끓는 효심을 뭐라 할 수도 없지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남편이 참 부럽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화요일 퇴근하는데 친구가 전화를 합니다.
"친구야, 주말에 우리 어머님과 한 건 했어. 우리 어머님 말이야..."
친구가 말합니다.
" 이 답답아 왜 그러고 사니. 여태껏 어떻게 그러고 살았어 "
"나에게 한수 배워야겠네"
"내가 어제 있었던 일 말해줄게. 어제 집에 왔더니 우리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거야. 날이 더우니 나는 선풍기 틀었다. 너도 더우니 선풍기 틀어라.
내가 뭐라 했는 줄 알아?"
"어머님, 날이 더운데 무슨 선풍기를 틀어요. 저는 에어컨 틀 거예요. 어머님이나 선풍기 트세요"
친구는 작년부터 시골에 쓰러져가는 한옥을 사서 리모델링했습니다. 안채는 친구가 살림을 하고 앞집에는 80대 어머님이 살림을 하십니다. 따로 똑같이 살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는 아침잠을 곤히 자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창문을 두드리십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냐?"
친구는 체험학습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 밭일이며 논일이며 일이 많습니다. 밤늦게야 잠들었는데 일찍 일어나시는 시어머님이 일어나라고 깨우신 거였죠.
"어머님 저는 돈 벌어오느라 늦게 집에 왔어요. 이러시면 어머님 아주 미워할 거예요"
어머님도 지지 않으십니다.
"미워해라. 나는 그래도 두드린다. 일어나라"
친구의 시어머님도 제 친구도 절대 말로는 지지 않지만 음식도 나누어 먹는 좋은 사이입니다.
화요일 남편이 일찍 퇴근을 한다고 했습니다. 퇴근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 어디야?"
"지금 엄마한테 가고 있어. 엄마가 간장게장이며 여러 가지 가지러 오래"
"응 알았어. 잘 다녀와요"
남편이 시댁에 도착하고도 남은 시간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남편이 어머님께 먼저 전화하기를 부탁했으니 제가 져주는 척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님과 계속 어색할 수는 없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 저예요"
"네가 먼저 전화를 해줘서 고맙다"
저는 듣고만 있었지요. 어머님이 신이 나셔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며느리 전화 잘했네. 내가 그동안 심한 말 했던 거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머님'
"그렇잖아도 맛있는 간장게장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이 많았어. 너의 남편한테 가지러 오라고 해서 지금 여기 있어"
남편이 시댁에 간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척했다.
"그래요. 잘됬네요"
"지금 빨리 보낼 테니 저녁 이걸로 맛있게 먹어"
"네 어머님"
시댁에 다녀온 남편은 두 손으로도 부족하게 이것저것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어머님이 많이도 싸주셨지요.
"마누라 정말 고마워. 내가 더 잘할게"
"똑바로 해~~"
남편이 전화하는 것을 너무 바랐기에 모른 척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 기분 더 좋으라고 일부러 시댁에 도착했을 때 말입니다. 어머님과 기분 좋게 통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활짝 웃고 들어오는 남편 얼굴을 보니 아직도 제가 남편을 사랑하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의 주말 동안의 어색함은 사라진 것 같은데 또 사건은 일어나겠지요. 우리의 인생이 그렇겠지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하고, 또 일어나고 해결하고 말입니다. 사건을 해결해 나갈 때마다 제가 조금 더 지혜로워지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