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 큰아들이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습니다. 얼굴이 온통 땀 범벅입니다.
"아들 밖이 더워? 땀을 왜 그렇게 많이 흘렸어?"
"엄마, 저 뛰어왔어요"
"날도 더운데 왜 뛰어?"
저녁이라지만 요사이 폭염으로 온 나라가 찜통인데 뛰어왔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다 병난다. 걸어 다녀"
"엄마 사실은요. 저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머리를 한대 맞은듯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아들도 놀랍습니다.
"왜?"
한 달 만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들떠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같은 학교 친구입니다. 고1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고3인 지금도 잘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을 먹었는데 그 친구가 말할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카페에 갔는데 분위기 잡더니 헤어지자고 말해서 저도 알았어 하고 왔어요"
뭐지? 그게 다인가? 너무 간단한데...
아들은 너무 놀랐고 속상해서 이 더위에 뛰어온 것입니다.
고등학생의 이별은 저렇게 하는 것인가?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고 아들은 바로 "알았어" 하고 뛰어왔다니 이게 뭔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 친구와 벌써 1년하고도 8개월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큰아들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뛰어와서는 세수도 안 하고 독서실로 가 벼렸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공부하러 간다고 갔습니다. 이 와중에 공부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들을 독서실로 보내고 남편과 이야기해 봅니다. 이별은 아들이 했는데 남편이 수상합니다.
"그 여자 친구가 뭘 모르네. 우리 아들을 왜 찾지?" 남편은 자신이 차인 것처럼 눈물이 글썽입니다.
"더운 여름 공부하느라 힘든데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걱정이네"
사실 저는 불안함 마음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작년 겨울방학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독서실에서 집에 밥 먹으러 올 때만 전화를 확인합니다. 저도 연락할 일이 있어도 연락을 할 수가 없어 불편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도 연락이 잘 안돼 독서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고3이지만 연애를 하는 친구의 마음도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 안에서는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을 끼고 사는데 저희 아들은 카톡도 지워버렸습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 멋진 아들이었습니다. 여자친구와도 의논이 됐는지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여자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연락도 안 되는 친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이 저도 듭니다. 고3이지만 사귀는 사이에서 연락은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요.
아들은 다음날 점심을 먹기 전에도 베란다에서 하늘을 보며 울었습니다. 어제는 심각해 보이지 않았는데 점심밥도 반밖에 먹지 않고 독서실로 가버렸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걱정입니다. 저녁을 먹으로 온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들 엄마 생각엔 네가 너무 성급했던 거 같아.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에는 이유가 있잖아. 왜 그러는지 한번 물어봤어야지. 여자 친구도 네가 물어보길 원하지 않았을까?"
"엄마 제가 너무 당황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왜 바로 뛰어왔는지..."
"아들 이렇게 며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도 있어. 사람 인연은 모르는 거거든"
"엄마 생각해 봤는데요. 저 수능 끝나고 전화해 보려고요. 지금은 그냥 헤어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
오늘은 너무 힘들게 여름을 보내는 아들을 데리고 한약을 지으러 다녀왔습니다.
"엄마 저 헤어진 게 다행이에요"
"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이유가 생겼어요"
"왜?"
"생각해 봤는데 수능 끝나고 연락하려면 제가 시험을 잘 봐야 전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험도 엉망이고 그러면 어떻게 전화를 하겠어요!"
생각해 보니 헤어진 남자친구가 수능도 엉망으로 보고 대학도 떨어져서 전화하면 끔찍할 것 같습니다. 있었던 정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당당하게 멋진 모습으로 전화해야 다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엄마 그래서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난 거예요"
오늘 토요일인데 아들은 7시도 안돼서 일어났습니다. 줄넘기를 손에 들고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한의원 가는 10시까지 독서실에 다녀왔습니다. 지난주와 다른 토요일 아침이라 좀 놀랐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라면 위기인데 잘 헤쳐나가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아들이 대견스럽습니다.
'아들, 엄마는 널 믿어.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