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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Oct 13. 2023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 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도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깊은 숲 속에서는 숨 또한 깊어져서 들숨은 몸속의 먼 오지에까지 스며드는데, 숲이 숨 속으로 빨려 들어올 때 나는 숲과 숨은 같은 어원을 가진 글자라는 행복한 몽상을 방치해 둔다. 내 몽상 속에서 숲은 대지 위로 펼쳐놓은 숨의 바다이고 숨이 닿는 자리마다 숲은 일어선다.

'숲'의 피읖 받침은 외향성이고, '숨'의 미음 받침은 내향성이다. 그래서 숲은 우거져서 펼쳐지고 숨은 몸 안으로 스미는데 숨이 숲을 빨아당길 때 나무의 숨과 사람의 숨은 포개진다. 몸속이 숲이고 숲이 숨인 것이어서 '숲'과 '숨'은 동일한 발생 근거를 갖는다는 나의 몸상은 어학적으로는 어떨는지 몰라도 인체생리학적으로는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글이다. 작가는 숲을 편애한다고 말한다. 편애란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숲에 기울어져 사랑하는 것이다. '숲'은 '수풀'의 준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수풀과 숲은 같은 뜻이다.  숲에는 깊고 서늘함이 느껴진다. 수풀은 거대한 느낌이 들어있지 않지만 숲에는 거대함도 느껴진다. 수풀은 웅장함이 없지만 숲에는 웅장함도 느껴진다. 수풀은 찐한 향내가 없지만 숲에는 찐한 향내가 베여있는 듯하다. 숲은 비와 눈과 바람을 포용할 힘이 느껴지지만 수풀은 그러지 못하다. 같은 뜻인데 크기와 힘과 색깔과 향이 다르다. 작가는 깊은숨을 들이시면 숲이 빨아당겨져 내 안에 숲이 가득하다고 한다. 숲 속에서의 숨은 그래서 깊을수록 좋다. 내 안에 숲을 가득 빨아당겨 보자. 내 안에 초록이 가득하다. 내가 곧 숲이요 숲이 나인 것이다.






" 소나무 전나무 숲의 바닥은 가는 잎 사이로 스며들어온, 자잘한 빛들이 바글거린다"


바글거린다는 작은 벌레나 짐승 또는 사람 따위가 한 곳에 많이 모여 움직이는 것이다. 가는 잎 사이로 스며들어온 빛들이 숲의 바닥에 많이 모여 움직이는 모습을 벌레처럼 바글거리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였다. 웃음이 난다. "맞아 맞아 바글거리지" 개미나, 애벌레들이 움직이듯이 말이다. 김훈 작가의 글들은 사전을 찾으며 공책에 적어야 한다. 낱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낱말 사용의 달인이다. 바글거리는 빛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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