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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Oct 21. 2023

저녁 먼지


저녁 먼지 아저씨가 오늘도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안방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녁 먼지 아저씨와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불편한데 오늘까지만 보면 될 것 같아 다행이긴 하다. 저녁 먼지 아저씨는 3년 전에 우리 집 위층으로 이사 온 902호 아저씨이다. 저녁 먼지 아저씨는 나보다 조금 어린 40대 후반의 902호 아저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녁 먼지 아저씨라는 말은 우리 가족만 사용하는 단어일 것이다. 사실 '저녁 먼지'라는 단어를 902호 아저씨 덕분에 3년 전 처음 알게 되었다. 먼지에 아침 먼지, 점심 먼지, 저녁 먼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녁 먼지 아저씨가 이사 오기 전 우리는 위층 902호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이웃이었다. 15년을 사는 동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사이였다. 새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가시면서 저녁 먼지 아저씨가 이사를 왔다. 3년 전 코로나 시국에 이사를 오게 되면서 첫 단추가 잘못 껴지게 된 것 같다. 코로나 와중이라 학교를 제대로 등교하지 못하는 아들들은 집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비대면 수업을 해야 하는 시간에 902호는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온 집안을 뜯어고치는 것인지 하루 종일 집이 흔들렸다고 한다. 한 달 공사 기간 동안 소음으로 비대면 수업이 제대로 진행이 될 수가 없었다. 공사를 어찌할 수 없으니 참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드디어 한 달여 만이 공사가 끝났다.


 하루는 저녁을 먹는데 큰 아들이 이야기를 한다. "엄마, 위층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엄청 깔끔하신가 봐요!" "왜?" "아침에도 청소를 하고 점심에도 청소를 하고 저녁에도, 밤에도 청소를 해요"위층이 퇴근 후 저녁 먹을 때랑 밤에 청소기를 돌리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도, 점심에도 청소기로 청소를 하시는 줄은 생각을 못 했었다. 청소기는 하루에 한 번 돌리면 되는 거 아닌가? 비대면 수업으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들들은 청소기 소리를 얼마나 자주 돌리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 소리를 녹음까지 해 놓고 있었다. 위층이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데 바닥 공사가 엉망이었는지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데시벨 앱으로 측정까지 해놓았다.  청소기를 어떤 걸 사용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바닥을 아주 얇게 깔았나? 의심도 생겼다. 큰 아들은 밤 10시에 울리는 청소기 소리도 녹음을 해놓았다. 밤마다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도 녹음을 했다. 하루는 고무 망치를 들고 오기도 했다.


퇴근하기 전 큰 아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 정말 말이 안 나와요"

"아들 무슨 일이야?"

"위층이 너무 시끄러워서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화가 나서 위층에 올라갔었거든요"

"큰일 날려고 올라가면 어떡해?"

"엄마 제가 화내지 않고 아저씨께 말을 했어요. 녹음한 소리도 들려드렸어요"

"그래 아저씨가 뭐라 그러셔?"

"엄마, 아저씨 가요. 뭐라 하셨는지 아세요?"

"뭐라 시는 데?"

"제가 밤에 청소기 돌리는 것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요. 아저씨 가요. 그럼 저녁 먼지는 어떡하냐고 하셨어요. 엄마 저녁 먼지래요. 먼지가 아침, 점심, 저녁 따로 있는 거예요? "

어처구니가 없는데 할 말이 없었다. 저녁 먼지라니? 내 생에 저녁 먼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이후로 902호 아저씨는 저녁 먼지 아저씨가 되었다. 아들이 위층에 다녀온 이후로 저녁 8시까지만 청소기를 돌리신다. 오늘은 저녁 7시에 청소기가 끝났다. 두어 달 전부터는 청소기 소리도 바뀌었다. "드륵륵드륵륵"에서 "윙"으로 소리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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