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본 정신건강의 문제점
이야기에 앞서 특별할 것 없는 제가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부터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우울증을 진단받고, 심리 상담과 정신과 약물 치료, 폐쇄/개방 병동 입원까지 여러 정신건강과 관련된 치료를 받아온 18살 청소년입니다.
글을 쓰고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며, 제가 겪은 경험이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 속에서 함께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아동 청소년들이 저와 같거나 저보다 큰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 험난하고 어려운 세상을 이끌어갈 아동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누구도 고통 속에 혼자 남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그 작은 변화의 한 조각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저와 제 주변에 제가 보면서 떠올린 이야기이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힘들다고 여러 번 아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신호가 “엄마, 나 힘들어요.”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몸이 자주 아픈다거나 예민하다거나 방에서 잘 나오던 아이가 잘 나오지 않다거나요.
아니면 청소년들이 힘들다고 했을 때, 밥 주는 거 먹고 재워주는 곳 있는 곳에서 공부만 하는데 뭐가 힘들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만약 그랬다면, 아이들은 보호자분이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하고 말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청소년의 신호는 이렇게 늦게 발견될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청소년의 어려움을 그 나이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쉽게 넘겨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기이니까 예민할 수 있고,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친구 문제로 잠깐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신호를 단순히 “사춘기”라는 말로 설명해 버리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도움의 신호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발견되는 구조에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아이가 조용히 힘들어하는 동안에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상황이 더 악화된 뒤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결석이 잦아지거나, 자해나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나거나,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주변 어른들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아이들은 이미 여러 번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신호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그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지나쳐졌을 뿐입니다.
저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이야기할 때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라는 질문보다,
그전에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조용하게 보내고 있는 작은 신호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때 우리는 한 사람의 무너짐을 막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신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청소년이 보내는 신호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쉽게 지나쳐지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평소에는 밝고 활동적이던 아이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거나, 사람을 피하고 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지쳐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몸의 아픔으로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두통이나 복통, 이유 없이 계속 피곤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 역시 가볍게 넘기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예민함과 짜증입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감정의 변화가 커질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성격이 예민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쌓인 어려움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도움을 포기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말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괜찮아졌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말해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경험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청소년의 신호는 항상 큰 사건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작고 조용한 변화들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아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사춘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기기보다는, 그 행동 뒤에 어떤 마음이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이 완전히 무너진 뒤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고 보내는 작은 신호들 속에서 조금 더 일찍 이해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