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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OBS Aug 02. 2023

대기업 디자이너의 단점

이번에는 대기업 디자이너의 좋은 점에 대한 글에 이어 단점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역시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서 느낀 점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선 가장 큰 단점은 'One of them'이라는 점.

대기업 디자이너는 사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디자인 파트의 업무를 맡고 있는, 그냥 몹시 평범한 직장인이다.

물론 디자인 업무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또 완성된 제품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디자이너로 얻을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결국 소위 말하는 회사 부속품 중 하나.

창의력과 개성이 필요하다는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회사라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이다.


두 번째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상위 결정권자들에 의해서 정해지는 시스템이다 보니 결국 실무자들은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디자인 안을 여러 가지로 제안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선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의사결정을 위한 보고는 얼마나 많은지.

본인이 회사 안에서 어떤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디자인 센터장을 하면 된다.


세 번째 단점이 바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보고 체계.

어떤 안건이 있다고 치자.

먼저 이 안건을 팀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 A를 만든다.

팀장에게 보고 후 팀장의 피드백을 반영한 보고서 B를 만들어서 실장에게 보고를 한다.

실장에게 보고 후 보고서 C를 만들어서 센터장에게 보고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안건에 보고서만 여러 번 만들게 되는데, 제일 킹 받는 경우는 이렇게 수정하고 수정해서 센터장까지 보고를 했는데 센터장은 "A가 제일 나은데?"라고 하는 상황.

그냥 A를 바로 센터장에게 보고하고 OK 됐다면.

버린 내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일이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바로 대기업.


그리고 또 다른 단점은 바로 높은 연봉.

아니 대체 높은 연봉이 왜 단점? 장점 아냐?

물론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높은 연봉이 족쇄 같아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만두기 너무 어렵다는 점.

예전부터 나는 사업하면 잘하겠다는 소리를 정말 정말 많이 들었는데 (물론 절대로 사업을 쉽게 보는 것도 아니고 해도 망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만일 내가 쥐꼬리만 한 연봉을 받고 회사를 다녔다면 진작 때려치우고 다른 일들에 도전을 해봤을 것 같다.

이렇게 살다가는 큰 부자는 못되고 결국 먹고살만한 월급쟁이 인생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먹고 살만큼의 월급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그렇고 대기업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 잘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높은 연봉이라는 단단한 틀에 갇혀서 현실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이직할 곳이 없다.

이것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이직이 자유로운 분야의 사람들은 이해 못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 자동차 회사가 몇 개 없다.

해외로 나가지 않는 한 국내에서는 일단 불가능.

그리고 IT 쪽을 예로 보면 꼭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더라도 창업을 한다 거나한 다른 선택지들이 비교적 많은 편인데, 자동차는 솔직히 개인이 신규로 회사를 세운다?

본인이 일론 머스크라면 가능하다.




모든 것에는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듯,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역시 두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단점을 구구절절 쓰긴 했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대기업뿐만 아니라 어떤 회사에서 일하든 직장인이라면 느끼는 점들은 대개 비슷비슷할 것이다.

물론 회사마다 시스템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모든 회사가 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점은 역시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와 일을 하면서 어떤 만족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인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는 내 직업의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겠지만),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일은 나와 잘 맞고 내가 생각해도 이 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며, 일도 꽤 재미있는 편이다.

그러니 단점에 관한 글은 그저 이런 면도 있다는 참고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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