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작가는 다르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로 디자이너의 '태도(attitude)'에 관한 생각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자이너와 작가는 다르다.
디자이너는 '대중을 대상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디자인을 전공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뿐만 아니라 현업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자동차 디자이너들 중에는 본인이 '디자이너'라는 뽕에 취해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제안한 디자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보완해 달라는 요구사항이 생겼을 때, '니들이 디자인에 대해서 뭘 알아?'라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내가 한 디자인이 모두가 만족하고 결과가 좋으면 베스트이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맘대로 되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이슈로 디자인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애티튜드인데, 뭐랄까.
같은 디자이너인 내가 봐도 지나치게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최근 관련 팀에서 디자인 쪽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요청한 팀에서는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었고, 나는 나름대로 리스트업을 해서 다른 디자이너와 미팅을 가졌다.
내가 준비한 백그라운드 자료와 리스트업 한 자료를 보면서 실컷 설명했더니, 그 디자이너'님'께서는 "디자인 컨셉이 원래 이런데, 이걸 바꾸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이 한 문장과 문장을 말하는 표정에는 '디자이너가 줏대 없이 디자인도 모르는 다른 팀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게 말이 되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디자이너'님' 앞에서 나는 그런 줏대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디자이너'놈'이 되어버렸다.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는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니즈와 가격과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팔리지도 않는 디자인을 컨셉이라고 고수하면 디자이너의 자존심이 지켜지나?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작가가 작품활동 하듯이 본인 쪼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정말 다른 것 같다.
자동차는 디자이너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수많은 팀과 사람들이 같이 만드는 제품인데 워낙 디자인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홍보 매체나 대외적으로도 스타 디자이너를 필두로 한 콘텐츠들이 많이 비치다 보니 언젠가부터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하나의 감투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다른 팀들과 부지런히 협업하면서 오늘도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일부의 '본인이 마치 작가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부서들로부터 욕먹는 일들이 종종 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결국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팔리는 디자인을 해야 하고, 회사가 돈을 벌어야 우리도 먹고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디자이너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들어주다가는 디자인이 산으로 가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꼭 필요하다면 디자인을 뜯어고칠 수도 있어야 한다.
본인의 디자인을 수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경주마처럼 귀를 닫고 앞만 보고 디자인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을 겪으면서 타인이 거울이라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본인 의견만 피력하는 디자이너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다 들어주는 디자이너인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디자인을 고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가진 디자이너가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