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야나마스카라(태양경배)
평소 일하면서 나는 주로 lo-fi 음악을 듣고는 하는데, 너무 정신없고 바빠서 여유가 1도 없을 때는 이런 음악도 거슬려서 꺼버린다.
요즘 매일 터져나가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음악은커녕 인스타를 열어 볼 여유도 없는데, 점심시간에도 책상에서 일하면서 끼니를 때우고 있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뭐랄까,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방전된 기계가 된 기분이다.
이런 리듬이 거의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보니 불면증까지 생겨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잠이 항상 부족한 상태.
이러다 번아웃 올 것 같다.
하루는 불을 끄고 누워서 잠을 어떻게든 자야 한다는 강박에 '자야 해!'를 수백 번 속으로 외치면서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문득 이렇게 누워서 스트레스받고 있는 게 더 스트레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유튜브나 보자며 침대 머리맡 아이패드를 펼쳤다.
비행기 소리라도 들어야 하나 하고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일본 오믈렛 샌드위치 가게의 하루'라는 영상이 추천으로 뜨길래 별생각 없이 재생을 눌렀다.
영상은 말 그대로 일본에 있는 오믈렛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의 하루 일과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하루종일 오믈렛을 만드는 장면이 거의 전부였다.
1. 계란을 볼에 깨서 거품기로 저어준다.
2. 계란물을 체에 내려 알끈을 제거한다.
3. 알끈을 제거한 계란물을 프라이팬에 부어서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럭비공처럼 모양을 만든다.
대충 이 3단계의 행위를 영상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아니 이게 뭐라고 나는 그걸 멍하게 계속 보게 되더라?
놀라운 건 이러한 단순 반복 노동의 장면을 계속 보고 있으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회사 일과 스트레스가 점점 잦아들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점점 졸려 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십여분 오믈렛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나는 깨달았다.
아, 복잡하고 깊은 생각이 필요 없는 단순 반복 작업은 인간의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구나.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오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발만 씻고 요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거실에 매트를 펼치고 오랜만에 서리 요가의 수리야나마스카라 50세트 편을 틀고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수리야나마스카라 반복 세트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면 심적으로 뭔가 힘들었던 시기에 수리야나마스카라만 반복하는 행위를 종종 했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제의 오믈렛 영상 때문에 이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태양경배를 뜻하는 수리야나마스카라는 12개의 연결된 아사나 흐름 순서로 동작을 하는 요가 수련이다.
수리야나마스카라 A, B가 있는데 오늘은 A만 50세트를 반복했다.
최대한 생각이라는 것을 덜하고 싶어서 중간에 변형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
아무튼 수리야나마스카라 A 50세트를 끝내는 데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걸 지겨워서 한 시간 동안이나 어떻게 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는 이만한 게 없다.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놀랍게도 쓸데없는 생각이 줄어든다.
특히 이런저런 많은 동작을 하는 것에 비해서 몇 가지 자세만 반복하다 보니 생각의 번잡함이 덜하다.
단순 노동 작업은 점점 하찮은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지만,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나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믈렛을 만드는 영상이나 수리야나마스카라를 반복하는 행위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영역이지만 이런 점에서는 비슷한 결인 것 같다.
결론은 스트레스가 많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서 좀 비우고 싶을 때는 단순한 것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