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요가원에 다녀왔다.
나는 '북촌요가원'이라는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북촌에 위치한 따스하고 아늑한 공간, 북촌 요가원에서 일상 속 쉼을 경험하세요.
라는 소개 문구를 읽자마자 이미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요즘 평일에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주말 하루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체처럼 집에 누워있고 싶어서 수업 전 날 밤까지 요가원을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게다가 경기 남부에서 무려 서울 강북까지 가는 것은 웬만큼 강력한 의지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양한 장소와 수업을 체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몇 주 후 요가 자격증반을 시작하게 되면 몇 달간은 일요일에 시간을 전혀 뺄 수 없기 때문에 갈 수 있을 때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요일 오후 무려 120분짜리 어드밴스드 클래스를 신청했다.
밤 10시쯤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경미님, 오붓입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북촌 요가원 1시 수업을 예약해 주셨는데, 해당 수업은 어드밴스드 클래스(120분)라, 중급자 이상부터 참여 가능할 것 같아서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예약자분께서 어느 정도 수련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원데이 수업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이런 문자를 받은 곳은 처음이었다.
요가를 꽤 오래 해서 수련 내용을 따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답을 보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은근 걱정이 되었다.
자신만만하게 답 문자를 보내고 호기롭게 갔는데 막상 찐따처럼 있다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초조해졌다.
도대체 어드밴스드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어드밴스드를 들어도 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폭설이 내렸다.
창문 밖이 온통 하얀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지금이라도 수업을 가지 말고 집에 붙어있으라는 신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어드밴스드 수업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경고 문자를 날렸는데, 그래도 네가 오겠다고 한다면 폭설을 내려서라도 못 오게 하겠다는.
온 우주의 기운이 내가 수업에 가는 것을 막는 게 아닐까..;
소파에 누워서 잠시 생각을 했다.
이 날씨에 경기 남부에서 강북까지 차를 끌고 가는 게 맞는 걸까?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지불한 수업료 4만 원을 생각하니 차마 안 갈 수도 없고.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며 나는 눈을 뚫고 북촌행을 강행했다.
다행히 도착했을 때는 눈이 그쳤다.
눈이 내린 북촌의 모습은 고즈넉했다.
일요일이라 많은 상점들이 휴무였고 인적이 드물었다.
안국역 근처에는 그래도 외국인 관광객들을 꽤 목격할 수 있었는데, 골목길 안으로 들어오니 몹시 한산한 풍경이었다.
이 와중에 인구밀집도 폭발하는 곳이 단 한 군데 있었으니, 바로 런던 베이글 뮤지엄 매장.
(소문으로만 듣던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안국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요가원은 골목길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요가원에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 구석이 설레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는 빌라 한편에 자리 잡은 북촌 요가원의 첫인상은 친근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가정집이라는 익숙함, 그리고 이런 곳에 요가원이 있다는 낯섦.
북촌 요가원은 이 두 가지의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주었다.
선생님께 처음 왔다고 이야기하니 간단하게 탈의실 등 공간을 설명해 주시면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향으로 매트를 깔면 된다고 안내해 주셨다.
내부는 희한한 구조(?)였는데, 한쪽이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긴 직사각형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요가원이라면 다 같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위치로 자리를 세팅하는데, 여기는 내부 구조의 문제 때문인지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회원들 매트 가운데 사이 공간에 선생님이 매트를 직각방향으로 놓으셨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자리가 있으면 그냥 제 맘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매트를 놓고 수련하는 것 같은 방식인 것 같았다.
이 역시 익숙하지 않은 형태라 다소 당황스러웠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을 둘러보니 왠지 모두들 상당한 내공을 지닌 사람들처럼 보여서 더더욱 긴장됐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나도 설렁설렁할 수없지! 라며, 갑자기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요가는 같이 수련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는 종목임이 틀림없다.
수련은 익숙한 듯 아닌 듯한 플로우로 진행되었다.
역시 어드밴스드에 맞게 난이도가 있는 편이었고, 내 옆에 자리 잡으신 분은 요가 강사처럼 보였는데 드롭백과 컴업, 카포타사나가 너무 자유자재로 되는 분이라서 나도 모르게 곁눈질로 계속 보게 되었다.
타고 난 어깨 구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카포타사나가 힘든 나에게는 너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나도 부지런히 열심히 플로우를 따라 했고, 마지막 핀차 자세에서 선생님이 치얼업 해주셔서 잠깐의 발란스를 잡을 수 있었다.
수련이 끝났을 때는 동작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두 시간 플로우를 해 낸 나 자신이 뿌듯했고, 오기 전까지는 많이 고민했지만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집 같은 동네 요가원이 물론 나에게는 넘버 원이지만, 가끔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의 수련은 상당히 리프레쉬가 되는 경험을 준다.
그리고 같은 동작이라고 하더라도 평소에 하던 순서가 아닌 다른 순서의 움직임을 통해 또 다른 근육의 자극을 받는 것도 좋았다.
요가가 끝나고 북촌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동네 구경을 하는 것도 너무 좋았던 점 중 하나.
시간 되면 다음에 또 꼭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