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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Nov 19. 2023

엔화, 지금이 바닥일까?

엔화 투자 전 고민해 볼 이야기

본 글은 금융상품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과 무관합니다.
TL:DR;

1. 기시다의 임금 상승 정책으로 소비가 활성화되었지만, 지금 일본은 자칫하면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는 상황.

2. 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한 금리인상 카드를 사용하자니, 막대한 국가 부채가 큰 부담으로 작용함.

3. 금리를 올리면서, 국가 부채를 관리하려면 세금 인상이 필수적인 상황. 임금을 올린 기업들의 법인세 상승부터 소득세, 담뱃세 인상 등을 추진 중. 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정부의 정책을 실행시키기 어려운 상황.

4. 여기에 핵심 과제인 국방비 증액부터,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 등으로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 결론적으로 엔화가 당분간 지금과 비슷한 추세를 전망함.



썩어도 준치,

일본은 살아날 수 있을까?


최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일까 찾아봤는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엔화'입니다. 엔화는 일본의 통화(화폐)입니다. 달러만큼은 아니지만,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무역 결제 통화로 불리며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사를 보면, '엔테크', '일학개미'와 같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엔화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3일 기준 1조1110억엔(약 9조668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잔액(6832억엔)의 1.5배에 가까운 액수로, 올해 들어서만 4278억엔 급증했다.

- 엔테크 시대...엔화 예금 10조·환전도 1년새 4배 (2023.11.08, 매일일보)


(사진 - 네이버)


엔화가 900원일 때부터 역대급 엔저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엔화를 투자하는 개인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2023년 11월 13일 기준 870원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엔화가 떨어지게 된 배경을 알아보고, 엔화에 대한 전망과 리스크에 대해서 가볍게 알아보겠습니다.




엔저의 기원 : 아베노믹스

엔저로 수출을 높여서, 경제를 살린다


우선 엔저 현상은 쉽게 말하면, 화폐의 교환 과정에서 일본 돈이 가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전엔 200엔짜리 일본 문구류를 사기 위해서 2,000원 넘게 지불했다면 지금은 1,700원 정도만 지불하고도 살 수 있습니다. 가치가 없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너무 흔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가 너무 많아(양적 완화) 지다 보니까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시중에 화폐를 많이 풀었을까요? 바로 아베 정권입니다. 2012년에 발표한 아베노믹스를 통해서 시중에 엔화가 확 증가하게 됩니다.


일본은'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면서, 기업의 매출이 감소합니다.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면,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기가 어려워집니다. 기업이 일자리가 줄어들면, 실업자가 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더욱 줄이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자료 - 보험연구원)


아베가 생각한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저 순환 고리에서 기업의 매출을 늘려서 선순환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수입이 늘어난다면, 고용도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럽게 소비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출 중심 국가인 일본은 기업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출 경쟁력을 올리게 됩니다.


이를 위해 엔화 가격을 떨어트려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문구류를 수입하는 사업자가 평소에 2,000원(200엔)이 넘던 하이테크 볼펜이 1,000원(200엔은 동일)에 살 수 있다면 1개 살 가격에 2개를 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해당 기업은 2개를 팔아서 400엔을 벌어들이니 매출은 증가합니다. 이걸로 고용을 늘리면서 선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 중 첫 번째 화살)


여기에 나라의 빚을 늘려서 투자를 하게 됩니다. 기업이 수출을 늘려서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서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제로금리 수준이었지만, 투자를 하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선 것입니다. 나라의 빚이 늘어나는 것은 부담이지만, 엔화가 가진 세계적 지위도 있고, 고용이 늘어나면 결국 세금도 늘기 때문에 해결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위 이미지 중 두 번째 화살)


(사진 - 세계일보)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실패로 돌아갑니다. 엔화가 떨어지면, 수출경쟁력이 생기겠지만 반대로 '수입경쟁력'은 약해집니다. 즉, 일본이 한국에서 2,000원짜리 과자를 사기 위해 200엔을 지불했다면,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 이후에는 400엔을 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엔화가 떨어지면 수입국 입장에서는 1개 살 가격에 2개를 살 수 있지만, 1개만 사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경쟁력이 약해진 약해진 상태에서는, 일본의 엔화 표시 기준의 수출만 증가할 뿐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릴 정도로 생산량이 증가하는 성장으로는 연결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일본 경제는 다시 수렁으로 빠집니다.


 


내수부터 살린다 : 기시다노믹스

임금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


2021년 10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뒤를 이어 기사다 후미오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됩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모토를 앞세워서 그의 경제 정책을 추진합니다. 아베노믹스가 수출을 늘리고, 수출이 늘어서 고용을 늘리고, 고용을 늘려서 소비를 늘린다의 개념이었습니다.


반면, 기시다는 이런 정책이 보완이 필요한 점이 있다는 점(실패)을 알고, 내수부터 활성화시키자는 마음으로 임금을 조정해서 바로 소비를 늘리려고 시도합니다. 아베노믹스 때, 실질 임금 수준이 이전보다 낮아지는 등 문제로 경기가 침체됐던 것을 거울로 삼아서, 임금 수준을 끌어올려주려고 시도합니다. 


(자료 - Trading Economics)


실제로 2022년부터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2015년 초 이후로 처음으로 2%를 넘어섰습니다. 이런 인플레이션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요 견인 효과의 결과, 즉 실제 일본 사람들의 소비가 활성화된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임금 수준을 높여서, 내수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2020년에 일본의 5대 종합상사에 투자를 했던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올해도 투자를 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실제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서 최근 국내 투자자들도 엔화에 관심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에서 11월 8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엔화 예금이 10조 원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엔화 가치가 오를 수 있을까?

일본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이유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엔화가 이전처럼 1,000원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 엔화의 가치가 상승할 필요가 있는데요, 엔화의 가치가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액션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일본의 금리 인상이 필요합니다. 지금 사태는 '제로금리'로 시중에 유통된 엔화가 많아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기본적으로 이런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서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자료 - CEIC 데이터)


하지만 일본 정부의 부채와 미국 금리 정책의 불투명성 때문에 금리 인상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일본 정부의 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2023년 11월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 채무는 GDP의 263%로 한해 갚아야 할 국채 이자만 9조 5000억 엔(약 85조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확실히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때마침 오늘 리멤버에서 발행된 이진우 평론가님의 글을 보면, 일본 정부의 트라우마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일본이 과거 미국이 금리 내릴 때 엇박자로 금리를 올렸다가, 엔화 가치가 확 높아지고, 그 결과 수출이 박살 나면서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말합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존재합니다. 만약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서, 부채를 줄여갈 수 있다면, 조금 더 금리 인상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세금을 늘려서 부채를 줄이고, 금리를 올리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세금 인상은 큰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증강 재원 확보를 위해 고물가 속에도 법인세, 소득세, 담뱃세를 올리기로 하면서 일본 내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25~34%를 보이며, 내각 출범 후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타개책으로 감세 카드를 꺼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자막뉴스] 모욕당하는 일본 총리...온갖 세금 올리다 터진 '분노' (2023.10.21, YTN)



특히, 법인세에 대한 저항은 더할 것 같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와 협력하기 위해서 임금 인상도 받아들였는데, 법인세 인상을 하는 것은 왼쪽 뺨을 내주니 오른쪽 뺨도 내달라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임금 인상률이 3%대 이하인 대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감세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고 임금 인상률이 5∼6%를 웃돌면 감세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 "임금 높이면 법인세 깎아줘"…日, 임금인상 유도방안 검토 (2023.11.11, SBS Biz)



더 문제는 세금을 올려도, 일본은 부채 부담을 낮추고, 경제를 살리는데만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시다 총리는 2023년부터 5년간 43조 엔으로 방위비를 늘리겠다는 정책 때문입니다. 세금을 정말 정말 크게 늘리지 않는 이상 국가 부채 규모도 낮추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국방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지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제로금리를 유지하면, 일본이 아베노믹스 때부터 풀어놨던 돈부터 불붙은 소비의 영향으로 이제 물가 상승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관리 수준은 인플레이션율 2%  내)

금리를 인상하면, 일단 큰 빚을 지고 있는 정부의 부담이 너무 커질 수밖에 없음

금리를 인상하고, 세금을 올리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저항을 받으면서 전체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가 어려워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 투자하는 워렌 버핏이 최근 1조 원대 엔화 채권을 추가 발행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엔화 채권을 발행해서 엔화로 돈을 빌려서 일본 주식을 더욱 사겠다는 이야기로 평가됩니다. 버핏은 일본 정부가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유동성이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버크셔는 올해 4월 14일 워런 버핏이 일본을 방문해 이토추, 마루베니,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 5대 종합상사에 대한 지분을 늘렸다고 밝힌 지 사흘 만에 1644억엔(1조5600억원) 규모 엔화 채권을 발행했다.

- ‘투자귀재’ 버핏 또 日투자 늘리나…1조원대 엔화 채권 발행 (매일경제, 2023.11.17)




끝으로


최근 가치평가라는 개념이 모두에게 알려졌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이나 금융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해서 보유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런 내재가치를 따지는 과정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때를 기준으로 잡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엔화가 연일 하락하면서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물렸다는 기사의 댓글을 보면, '그래도 일본은 일본이다'처럼 과거에 보여준 저력으로 앞으로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엔화를 사라/사지 마라에 대한 글은 아닙니다. 저도 투자를 잘 모르고, 이렇게 글을 쓴 내일부터 당장 엔화가 급상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엔화를 투자하기 전에 고민이신 분들의 판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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