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안아줘

날 안아줘_그 맛이 그립습니다

by 엄마의 미술관
2023, 캔버스에 채색, 91×117㎝


그 맛이 문득문득 그립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자라던 호박넝쿨에서 여린 잎을 따다 손으로 비비던 순간부터가 떠오릅니다. 그것이 정확한 조리법이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 또렷할 뿐, 음식을 준비하던 엄마의 손놀림은 늘 관심 밖이었습니다. 뒤늦게 떠올려보는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보면, 여린 호박을 칼로 곱게 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칼손잡이나 나무등으로 적당히 내려치면, 호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투박하게 갈라졌고, 그대로 국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국물의 시작은 늘 된장이었습니다. 우물 옆 장독대 항아리에서 퍼 올린 엄마의 된장을 물에 개어 넣었던 것 같습니다. 큰 멸치는 똥을 떼어내고 반으로 가른 뒤 국물에 넣었을 테지요.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물을 붓고, 된장을 풀고, 멸치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에 호박을 넣고, 그 다음엔 호박잎과 줄기를 차례로 넣었을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손에 잡히던 감자나 토란도 자연스레 함께 들어갔겠지요. 그렇게 재료들이 제각기 자기 자리를 찾아 어우러지면,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한 움큼 넣어 휘휘 저어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숭덩숭덩, 투박하게 완성된 엄마의 호박대줄거리국. 그것은 그 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워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몸속이 든든하게 채워졌습니다. 이미 배가 불러도 욕심을 부리곤 했습니다. 국에 들어 있던 호박과 감자, 토란을 마치 간식처럼 하나 더 건져 먹었고, 끝내 국물을 한 번 더 떠먹으며 마무리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던 막내딸이 이런 음식이라도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아마도 안도했을 것입니다. 자꾸만 더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던 막내딸의 식탐을, 말없이 눈감아 주셨던 것도 같습니다.


엄마가 끓여주신 호박대줄거리국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던 어린 소녀는 이제 오십 중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소문난 맛집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분명 맛있는 음식들입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어디엔가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남습니다. 그 허기의 끝에는 언제나 엄마의 맛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담담하면서도 깔깔하고,

구수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나는 그 국.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더 오래, 더 선명하게 그 맛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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