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 느티나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400여 년을 훌쩍 넘겼다는 느티나무는 마을 한가운데 우람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습니다. 아람드리 가지를 넉넉히 펼친 채, 그늘 하나로 온 마을을 품어 안듯 서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감은 눈 위에 손을 뒤집어 얹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나무에 기대면 묵직하고 단단한 숨결이 등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섯 번 외치는 동안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몸을 숨겼습니다. 몇몇은 먼 데로 달아나는 척하다가도, 이내 느티나무의 굵은 허리 뒤로 살금살금 숨어들곤 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좇아 허둥대던 술래는 늘 그 나무 뒤에서 깔깔 웃던 친구들에게 속았습니다. 속아도 좋았습니다. 나무는 그 모든 장난과 숨소리를 넉넉히 품어주는 놀이터였으니까요.
아이들이 그 둘레를 맴돌며 세상을 전부 차지한 듯 뛰어다닐 때, 어른들은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나물을 다듬고, 고추를 썰고, 마늘 껍질을 벗기며 삼삼오오 둘러앉았습니다. 누구의 일인지 따지지 않고 손을 보태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노랫가락 같았습니다. 혼자라면 허리가 먼저 아파왔을 일도,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 어느새 마무리되었습니다.
가끔은 말끝이 날카로워지고, 마음이 상해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래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야 할 동네 사람이라는 공감, 그 깊은 뿌리가 느티나무처럼 서로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새벽 논밭에 나갔다 돌아온 어른들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청했습니다. 남자 어른들은 나무 옆 정자에 들고, 여자 어른들은 느티나무 아래 비닐 푸대를 덧댄 멍석 위에 몸을 눕혔습니다. 정자가 비어 있어도 여인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풍경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습니다. 그늘은 모두에게 평등했지만, 자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어렴풋이 배웠습니다.
숨바꼭질이 시들해지면 아이들은 땅에 금을 긋고 땅 따먹기를 했고, 비석치기와 공기놀이도 했습니다. 돌멩이를 주워 오고, 흙을 고르며 놀이터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흙이 스며들고, 손바닥이 거칠어져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른들은 손톱 밑의 흙을 다듬어주고, 갈라진 손등에 약을 발라주었습니다. 따끔한 약 냄새 속에서 하루의 모험은 비로소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느티나무 아래서 왁자지껄 뛰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손자 손녀의 손을 잡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어른들은 하나둘 작별을 했습니다. 그러나 400여 년의 세월을 견뎠다는 그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마을의 시작과 끝을 묵묵히 바라보며, 떠나간 이들의 웃음과 다툼과 낮잠의 숨결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듯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점점 줄어드는 마을 한가운데서도, 느티나무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수많은 삶의 곁을 지키며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 나무. 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그 나무는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을까 하고. 부디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누군가 지친 어깨를 기댈 때마다, 옛날처럼 아무 말 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